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어디에 저장될까?

<기억의 비밀>을 읽고

by 루나

처음 <기억의 비밀>이라는 책을 보았을 땐, 매우 기대가 컸다. 내가 제일 관심 있는 분야, 기억. 기억은 어디에, 어떤 형태로 저장될까?라는 궁금증이 늘 있었다. 기억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이라길래 빌렸는데.. 내가 간과한 하나의 문제점이 있었다. 이 책이 너무 어렵다는 것.. 온갖 연구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너무 어려웠기에 적당히 걸러 읽었다..ㅎ 그래도 내 궁금증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얻은 것 같아 만족한다.


기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서술기억과 비서술기억. 서술기억은 내가 과거에 경험한 어떤 사실적인 경험을 뜻한다. 예를 들어, 며칠 전 여행을 다녀왔다 혹은 어제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다 와 같은 경험은 서술기억이다. 특정한 과거의 사실적인 기억말이다. 비서술기억은 ‘습관적인’ 기억이다. 오랫동안 학습하며 무의식 중에 쌓인 기억이다. 보통 우리는 이런 기억을 흔히 ‘몸이 기억한다’라고 표현한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서술기억은 의식적, 비서술기억은 무의식적 기억이다.

서술기억과 비서술기억은 저장되는 형태가 매우 다르다. 우선, 기억의 저장은 모두 ‘신경계’에서 일어난다. 즉, 뇌 안에서 일어난다고 봐도 무방하다. 신경계 안에 존재하는 신경세포의 기본 단위는 ‘뉴런’이다. 신경계는 이 수많은 뉴런이 가지가지 연결되어 이루고 있는데, 뉴런과 뉴런을 잇는 것이 ‘시냅스’이다. 비서술기억 저장의 핵심은 바로 이 ‘시냅스’에 있다. 사실, 뉴런이 신경계를 이루는 구조는 매우 촘촘하고 고정적이기에 기억이 저장되는 과정에서 뉴런의 구조 ’ 자체‘가 변화하진 않는다. 그래도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야 기억이 저장될 텐데, 그럼 기억의 저장은 어떤 변화에서 기인할까? 그 변화의 중심이 바로 ’ 시냅스‘라는 것이다. 비서술기억은 뉴런과 뉴런을 잇는 시냅스의 ’ 세기‘의 변화를 통해 저장된다. 특정 기억의 학습이 반복될수록, 시냅스의 크기는 점점 약해진다. 그 이유가 바로 뉴런이 다른 뉴런으로 내뿜는 신경전달물질 덩어리의 수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즉, 비서술기억은 뇌 전반적으로 시냅스의 세기가 변화하며 서서히 저장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기억에는 망각이라는 개념을 적용하진 않는다. 무의식 중에 습관화로 인해 쌓이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반면, 서술기억은 ‘망각’이라는 요소가 작용하고 저장되는 형태도 다르다. 서술기억 안에서도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나뉘는데, 사실 두 기억이 저장되는 원리는 거의 비슷하다. 서술기억은 정보의 ‘코드화’라는 것을 거친다. 시각, 후각과 같은 다양한 정보들이 여러 피질 구역으로 들어오면, 이 정보는 ‘분산되어’ 저장된다. 비서술기억처럼 모든 뉴런에 분산되어 저장되는 것은 아니고, 특정한 곳에 밀집된 여러 피질들이 다양한 정보를 분산하여 저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저장된 것이 단기기억이고, 이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변환되기 위해서는 관자엽의 개입이 필요하다. 나는 서술기억의 저장 형태도 흥미로웠지만, 더 흥미로웠던 것은 ‘망각’이라는 개념이다. 예전에는 망각에 대한 두 가지 가설이 있었다고 한다. 가설 1번과 2번 중 어떤 가설이 맞을까?


1. 학습된 것은 무엇이든 정신에 영원히 저장된다. 비록 일부 세부사항은 평범한 상황에서 인출 불가능할 수 있지만, 그것들도 최면술이나 기타 특수한 기법을 통해 되살릴 수 있다.

2. 학습된 세부사항의 일부는 기억에서 영구적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 정보는 뇌에 아예 없기 때문에 최면술을 비롯한 특수한 기법을 동원하더라도 되살릴 수 없다.


처음 이 두 가설이 제시되었을 땐, 많은 과학자들은 첫 번째 가설을 옳게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두 번째 가설에 더 힘이 실린 상태다. 기억은 새것이 옛 것을 삭제하고 변형하기에, 오래된 기억은 점점 왜곡되고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처음 학습이 잘 된 기억은 상당히 오래 지속된다고 한다. 나는 이 ‘망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망각함으로써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부사항보단 중심적인 내용만 잘 끄집어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옛 추억이 희미해지는 것은 아쉬울 수 있는 일이지만, 망각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는지 정말 명확하게 설명해 주어 좋았지만, 복잡한 분자 명칭들과 그래프로 인해 읽기가 조금 많이 버거웠다.. 뇌과학을 전공으로 하는 대학원생들이 읽어볼 법한 책이었다. 그래도 나름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

매거진의 이전글삶, 행복, 사랑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