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어디에
오래 기억되고 싶다. 어떤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건 왜 그럴까? 그가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돈·명예·권력·외모가 아니라, 그가 남겨놓은 흔적들이 여러 사람들에게 매우 유익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의 존재가 오래도록 기억되기 위해서는, 내가 이 세상에 남겨 놓은 흔적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유익하도록 공헌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과연 나에게도 가능한 일일까? 생각이 여기에 머물러 해답을 못 찾고 답답한 벽에 가로막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국내 자원봉사와 해외 봉사활동을 기웃거리며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주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외국 영화를 보는데, 빠르게 지나가는 한 대사가 신기하게도 또렷하게 들렸다.
“생명의 목적은 배운 것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만의 반짝이는 실마리를 찾았다.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라...... 그렇다면 살아생전에 다음 세대에게 직접 가르치는 방법이 있지만, 이 세상을 떠난 뒤까지 생각한다면 기록으로 남기는 방법도 괜찮겠지. 배운 것을 각종 저장장치나 책·잡지 등 출판물로 남기는 것이다. 이렇게 남기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할지도 모른다. 나는 8만 권은 아니더라도 내 생각을 몇 권의 책으로 남길 수는 있겠다 싶었다.
이제야 어느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작가는 죽으면 책이 된다. 환생 치고는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책은 곧 작가와 독자의 만남이다. 그러니 책으로 남는 것도 작가가 독자를 만날 수 있으니 괜찮은 인생이 아니겠는가. 불과 수십 년이 지나면 그 책도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가 어렵겠지만, 다행히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영구보존을 하고 있어 먼 훗날에도 독자들과 만날 수 있으리라.
책으로 남는 인생이라...... 그런데 우리가 글을 써서 책으로 남기는 데는 커다란 걸림돌이 하나 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10여 년간 시간과 모든 시련을 견뎌야 한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술술 풀리지 않으면 생명과도 같은 시간을 더 많이 쏟아부어야 한다.
그러니 내 생각을 책으로 남기려 한다면 오랜 기간 강한 집념을 유지해야 한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고향으로 내려가 10년간 7편을 시리즈로 출간했다. 책 한 권당 1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작가 김홍신은 소설 『인간시장』을 연재하는데 9년 동안 이어졌다. 더구나 이 기간 내내 주변의 공갈·협박·음해에 시달리면서도 굳센 마음으로 끝까지 마무리했다고 한다.
작가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평생 동안 여러 권의 책을 엮어서 낸다. 개인의 경험과 감정, 중요한 사건과 변화,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 특별한 추억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만들어 낸다. 일상에서 좋은 일과 나쁜 일, 마음에 새겨진 상처와 흉터조차도 책으로 펴낸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직장생활·사업 활동 등을 하면서 틈틈이 별도의 시간을 쪼개야만 가능한 일이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전 회장도 50대 중반인 1997년에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는 에세이집 한 권을 출간했을 뿐이다.
나 같은 일반인들에게 저술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면 몰라도, 저술과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는 글을 쓰는 일이 기초부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직장생활·사업 활동을 계속하면서 가족의 경제생활도 챙겨야만 한다. 컴퓨터 자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판부터 몇 주 혹은 한 달가량 익혀야 한다.
기왕에 쓰는 글이라면 보다 좋은 글·유익한 글을 쓰기 위해서, 인터넷과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하고 시간을 들여 시청해야 한다. 비유법·강조법·변화법·은유법 등 각종 수사법을 읽어봐야 하고, 평서문·의문문·명령문·청유문과 같은 문장유형도 이해하고 응용해야 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모두 극복하고 써놓은 글이, 너무나 뻔하고 지루해 읽는 이가 없다면? 서점에서 제대로 팔리지 않는다면? 이 또한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능력도 없으면서 내 욕심만 앞세우는 게 아닌가? 그래서 망설인다. 과연 나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나에게 저술에 대한 꿈은 있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동안 살아온 삶의 조각들과 전문분야에서 익힌 이론과 경험을 토대로 마음 붙이고 저술하는 꿈을 꾸었지만, 저술에 따르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스스로 감내할 용기가 부족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데는 남겨놓은 기록들이 있었다. 세월이 기억을 망각으로 이끌더라도 내게는 이미 써놓은 글들이 있었다. 지난 과거의 일들과 감정을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18세 청년시절부터 썼던 6권의 일기장, 40세 초반부터 인터넷에 올렸던 마케팅 전문분야 글들, 그동안 틈틈이 써 놓았던 내 생각의 조각들이 컴퓨터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과거의 이러한 기록들이 오늘의 내가 행동하도록 이끌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큰 용기를 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50대 중반부터 전문분야에 대해 저술을 시작했다. 하나하나 정리하고 수정하고 보완했다. 중소기업 경영·마케팅 컨설팅 10여 년 경험을 바탕으로, 약 3년~4년에 걸쳐 정리하고 틈틈이 쓴 글이 어느새 약 1,000쪽에 이르렀다. 출판사와 협의를 거쳐 3권으로 나누어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글만 쓰면 책이 되는 줄 알았는데, 출간을 위해서는 글쓰기 외에도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교정, 추가적인 참고자료 수집, 표지 및 내지 디자인, 삽입 이미지 결정 등이 진행되며 몇 개월의 시간이 또 흘렀다.
특히 교정은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욕심에 끝이 없었다. 300여 쪽의 책 한 권당 5회~6회 교정을 보았고 기간도 8~9개월이나 소요되었다. 정말 지루하게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수정의 연속이었다. 이때에 출판사 교정 담당자가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드디어 인쇄되던 날에는 충무로 인쇄소까지 가서 경험 삼아 직접 둘러보기도 했다.
드디어 『마케팅 경영Ⅰ』·마케팅 경험과 통찰, 『마케팅 경영Ⅱ』·마케팅 기획과 실행, 『마케팅 경영Ⅲ』·마케팅 정보와 인프라를 차례로 출간했다. 인쇄된 글자 하나하나에는 내 생각이 살아있었다. 마침내 내 생각을 담은 책을 근 6~7년에 걸쳐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50대 중반에 시작해서 어느덧 60대에 이르렀다.
첫 번째 책을 받았을 때는 너무 감격스러웠고, 몇 번이고 책 냄새를 맡아보았다. 한 권을 집어 들고 사인을 했다. 항상 옆에서 지켜보며 차 한 잔의 여유를 건네준 아내에게 제일 먼저 건넸다. 그리고 기관의 지인들·학교 선후배·도서관 등에 기증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이어서 여러 가지 걱정도 되었다.
‘검색되지 않으면 존재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인터넷에서 검색되어야만 세상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교보문고·영풍문고 홈페이지에서 책을 검색하면 노출되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신기하게도 다양한 서점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출판사의 수고로 서평단 댓글이 달렸다. 혹시나 비난의 글이 달리지 않을까 내심 염려도 했다. 같은 전문분야 사람이 평가한 분석적인 글을 보고는 그리 비판적이 아니라서 다소나마 안도감이 들었지만, 반면에 독창성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드디어 전문분야에 대한 내 생각은 오랜 기간 인내의 세월을 거쳐서 열매를 맺었다. 여기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삶에 유익함을 전하고 싶은 내 생각이 담겨 있다. 이 세상에 왔다가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고, 내 생각은 3권의 책이 되어 오래도록 존재하며 독자를 만나게 되었다.
내 생각은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의 책장에
그 어느 사무실에
전국의 서점에
국공립 도서관에
내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