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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Sep 17. 2024

그라쿠스 형제 시대의 특성과 문제점은?

네이버 지식인 답변



그라쿠스 형제가 "농지 개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때는, 로마가 지중해 일대의 패권자가 되었을 때입니다. 즉, 기존의 강대국이던 카르타고와 마케도니아 등을 정복하거나 혹은 지중해 동쪽의 여러 작은 나라들을 꿇리거나, 이집트마저 찍소리 못하게 만들어 놓았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로마의 귀족들은 정복한 지역의 농지를 자기 소유로 만들고, 정복한 지역의 백성들을 노예로 삼아 그 농지에 라티푼티움이라는 대농장을 건설하여 막대한 양의 곡식을 생산해 이익을 챙겼습니다.



그 결과 전쟁 중에는 군복무를 하느라 자기 농토를 돌볼 수 없었고, 전쟁 후에는 자기가 생산한 곡식이 시장에서 "라티푼티움에서 생산된 것보다 비싸다"는 이유로 팔리지 않아 폭망한 소규모 지주들, 즉 빈민이 된 자영농들이 무수히 많아졌습니다.


로마 군대는 이 자영농(자기 돈으로 무기와 갑옷을 구입할 수 있는 농부)들을 징집하는 식으로 구성되었는데, 자영농이 망해서 빈민이 되자 이들을 군인으로 징집할 수가 없게 된 겁니다.

 게다가 이 빈민들이 먹을 것을 달라며 폭동을 일으키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이들에게 공짜로 빵과 밀가루를 나눠줘야 했으니 국가에 큰 부담이 되었지요.



그라쿠스 형제는 귀족들의 농지 보유에 한도를 설정하고, 그렇게 해서 남아돌게 된 농지를 자영농이었던 빈민들에게 다시 분배하여 이들이 다시 농부가 될 수 있게 한다는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라티푼티움으로 꿀 빨던 귀족들이 이에 반발해서 그라쿠스 형제를 죽인 거지요.



그리고 이후 빈민들을 용병처럼 고용한 마리우스와 술라 같은 군벌들의 탄생, 그리고 이들로 인해 혼란에 빠진 로마가 3두 정치가들인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이사르에 의해 정리된 뒤, 이 3두 정치가들끼리 싸운 결과 카이사르가 최종 승리자가 된 다음, 그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가 다 먹고 로마 제국의 첫 황제가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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