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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Oct 28. 2024

'로봇(Robot)'의 아버지 카렐 차페크 (11)

 <로봇 R.U.R.>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들




  카렐 차페크  작품의 주인공들  이름은 대개 흥미롭다.

카렐은  때때로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이름들을 골라냈다. 예를 들어, 소설 <크라카티트(Krakatit)>에서 악마로 상징된 사내의 이름은 ‘드 헤몬(D'Hemon)’이고, ‘다이몬(Daimon)’이라는 이름으로 나중에 등장한다.



 하지만  카렐은  결코 <로봇 R.U.R.>에서 이러한 방법을 일관되게 사용하지는 않았다.

로봇의 발명가는 ‘로섬   영감’이지만, 이는 ‘젊은 로섬’이 요구사항이 대단히 적은 ‘이상적인 노동자들’을 대량생산하려고 ‘오랜 세월을 보낸 사업가로서’ 개조된 존재다(‘로섬’이라는 단어는 ‘이유’라는 뜻을 지닌 체코어 ‘로줌’과 관계있다).


 (극중에서는 실지로 나타나지는 않는) ‘로섬 영감’과 ‘젊은 로섬’의 이름들은 각자 ‘창조’와 ‘파괴’를 상징한다.

카렐이 구상한  바로는  이들이  전통적 질서에 대항해 들고 일어나도록 사람을 이끌며, 극의 전체적 흐름을 위해 마지막 부분에서 파괴를 가져온다.

5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카렐은  여러 언어들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끌어냈다.  공장관리자의 이름인 ‘도민(Domin)’은 ‘지배자’를 뜻하는 라틴어 ‘도미누스(Dominus)’에서 나왔다. 

로봇의 심리상태와 교육을 담당하는 ‘할레메이어(Hallemeier)’는 독일어에서 ‘경영자’를 의미하는 ‘마이어리스(meierß)’와 드넓은 홀이나 들판을 의미하는 ‘할레(Halle)’의 합성어다.

영업담당이사인 ‘부스만(Busman)'은 ‘사업가(Businessman)'줄였다.

보수적 여성주의를 상징하는 ‘나나(Nana)’의 이름은 러시아어로 ‘간호사(няня)’를 뜻하며, ‘갈 박사(Dr. Gall)’의 이름은 그리스의 유명한 내과의사 클라우디우스 갈레누스(Claudius Galenus) 이름에서  따왔다. 카렐은   갈 박사의 이름을  또 다른 희곡 <하얀 페스트>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는 평화주의자인 내과의사의 이름으로  재활용했다.

기술자인 ‘페이브리(Fabry)’의 이름은 '도구를 사용하여 뭔가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에서 따온 것이 분명하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 - https://press.iwc.com/iwc-participates-in-homo-faber-2024-en/


건축가인 ‘퀴스트(Alquist)’의 이름은 카렐 자신의 철학을 가장 명료하게 설명하려고 이 희곡에서  사용했다. ‘알퀴스트’는  그  의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인 스페인어 ‘엘 퀴스토(El quisto)’와 ‘누군가’를 뜻하는 라틴어 ‘알리퀴스(aliques)’가 합쳐진 것이라 생각된다.

 <로봇 R.U.R.>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의 언어적 기원들의 다양함은 더 깊은 상징성을 가진다


카렐의  다음과  같은  발언들,

“저는 너무 장황한 계획을 펼치기보다 단 하나의 벽돌을 까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지구상의 낙원을 주는 것만큼 끔찍한 것도 없습니다” 같은 발언들은 카렐의 작품들에서도 반복됐다.


 <로봇 R.U.R.>의  등장인물들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섬에서 멸망할  고립되고 단순한 개인들이 아니라, 매우 곤란한 지경에 놓인 여러 나라의 대표들인 셈이다.

 

 <로봇 R.U.R.>제2막에서  카렐은 절망적인 상황에 대항하는 등장인물들의 전투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사람들의 영웅적 행위를 신성한  것처럼 설명한다.

 이는 양심에 가책이 되는 것을 찾기 위한  것  같다.

누가 그와 같은 대이변의 원인을 제공했는가?

 이에 알퀴스트는 외친다.


 “나는 과학을 저주한다! 나는 기술을 저주한다! 도민, 나 자신, 우리 모두를 저주한다! 우리는, 우리는 모두 잘못을 저질렀다!”


갈 박사도 자신을 저주한다.

 이는 갈  박사가  로봇에게 영혼(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 인공두뇌)을 불어넣으려 했기 때문이다.


“나는 로봇에게 영혼을 불어넣은 이 행위를 저주한다. 이 모든 것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나서다.”


헬레나도 마찬가지로 그녀 자신을 저주한다.

그녀 또한 로봇에게 영혼을 주려고 했으니까.


 다른 등장인물들도 비록 일부는 유토피아에 대한 비전 혹은 그들을 뒤에서 통제하던 힘들을 비판하면서 자기가  저지른 일을 용서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과연 그들이 잘한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가며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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