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월악산 등산의 추억
며칠 전 아들과 월악산 등산을 약속했다. 아들과 여행은 7년 전이 가장 최근이다. 그 사이에 아들은 군복무를 마쳤고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기에 듬직한 아들과 함께 등산을 하고 싶었다. 아들과 함께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어서 마음이 흐뭇하고 설렜다.
집에서 아침 6시에 출발했는데 고속도로는 아직도 캄캄했다.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날씨가 포근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제천 월악산으로 향했다. 가볍게 다녀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김밥과 간식거리 정도만 준비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유부가락국수를 먹었더니 속이 한결 편안해지고 온몸이 따뜻해져서 활력이 생겼다.
아들과 가벼운 이야기도 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다 보니, 어느새 오전 8시가 조금 넘어서 등산로 입구인 보덕암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하얀 눈이 2cm ~ 3cm가량 덮여 있었다. 우리가 사는 곳에는 아직 눈이 온 적이 없어서 그랬을까? 이 정도 눈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보여서 그냥 무심코 지나쳤다. 트렁크에서 배낭을 꺼내 둘러메고 등산을 시작했다.
드디어! 아들과 등산이다.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등산로에 깔린 눈이 처음부터 약간 미끄러웠다. 조금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시루떡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바위가 보였다. 초반부터 등산로는 워낙 급경사라 계단도 많았고 숨이 턱턱 막혔다. 가파른 길을 오르느라 힘이 들었고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눈은 얼음처럼 드문드문 굳어 있었고, 낙엽이나 돌 위에 쌓인 눈은 미끄럽고 위험했다. 급기야 앞서 가던 아들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더니, 하산할 일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이 길로 다시 내려가면 정말 위험하겠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황색 경고였지만 이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겨울 산에 아이젠은 필수다. 눈과 얼음 때문에 매우 위험하므로 등산화에 아이젠을 꼭 착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등산 중에 발생하는 끔찍한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젠을 생각조차 못하고 이 겨울에 등산하는 큰 실수를 한 것이다.
하봉을 지나 중봉에 오르다가 처음으로 하산하는 등산객을 만났다. “혹시, 여분의 아이젠 있나요?”하고 물어보았지만,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래도 정상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등산을 포기할 정도로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오르니 등산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울 산이었지만 바람은 그리 거세지 않았고 적당했다. 들이마시는 찬바람은 가슴을 시원하게 뚫고 지나갔다. 중봉에서는 아들과 둘이서 하나 둘 구령에 맞추어 목이 터져라 “야~~ 호~~”를 함께 외쳤다. 돌아오는 메아리 소리를 기대했지만 바람소리에 파묻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등산로 가까운 곳에는 모진 비바람을 견뎌낸 멋스러운 소나무가 곳곳에서 보였다. 굽이굽이마다 수천 년 동안 자리를 지킨 웅장한 바위들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오랜 세월과 모진 비바람으로 아름답게 빗어낸 멋진 작품들이었다.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뿌옇게 아른거렸고, 그 산봉우리를 둘러싼 하얀 구름층이 길게 퍼져 신비스러웠다. 계곡 사이사이에는 하늘빛을 담은 푸른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물을 따라 뿌연 안개가 넓게 펼쳐져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행여나 멋진 풍경을 놓칠세라 수시로 내려다보면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에 아들은 나보다 훨씬 앞서서 저 멀리 올라가고 있었다. 멋진 풍경에는 관심이 없는 것일까.
중봉을 지나 이정표는 어느새 상봉(영봉) 정상까지 500m를 가리켰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웅크리고 있던 불안감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래도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불안감을 억눌렀다.
앞서가던 아들을 불러 세웠다. 정상에는 아들과 둘이서 동시에 도착하고 싶었다. 정상에 각자 따로 도착하면 왠지 성취감이 덜할 것만 같았다. “같이 올라가자!” 무거운 발걸음에 숨까지 헐떡거리며 마지막 계단 위에서 막바지 힘을 쏟았다.
드디어 “정상이다!” 아들과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하고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아들 어깨를 두드렸다. 정상에는 먼저 도착한 등산객 몇 명이서 “월악산 영봉 1097m”이라고 새겨놓은 빗돌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정상에 오르면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은 게 사람 심리가 아니던가. 우리도 차례를 기다렸다가 기념사진 찍었다.
주변에는 오랜 세월 모진 날씨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풍파를 견뎌낸 굴곡진 나무들이 몇 그루 서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면서 새하얀 자연의 웅장함에 경외감이 들었고 그 속에 한없이 작은 인간의 존재를 다시금 느끼며 동영상과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정상에 깔아 놓은 데크 바닥 위에는 얇은 눈이 녹지 않은 채 그대로 쌓여 있었다. 우리는 눈 덮인 벤치 위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먼저 도착한 등산객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식사를 해야지. 아들은 준비해 온 김밥을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겨울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위험하다고 한다. 내려갈 걱정과 불안한 마음이 갑자기 속에서 올라와 김밥이 도저히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두 쪽 정도를 입에서 녹이듯 겨우 삼키고 나머지는 배낭에 다시 넣었다.
이제부터는 하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불안감은 기어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아이젠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얼마나 무모한 등산을 했는지 이제야 실감이 났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것인가. 우리는 무사히 내려갈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아들은 “다른 등산로로 내려가자!”는 말을 했다. 어떻게든 현 상황을 극복할 올바른 방법을 지금 당장 찾아야만 했다.
이 위험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등산객들은 모두가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었다. “혹시, 여분으로 남은 아이젠 있나요?” 다른 등산객들에게 물어보았다. 모두들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겨울에는 아이젠을 꼭 챙겨야 한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얇은 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의 잘못이 컸다. 어떻게 할 것인가! 아들은 “다른 등산로로 내려가자!”는 말을 또 했다.
잠깐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내려가다가 혹시 큰 사고를 당하는 게 아닐까. 미끄러져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하면 어쩌지? 전에 아들이 음주운전을 하고 새벽에 전복사고를 일으켰던 기억이 잠깐 스쳤다. 아~ 다급한 이 순간에 하필 방정맞은 생각이라니.
정신을 차리고 옆에 있던 등산객에게 물어보았다. “내려가는데 좀 덜 위험한 등산로가 있나요?”라고. 그는 동창교 코스를 가리켰다.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헬기장 가기 전에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길도 만만치 않다.”라고 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기에는 그 등산로도 온통 눈으로 하얗게 뒤덮여 있어서 여간 예사롭지가 않았다.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고 온몸이 떨리는 전율에 가슴까지 찌릿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무사히 내려갈 수 있을까? 자연 앞에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다시금 느꼈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던 것일까? 고민 고민 중에 문득 “119”가 떠올랐다. 이곳에는 어떤 해결방법이 있지 않을까? 이때가 오전 11시 40분 경이다. 휴대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월악산 영봉 정상까지 올라왔는데, 눈 때문에 미끄러워 도저히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아이젠만 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야죠?”.
통화자는 먼저 “다친 사람은 없느냐?”라고 물었다. “다친 사람은 없는데, 내려가는 길이 너무 위험해서 전화를 했습니다. 아이젠만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으나, “아이젠만 전달하는 방법은 없으니, 출동을 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잠깐만요, 출동이 무슨 뜻이지요?” 하고 되물었더니 구조대가 직접 정상까지 오겠다는 것이었다.
순간 눈앞에서 스치듯 땀을 흘리며 올라오는 구조대의 모습이 지나갔다. 우리 때문에 해발 1097m까지 구조대를 올라오게 한다...... 너무 심한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가...... 좀 더 좋은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잠시만요...... 제가 다시 전화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조금 전 그 등산객과 동창교 코스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 벨소리가 들렸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이때가 오전 11시 50분 경이다.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입니다.”라면서 우리의 상황을 자세히 물었다. “부상자는 없으나 위험한 상황이고, 아이젠만 2개만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답변을 했다.
통화자는 우리의 정확한 위치를 물었다. “영봉 정상에 있다.”라고 했더니, “주변 등산로에 안전쉼터 2곳이 있다.”라고 안내를 했다. 알려주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니 세상은 온통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언뜻 보기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저 멀리 아래쪽 숲 속에 희미하게 안전쉼터가 정말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다급하게 “네,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은 “어디? 어디?”하면서 되물었다. 하얀 눈과 나뭇가지들이 가려서 숨은 그림을 찾는 것 같았지만 분명히 보였다. 순간 “안전쉼터가 빨간색이었다면 더 잘 보였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통화자는 “그곳에 가면 아이젠이 비치되어 있다.”며 비밀번호를 알려 주었다. 아~, 구세주를 만난다는 것이 이런 상황일까? “하나님! 감사합니다.”가 입 밖으로 저절로 나왔다. 주변 등산객들도 궁금했는지, “뭐래요?”하며 내게 물었다. “안전쉼터에 아이젠이 있답니다!”
이때 또다시 전화가 왔다. “혹시, 다른 문제가 있으면 이 휴대폰 번호로 연락을 주세요.”라고 했다.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구조의 끈을 놓지 않는 통화자의 세심한 배려가 어찌나 고마운지. 이런 분들 때문에 세상이 아름답고 따스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아들과 함께 급히 안전쉼터로 내려갔다. 불과 100m도 안 되는 짧은 거리라고 느꼈다. 눈 때문에 미끄러웠지만 이때는 전혀 개의치 않고 급히 서둘러서 내려갔다. 안전쉼터의 자물통 비밀번호를 맞추었다. 추위 때문에 얼어서 열리지 않았다. 장갑 낀 손으로 녹이며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았다. 마음은 조급하기만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들이 “번호를 맞추는 위치가 잘못되었다.”라고 말했다. 아들이 빨간색 선에 번호를 맞추고는 금방 열었다. 급한 마음에 번호를 엉뚱하게도 측면에 맞춘 것이었다. 마음이 급하니 내가 이런 실수를 다하는구나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자동충격기함, 구급약품함, 비상물품함 등이 세로로 서있었다. 그 안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였다. 아이젠이 있는 함의 비밀번호를 맞추고 열었다. 아이젠을 담은 검은색 팩 2개를 꺼내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이젠 살았다.”, “감사합니다.”가 또 저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아들에게 말했다. “대한민국, 만세다!”, “우리가 이렇게 도움을 받는 것은 국가 시스템 덕분이란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밖으로 나왔다.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등산화가 눈 위에 착! 달라붙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그토록 미끄럽던 등산화가 눈 위에 착! 착! 붙었다. “아~ 이젠 살았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나니 그동안의 불안감과 두려움은 어디론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정신까지 시원하게 맑아졌다. 안전하게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일부러 얼음을 꾹꾹 밟아보던 아들도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되뇌었다. 감사한 이 순간은 아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게다.
우리는 다시 정상으로 올라갔다. 올라왔던 등산로를 따라 다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미끄러질 위험이 사라지니 몸도 마음도 훨씬 가벼웠다. 이렇게 발걸음이 안전한 것을, 왜 아이젠을 준비하지 않은 채 무모하게 등산을 시작했단 말인가. 사실 우리는 한 번도 겨울에 등산을 한 적이 없었다. 아이젠 착용감도 이번에 처음으로 느꼈다. 등산화가 눈 위에 착! 착! 붙는 느낌이 어찌 그리 좋았던지.
하산하는 도중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다. 만약에 119 상황실에서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로 구조 연락을 취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땠을까? 우리가 아이젠을 구한 것은 043 119의 적절한 조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상에서 중봉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전화를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산세가 워낙 깊어 전파가 닿지 않는 듯싶었다.
오후 1시경 중봉 정상에 올라 다시 전화를 하니 연결되었다. 첫 통화자는 남자였는데, 이번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먼저 그동안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덕분에 아이젠을 구해서 안전하게 내려가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여자분은 “조심해서 안전하게 내려가세요.”라고 했다. 감사의 뜻을 전하고 나니, 마음도 발걸음도 한결 가볍게 내려갈 수 있었다.
어느새 제법 가파른 내리막길에 이르렀다. 여기서 만약에 아이젠이 없었다면? 그림이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우리는 눈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엉덩이가 땅에 닿도록 무릎을 굽혔겠지. 손으로 땅을 짚어가며 한 발짝씩 조심조심 내려가야만 했으리라.
만약에 실수로 미끄러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몇 m를 속절없이 굴렀겠지. 우리는 돌에 긁히고 나무나 바위에 부딪혀 크게 부상당하고 병원에 실려 가기 십상이었으리라. 아마도 사고가 났다면 이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위험한 구간이었다. 상상만 해도 어휴~, 정말 가슴이 철렁하고 오금이 저렸다.
그 가파른 내리막길을 안전하게 내려오고 얼마쯤이나 더 걸어왔을까? 어느새 왼쪽으로 시루떡 같은 바위가 보였다. 올라갈 때 등산로 초입에서 보았던 바로 그 바위였다. 마침내 등산로 입구까지 무사히 안전하게 도착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이제는 아이젠을 반납할 차례다. 생명줄이었던 아이젠과 이별을 해야만 했다. 아이젠을 화장실 세면대에서 깨끗하게 씻었다. 이렇게 반납하는 것이 감사의 표현이고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아이젠 4짝을 나무 데크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오늘의 무모함과 감사함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까지는 약 9km 떨어져 있었다. 가는 도중에 상점에 들러서 과일 한 박스라도 사들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외진 곳이라서 마땅한 상점이 없어 그리 하지는 못했다. 아쉽지만 빈손으로 통화자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
통화자에게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아이젠을 반납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마음이 그토록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마치 중요한 행사를 정신없이 치르고 난 뒤에 느끼는 멍한 기분이랄까...... 공원사무소 정면에서 앞쪽으로 올려다보니 웅장한 월악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 저리도 높고 험한 산을, 어찌 그리도 무모하게 올랐단 말이던가. 이번에 아들과 함께한 등산은 등골이 오싹한 추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