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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 Dec 28. 2023

왜 살까?

나는 왜 살지

중학교 마지막 역사 수업에서 선생님이 던진 질문.


“왜 살까?"


 이전에도 나는 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많다. 왜 죽으면 안 될까.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까. 내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세상의 거의 모든 만물이 그대로일 텐데 내가 존재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긴 한 걸까? 사실 지금은 어느 정도 답이 나온 상태다.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해 말이다.


 우선 수업에서는 왜 사는지에 대해 알베르 까뮈가 해석한 시지프스 신화를 살펴보았다. 알베르 까뮈는 시지프스 신화에서 시지프스의 형벌이 우리의 인생과 같다고 주장한다. 돌을 산 꼭대기에 올려야 하는데, 돌은 꼭대기에 설 수 없기에 다시 굴러 떨어진다. 결국 시지프스는 무의미한 노동을 평생 해야 하는 것이다. 알베르 까뮈는 이 노동이 결국 우리의 인생이라 말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력해서 성과를 얻으면 또다시 다른 과제가 주어지고, 해내면 주어지고, 해내면 주어지고.. 이 힘든 노동을 끝내는 방법은 죽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업에선 이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돌이 꼭대기에 선 그 찰나의 순간. 그 순간에 느끼는 행복이 너무나도 크다는 것. 또한, 돌이 굴러 떨어질 때 잠시라도 만끽할 수 있는 여유. 이 행위를 반복하며 성장해 나가는 자신에게 느끼는 뿌듯함과 재미. 결국 우리는 이런 순간들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정말 인상 깊었다. 결국 시지프스의 형벌과 같은 인생을 끝내는 방법은 죽음밖에 없지만, 이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왜 사는지에 대한 답에 가까워질 수 있다. 결국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이야기. 이제는 내가 “왜 살까?”라는 질문에 내린 답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 한다. 답부터 말하자면, 내가 내린 답은 단순하다. 비록 내포하고 있는 뜻은 단순할지 않을지라도. 살고 싶어서 산다.


 드라마 <내일>을 보며 다시금 되새기게 된 사실 하나. 우리는 모두 살고 싶어 한다. 정말 힘들고 지치고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 같고 살고 싶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할 때도, 결국 그 마음속 깊은 곳엔 살고 싶은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살고 싶기에 사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내일>을 보면, 결국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 모두 마지막엔 “그래도 살고 싶어”라는 말을 한다. 살고 싶은 이유는 다 제각각이겠지만, 우리는 모두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채로, 그저 인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뿐이다. 살고 싶은 이유는 다 다르겠지. 누군가와 함께할 미래가 기대돼서, 꿈이 있어서, 행복해서.. 이런 날도 있을 것이다. 살아갈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 날. 살아갈 이유가 없어서 더 살기 두려운 날. 내가 <내일>에서 좋아하는 대사 중 하나.


“살다 보면 언젠가는 오늘을 위한 것이었나 보다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테니까. "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느껴도, 결국 우리의 깊은 내면은 살고 싶다고 느낀다. 살고 싶기 때문에 사는 거지. 살다 보면 이렇게 힘든 순간들이 지금을 위한 것이었나 보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각자의 가치, 의미가 있기에 살고 싶고, 살고 싶기에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무의미한 노동의 반복일지라도, 우리는 기꺼이 그 무의미함을 추구하고 반복한다. 무의미함 속에서 희망과 행복을 만들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살고 싶기에 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왜 사는지에 대한 답은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바뀐다고 한다. 미래의 나는 어떤 답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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