포도 그리고 와인에 관한 역사적 사건은?

네이버 지식인 답변

by 장웅진



과일로서의 포도보다는 그것을 원료로 한 술인 와인(포도주)과 관련된 역사 사건이 많지요.


예를 들면 <구약성경>의 <창세기>에서 질투심 많던 형제들에게 팔려 이집트의 노예가 되었다가, 고관의 에로한 부인의 요구를 거부하는 바람에 성폭행 미수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간 요셉이

"잘 익은 포도를 수확해 와인을 담가 파라오께 바치는 꿈을 꾸었다"는 전직 술담당관에게 "복권되시겠어요. 축하드려요" 했더니, 그 술담당관이 출소 및 복권 후 요셉을 떠올려서 파라오에게 천거, 그래서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준 공로로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으며,

이후 형제들을 용서한 뒤 그들이 현재의 이스라엘 지역에서 기근에 시달리자 이집트로 불러들여 정착시키기까지 했지요.

그리고 수백 년 뒤 이들의 자손들이 수십만 명으로 늘어나 이집트인들의 경계를 사는 소수민족이 되자 모세의 영도하에 다시 이스라엘로 탈출하는 이야기가 <출애급기>고요.


이보다 훨씬 앞서 노아가 아내, 세 아들들, 며느리들과 함께 아라랏산에 방주를 정박한 다음, 현재의 캅카스 쪽에 정착해서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이때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담가 실컷 마시고 골뱅이가 된 일이 있습니다.

이에 차남인 함이 형과 아우에게 이를 알리자, 나중에 이를 안 노아가 자신을 모욕했다며 함의 자손들이 형과 아우의 자손들의 노예가 되도록 저주를 퍼부었다고 하지요.

19세기에 미국 남부 기독교회 목사들이 백인 농장주들을 위해 이 이야기를 조작하여 "함 = 흑인들의 조상"이라고까지 했고요.


방금 노아 이야기를 하면서 캅카스 언급을 한 이유는, 아라랏산이 그 근처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역사상 가장 오래된 와인의 흔적이 현재 조지아 공화국의 캅카스산맥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캅카스산맥에서 자생한 야생포도를 그곳에 정착한 원시인들이 와인으로 만들어 마셨고, 그 맛있는 술을 주변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에도 팔거나 포도나무 재배 기술과 함께 제조법도 전파했다고 하지요.


특히 이집트 문명 및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교류하면서 발전하던 그리스인들은 척박한 그리스 일대에 곡식 대신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만들어 암포라(밑이 뾰족한 도기)에 담은 뒤 배에 실어 당시 지중해 일대 및 흑해 일대에까지 팔고 다녔고요.

이는 그리스에서 도기, 선박 건조, 항해술, 무역 등이 발전한 이유가 되었지요. 이러한 그리스인들이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도 정착하면서 이탈리아에도 와인이 퍼지고, 그리스 문화 덕후였던 로마 제국의 귀족들도 당연히 와인 문화에 빠지게 됩니다.

보리로 만든 맥주는 "천한 싸구려 술"이라 여길 정도로요. 심지어 노예도 암포라 아래쪽에 깔린 포도 찌꺼기로 만든 저질 와인을 마셨을 정도니까요.


프랑스 와인 중에 프로뷔스라는 고급 와인이 있는데, 이는 로마 제국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를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서기 3세기에 로마 제국 황제였던 프로부스는 게르만인들의 침공으로 엉망진창이 된 갈리아(현재 프랑스)를 복구하기 위해 병사들더러 "평화로울 때에는 포도나무를 심고 경작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덕분에 오늘날 프랑스가 와인의 메카가 될 수 있었다지요.



https://www.cellartracker.com/wine.asp?iWine=206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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