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만난 러브 스토리
그녀를 보자마자 마음이 설렜다. 그때 내 사랑을 처음 보았을 때 그랬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고, 마음이 들떠서 어쩔 줄 몰랐다. 단 한 번이라도 그녀를 더 보고 싶어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마음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컥 사랑에 빠졌다.
그녀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만난다고 해서 그녀를 즐겁게 하거나 마음을 사로잡을 재주도 없는 숙맥이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그녀와 데이트를 꿈꿨다. 그녀를 만나 데이트를 하면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남들처럼 팔짱을 끼고 걷고도 싶었다.
이미 오래전 이야기지만, 지금 상상을 해도 가슴 설레는 마음에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다시금 풋풋한 그때 감정이 피어오른다. 그때 내 사랑을 담아 기고한 글이 있기에 컴퓨터에서 꺼냈다. 대학 동문에서 ‘경영학과 50주년 기념집 에세이’에 기고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쓴 글이다. 여기에는 조금 더 수정하고 보완해서 적었다.
미녀는 이슬만 먹고사는 줄 알았다. 신비로워서 말을 잘 섞지 못했다. 외롭게 자라서 이성과 교제는 많이 서툴렀다. 좋은 말로 순진했고 나쁜 말로 좀 모자랐다. 그때 나는 그랬다. 그래도 풋풋한 내 사랑은 매년 학과에서 개최하는 모의임시주주총회 행사 때문에 시작되었다. 경영학과 학회장이 나에게 ‘대표이사’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인연이 만들어졌다.
다른 대학교 행사를 참고하고 싶었다. 그때 대학 캠퍼스는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정부 수립’을 외치는 시위로 늘 어수선했지만, 그래도 각 대학의 고유 행사들은 예정대로 개최되었기에 관람할 수 있었다.
학회장과 둘이서 열차에 올랐다. 얼마쯤 갔을까? 낯 모르는 두 여성이 우리 쪽을 자꾸만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중에 한 명이 유난히 내 눈에 꽉 찼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자꾸만 그쪽으로 갔다. 자석처럼 내 시선을 끌어당기는 어떤 신비한 힘이 흐르고 있었다. 이를 알 리 없는 열차는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헤어질 아쉬움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 여성은 우리와 같은 지하철을 탔고 내리는 역도 같았다.
우연일까? 두 여성이 우리 쪽으로 다가와서 눈이 마주쳤다. 아~, 학회장의 지인들이었다. 학회장이 능청스럽게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 4명은 가까운 식당으로 함께 들어갔다.
그녀와 마주 앉으니 심장이 더욱 두근거렸다. 마음이 따뜻해지면 체온이 올라가는 것일까?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긴장된 마음에 숟가락을 식당 바닥에 떨어트리고 숟가락을 집어 들다가 국까지 엎어버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그녀는 내 행동이 꽤나 우스웠나 보다. “미녀가 앞에 있으니 떨리나 보죠?”라는 말이 또렷하게 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식사를 어떻게 했는지도 몰랐다. 행사를 관람하고 모두 헤어졌지만 내 마음속에는 그녀를 향한 마음이 뿌리 깊은 자국으로 남았다.
그 후 학교에서 학회장을 만나서 물었다. “아는 동생들”이라고만 했다. “애인은 아니냐?”라고 재차 물었더니 분명히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안심하고 소개를 부탁했지만 학회장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는 아무런 단서도 방법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것도 모른 채 혼자 가슴앓이를 하며 3학년을 마쳤다.
필연일까? 4학년이 시작되던 봄이었다. 친척 여동생 졸업앨범을 뒤적이는데 그녀가 한순간 눈에 확 들어왔다. 몇 번이나 다시 봐도 그녀가 분명했다. 급히 앨범 뒤쪽을 보니 주소까지 나와 있었다.
그저 스치는 인연인 줄 생각했지만 주소까지 알게 되었으니 내 마음속에 남긴 흔적을 꼭 전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정성스럽게 편지를 썼다.
그녀와 굳은 인연이길 바라는 마음에 내 짝사랑을 곱게 담아 보냈다. 4학년 졸업식까지 근 1년이 넘는 동안에 수백 번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고 답장 없는 편지를 여러 차례 외롭게 썼다. 그녀가 편지를 받았는지 읽었는지 도무지 알 수도 없는 캄캄한 기다림이었다.
운명일까? 졸업을 했으니 취업을 하면 직장에 따라 떠나야 했다.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썼다. 1988년 2월 중순 어느 날 집으로 전화가 왔다. 그녀의 첫마디는 “오빠, 나 정아야!”였다. 순간 정신이 없었다. 쿵쿵거리는 내 심장. 그녀가 나에게 “오빠”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뭐라고 말해야 할지...... 그저...... 음력설 명절 다음날 만나기로 한 약속만 기억했다.
∥1988.02. 설 명절 내내 그녀를 만날 생각뿐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명절을 보냈다. 전에는 스치듯 보았지만 이번엔 서로가 약속한 첫 만남이었다. 거의 1년 반 만에 그녀를 만났다. 그녀를 보자 뭉클한 그 무엇이 밀려왔다. 그녀의 미소 짓는 모습이 내 마음속에 가득 채워졌다. 소중한 것이 생기면 그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했던가. 왠지 모습만 보아도 즐겁고 가녀린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났다.
그녀는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 함께 차를 마시고 공지천 호수를 거닐다가 집에 바래다주었다. 서로의 첫 교감과 대화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반가웠고 설레기만 했던 시간이었다. 헤어지는 게 망설여지는 그녀, 아쉬움에 또 보고 싶은 그녀, 늘 함께 있고 싶은 그녀였다.
내 마음속 허전한 빈자리는 그녀로 가득 채워졌다. 설 명절 추운 계절이었지만 세상 모든 것들이 봄날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다. 무심코 지나치던 세상 온갖 사물들도 따스하고 아름다웠다. 공지천 둑 길을 따라 저만치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도 마냥 아름답게만 보였다.
이제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세상이 이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 작은 움직임에도 달콤하고 향긋한 향기가 느껴졌다. 나는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는, 눈빛과 나지막한 말투와 부드러운 몸짓이었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던가. 만남이 많아질수록 처음보다는 어제가 어제보다는 오늘의 그녀가 더욱 사랑스러웠다.
∥1990.07. 그동안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녀와 결혼을 결심하고 전화를 걸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무궁화호 막차를 탔다. 춘천에 도착하니 밤 10시 40분이었다. 그녀가 마중 나와 있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우리는 공지천으로 갔다. 그녀와 처음 데이트하던 장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곳으로 갔다. 물안개가 뽀얗게 퍼져 피어오르고 강 건너 높은 산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물 위에 하늘거리며 반짝이는 가로등 빛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개비가 아주 조금씩 사~알~짝 내리고 있었다. 프러포즈하기에 정말로 좋은 분위기였다. 그녀의 손을 잡고 청혼을 했다.
“나와 결혼해 줄래?”
“싫어!”
“그동안 마음 아프게 한 것 모두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 줘.”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결혼 후 신앙생활을 같이 해요.”
“그래, 나도 종교를 인정하거든. 그럼 결혼해 주는 거지?”
“응...... 오빠...... 비가 많이 와, 다른 데로 가자!”
깊은 밤에 작은 빗방울이 안갯속으로 살포시 내리고 있었다.
그때 내 사랑이, 지금 내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