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청춘

내 인생에 승부수

by 상록수
© joelhenry, 출처 Unsplash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상 고등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 친척들 10여 명은 모두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나는 꿈조차 꿀 수 없었다. 이런 열등감과 수치심은 길거리에서 나타났다.


교복을 입은 또래 고등학생들이 앞에서 걸어오면 나는 얼른 피했다. 내 모습은 교복이 아닌 평상복이었고 짧은 머리가 아니라 장발이었다. 학생들끼리 떠들며 웃는 당당한 모습을 보기만 해도 주눅이 들었다. 나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러워서 뒷골목으로 피했다.


공장에 다니면서도 이런 내 모습은 내가 아니길 바랐다.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지고 싶었고 그 길을 찾아 헤맸다. 공장 일을 마친 후에는 가까운 교회 야간학교에 다니기도 하고, 검정고시 독학 교재인 동양강의록을 구입해서 틈틈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굳은 의지가 있어도 공장일과 독학을 병행하는 것은 어린 나이에 쉽지 않았다. 공장 일을 하면서도 정밀가공 원통연삭 기술을 성실하게 익히며 짬짬이 노력하는 흉내(?)를 냈지만, 흐지부지 시간만 흘렀기에 마음이 늘 무거웠다.


그렇게 5년이 지난 어느 봄날에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사로 복직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가슴에 응어리가 풀리는 듯했다. 아버지가 더없이 자랑스러웠고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이제는 가정 상황이 크게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공장에 이대로 머물러 있어야 하나?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문제는 마음가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며칠 동안 고민했다. 고민 고민 끝에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꿈을 가진 갈매기처럼 더 높이 날고 싶었다. 현재의 원통연삭 기술자로 머물면 당장에는 마음이 편하겠지만, 더 차원 높은 꿈을 향해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뜨거워졌다.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지금까지 5년 동안 성실하게 배웠던 원통연삭 기술과 공장생활에 대한 미련은 바람결에 안개처럼 사라졌다.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찾아가 말씀드렸고 허락을 받았다. 중학교 졸업 후 5년이 넘어서야 아버지와 새어머니 집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는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냥 건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도전했다. 이때야말로 몸은 힘들어도 희망으로 가득했고 행복했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아니기를 바랐지만, 새어머니로부터 밀려오는 불안감을 서서히 느낄 수 있었다.


새파란 하늘에

밝은 태양 빛나는데

바람결에 먹구름

비바람 몰아치면


혹시나,

푸른 산 깊은 계곡

할퀴지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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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7.21. 새벽 1시 10분. 아버지 집에 공부하러 왔는데 그새 먹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은 ‘나보고 집을 나가라’는 것이었다. 학업에 대한 5년간 못 이룬 꿈을 이루려고 왔는데 이게 웬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코 중단하지 않을 것이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학업을 이어가겠다고 아버지에게 내 뜻을 확실하게 밝혔다.


이 난국을 어떻게든 슬기롭게 풀어내야만 했다. 아버지 말대로 집을 나가야 하나...... 그것이 나와 아버지를 위한 길인가? 아버지가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내가 떠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안방으로 건너가니, 새어머니가 “뭐라고 해요?”라고 재촉해서 묻는 말소리가 들렸다. 어지간히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버지 집에서는 냉랭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입시학원 다니는 동안에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이서 종종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대하는 눈빛과 밥상까지 차갑게 변했다. 이 모든 징후들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밀려오는 불안감에 더 이상 학원을 다닐 수가 없었다. 불과 4개월 만에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을 크게 느꼈다.


얼마나 하고 싶었던 공부였는가. 얼마나 간절했던 고등학교 진학이었던가. 이제 겨우 4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상황이 이처럼 쉽게 변한단 말인가. 사람의 말이 어찌 솜털처럼 가볍고 유리처럼 깨지기 쉽고 여름철 숙주나물처럼 쉽게 변한단 말인가.


아버지에게 무릎이라도 꿇고 애원하고 싶었다. 학원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매달리고 싶었다. 아버지! 나는 자식이 아닌가요? 애원하고 매달리며 눈물로 호소하고 싶었다. 내 마음만 간절했을 뿐 새어머니 때문에 더 이상 학원에 다닐 수가 없었다. 마음을 굳게 정리해야만 했다.


내 가슴속에는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빛이 있고 보석이 있네.


아무리 거센 비바람 몰아쳐도

내 꿈을 가슴에 품고

고이고이 간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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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 것인가? 더 이상 고등학교에 다닐 수 없으니 포기하자. 대신에 고졸 검정고시로 방향을 바꾸자. 내 마음이 충분히 아팠으니, 지난 과거는 미련 없이 툭툭 털고 용기를 내서 검정고시에 도전하자. 방향을 굳히고 나니 이제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편안한 마음으로 큰고모를 찾아갔다. 큰 고모부가 경영하는 벽지공장에서 일하고 숙식하며 저녁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몇 개월 후에는 종로 청진동 독서실로 옮겨서 검정고시에만 전념했다. 다른 욕망의 사슬은 모두 끊어 버리고 하루에 4시간~5시간씩만 잠을 자고 오로지 독서실, 학원, 밥집만 다니면서 청춘을 불살랐다.


앞으로의 미래는 불확실했지만, 그래도 청춘을 불사르게 만드는 삶의 원동력은 꿈이었다. 미래보다 오늘의 현실이 더 시급했다면 끝까지 버틸 수 없었을 게다. 다행히 공장생활을 하면서 저축한 돈이 조금은 있었기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어느덧 1년여 시간이 지나 무사히 검정고시 시험을 치렀고, 이태원동 신문보급소로 옮겨서 생활을 시작했다.


∥1981.08.24. 오늘은 합격자 발표일이다. 서울시교육위원회에 공중전화를 거는 동안에 무어라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은 쿵쿵 뛰고 있었다. 잠깐의 기다림...... 그 사이로 흐르는 적막을 깨고 “합격입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온 세상을 환희로 바꾸었다. 들뜬 마음에 둥둥 나는 듯 한 발걸음으로 신문보급소 사무실까지 달려왔다. 먼저 할머니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다.


오늘 모든 게 해결되었다. 가슴에 묻혀있던 무거운 돌덩이도 발바닥에 박혀있던 티눈도 모두 사라졌다. 오늘로써 검정고시에 대한 고통도 열등감도 모두 사라졌다. 세상은 환희로 가득했다. 이제는 한 차원이 더 높은 대학입학을 위한 노력만이 남았다.


서울시교육위원회에 공중전화를 걸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가슴을 조였다. 혹시 불합격한 것이 아닐까. 잠깐의 기다림에 그토록 길고 심장이 두근거렸는지. 그 긴장감과 기다림을 깨고 “합격입니다.” 여직원의 짧은 한 마디에 가슴이 뭉클하더니, 뜨거운 기운이 터져 나와 온 세상에 퍼졌다.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다.


내 가슴속에 박혀있던 학력에 대한 열등감,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수치심은 여직원의 단 한 마디에 모두 안개처럼 사라졌다. 오랫동안 가슴에 틀어박혀 마음을 괴롭히던 가시가 확 뽑히는 느낌이었다. 이 기쁨과 성취감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 고생 많았어. 수고했다” 나는 내 마음을 스스로 다독여 주었다.


누군가 내 얼굴을 봤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묘사했을 것이다. 공중전화박스에서 신문보급소 사무실까지 200여 m를 공중에 붕붕 뜬 기분으로 달렸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환한 얼굴에 발걸음은 그리 가볍고 당당하고 수 없었다. 오로지 기쁨만이 가득했다.


∥1981.08.26. 여의도 서울시교육위원회에 갔다.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 합격증서를 받았다. 버스를 타고 금자탑 학원으로 향했다. 수학선생님을 만났다. 이번 검정고시 시험 상황이 궁금해서 물어보니, 85명 중에서 20명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중에는 가까운 친구 최○렬도 있었다. 떨어진 급우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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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에 고졸 자격증을 받았다. 친구들보다는 늦었지만 어엿한 고졸이 되었다. 오랫동안 가슴에 흉터로 남았던 학력 열등감이 사라졌다. 이것은 암울한 과거의 사슬에서 풀어주는 열쇠와도 같았다. 합격증서는 대학교 진학의 꿈을 꾸게 만드는 마법의 증서였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 활짝 열렸다.


그 사이에 군복무가 시작되었다. 병무청 군복무 중에도 대학입학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말년에는 지인의 소개로 병무청에 특별채용 될 기회가 있었지만 포기했다. 대학에 가는 길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마침내 학력고사 시험을 치르고 점수에 적합한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1983.01.19. 오늘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뎌야만 했던가. 시간은 참으로 빨리 지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 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할 때 대학 입학이란 멀고도 먼 길이더니, 그동안 지나온 모든 시간들은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합격자 명단을 차례차례 읽어 내려가다가 내 이름을 발견했다. 긴장감이 순식간에 감격과 기쁨으로 바뀌었다. 높다란 빌딩처럼 결코 내 것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대학생이 되었다. 가슴속에 열등감은 하얗게 지워지고 새로운 자긍심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합격자 발표는 대학에 가서 직접 확인했다. 학교 직원이 명단을 벽에 붙이자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나도 비집고 들어가 명단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짧은 순간에 나도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흘렀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내 이름이 보였다!” 드디어! 대학에 합격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두 눈으로 몇 번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나는! 대학생이다~~”라고 목청껏 소리치고 싶었다. 내 마음속 꿈을 따라 묵묵히 걷다 보니 드디어 꿈을 이루었다. 토닥토닥 가슴을 두드리며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래! 잘했다. 잘했어. 정말 수고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캠퍼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노란 잔디밭 위에서 시릴 듯 파란 하늘을 자꾸만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설레는 내 마음을 스스로 억제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군복무 중이므로 휴학을 해야 했고, 내년에 복학할 때까지 기간이 남아 있었다. 내게는 이 기간 동안 재도전하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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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해서 집에 오니 할머니와 작은 고모가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분이 나를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선뜻 나에게 물어보지를 않았다. 혹시라도 불합격이라도 했을까 봐 조심스러워서 그랬으리라.


가방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합격했어요!”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아이고, 잘했다! 네가 내 소원을 다 풀었다.”라는 말을 가슴속에서 토해내듯 터트렸다. 할머니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지만, 주름진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 가슴속 틈새마다 켜켜이 눌어붙었던 오랜 원한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듯했다. 얼마나 가슴에 맺힌 한이 많으셨으면 그랬을까.


할머니는 며칠 후 고향으로 내려가 친척집에 두루 다니면서 여봐란듯이 자랑하고 다니셨다. 친척 중에서 대학생은 오직 나 하나였기에 당당히 자랑하고 싶으셨던 게다. 당시에 시골 고등학교에서는 4년제 대학교 진학자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입시경쟁이 정말 치열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청춘은 한마디로 도전이었다. 현실의 벽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망감에 좌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현실의 벽을 어떻게든 넘어서기 위해 갈고닦으며 도전을 계속했다. 이러한 시기를 몸소 체험했기 때문일까?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시가 있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다. 담쟁이는 덩굴나무이고 줄기에 덩굴손이 있어서 담벼락에 착 달라붙어 위로 잘 올라가는 식물이다. 현실이라는 벽 앞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믿으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을 담쟁이에 비유해서 쓴 시라서 내 마음에 담았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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