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골탈태

애벌레 대학생활

by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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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는 날개가 없다. 나비의 어린새끼인 애벌레는 날개가 돋으려면 탈피하고 성체로 변신해야 한다. 그 때까지는 날개를 달기 위해 성장하는 과정이다. 이 시기 애벌레는 많이 먹고 잘 자라야 탈피를 하고 완전한 성체로 변신할 수 있다.


애벌레가 성체로 변신하면 뭐가 다르지? 날개를 달고 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서 이 세상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아직 가보지 않은 세상이고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둡고 답답한 땅속 보다는 저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싶은 거다. 그게 애벌레의 꿈이다.


나는 독학으로 그토록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애벌레임을 잘 알기에 견문을 넓히고 지적 능력을 키우고 싶었다. 우리 집안 장손으로서 인정받고 싶었고, 사회적으로도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상을 마음껏 날고 싶었고, 애벌레처럼 다양한 영양분을 흡수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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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때는 어학에 집중했다. 인문사회대학 영어 어학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수없이 반복해서 영어 테이프를 들었다. 당장의 필요성이 약해서였을까. 실력이 늘지 않아 답답했다. 어느 덧 1년을 지내고보니 영어 공부만 하려고 대학에 왔나 싶었고, 취직에 얽매인 대학생활에 회의감도 들었다.


취미삼아 테니스를 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어학실에서 밖을 내다보면, 학생들이 라켓을 들고 테니스장으로 가는 게 가끔 보였다. 답답한 어학실에만 박혀있던 나는 그들이 부러웠고, 테니스를 멋지게 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테니스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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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초부터 나의 가치관과 대학생활의 방향을 고민했다. 서서히 어학보다는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더 커졌다. 그 시대의 거센 민주화 물결이 나를 사회적인 문제로 이끌었던 것일까.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성장하고 싶었다. 전공인 경영학보다 사회과학이 더 흥미로웠고 관심이 더 갔다. 품위 있는 교양인, 정치·경제·사회·역사·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견문이 넓은 지식인, 실천하고 행동하는 지성인이 되고 싶었다.


이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마음이 움직이니 몸도 따라 움직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특히 교양서적으로 지정된 책들을 중심으로 읽었다. 그러나 교양서적이라고 해서 가볍게 읽히고 쉽게 이해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중 하나가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다. 분명히 한글인데도 몇 줄을 읽기가 어려웠다. 어찌된 일인지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할까? 답답한 마음에 경제학과 이○호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갔다. 평소 강의를 인상 깊게 들었기 때문이다.


“교수님! 이 책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 됩니다.”

“자네, 올해 몇 살이지?”

“네? 26살입니다.”

“그 책의 저자는 세계적인 철학자이고, 자네보다 인생을 몇 배나 오래 산 사람이야. 그런 사람의 책을 쉽게 이해하려고 했나?”


순간, 정신이 멍했다. 마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 줄을 놓았다. 정답을 기대했는데 거꾸로 질문을 받았으니 아무런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정신이 멍한 상태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잠깐 정적이 흘렀다.


“......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읽어보게. 대학생활 하는 동안 사회과학분야 책 300권을 읽어보게. 그러면 세상이 어느 정도 보일거야.”


순간 명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씀을 듣고 나니 독서의 길이 잡혔다. 특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읽어보게.”라는 말씀이 한 장의 사진처럼 가슴에 생생하게 찍혔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자꾸 반복해서 읽다보면 세상이 보인다고 했다. 그 이 후로는 이 말씀을 떠올리며 책을 읽었다.


https://www.pexels.com/ko-kr/photo/5699418/

∥1985.06.22. 기말고사를 끝내고 경제학과 이○호 교수님 연구실에 찾아갔더니 멜론을 꺼내 손수 깎아 주셨다. 멜론을 먹으며 몇 마디 조언을 들었다. 1. 책을 많이 읽으며 열심히 공부해라. 2. 진정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거든 권력지향적이 되지 말라. 3. 어떤 정치·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거기에 수반되는 상대적인 면도 함께 생각해라. 4. 대부분 학생들이 유행을 따라간다. 대학은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


교수님은 언제나 말씀 도중에 언성을 높였다. 어떤 학생들은 그것이 불편해 교수님을 싫어한다고 했지만, 나는 진실성이 와 닿아 좋았다. 오히려 교수님 말씀과 행동을 인간적으로 느껴 가끔 연구실을 찾아가 조언을 들었다.


그 후로는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책을 사기 위해서 방송국에서 방청객 아르바이트도 했다. 덕분에 서점에서 책을 골라 사는 즐거움도 누렸다. 어느 날 아는 학우가 나를 TV방송에서 보았다는 말을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내 존재가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독서 외에도 동아리 활동에 마음이 끌려서 사회문화연구회에 가입했다. 몇 권의 책을 추천 받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시위에 참가하고 동아리에 모여서 춤추며 놀기도 했다.


∥1985.06.02. 어제 저녁 무렵에는 동아리에 갔었다. 1학년 후배들이 문무대 입소식을 한다며 술파티를 하고 있었다. 서로 떠들고 노래하는데 후배가 선배 한 명을 조용히 불러냈다. 조금 후에 온 몸이 젖어서 들어왔다. 그런데 아무런 불쾌감 없이 서로 웃고 즐겁게 얘기를 했다. 내용인 즉, 1학년 후배들이 선배를 불러내 작은 연못 연적지에 집어 던졌다. 술 파티 정도로는 불만이라며 실력행사(?)를 한 것이다.


이어서 선배들을 강제로 잡아 메고 나갔다. 예외는 없었다. 후배들의 힘에 나는 저항도 못하고, 옷 입은 채 그대로 연적지 연못에 던져졌다. 그 짧은 순간, 화가 치미는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늦은 밤에 젓은 옷 때문에 밀려오는 오한을 떨치려고, 다함께 “해방춤”, “농민춤”을 추다보니 옷이 마르고 몸은 뜨거워졌다. 당장은 곤란한 일이지만 나중에는 추억이 되리라.


이때는 1985년 군부독재 시절이라 민주화 시위가 매일 반복되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이상적인 세상은 민주주의 국가여야 했다. 생각이 바뀌면 언행도 바뀌는 것일까? 학우들과 시국에 대해 토론을 하면서 내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쳤다.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정부 수립”의 타당성을 외쳤다. 학교에 나오면 총학생회관 인근에서 장구·꽹과리·북 소리와 학우들의 춤과 노랫소리가 매일같이 캠퍼스에 울려 퍼졌다.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그렇다고 모든 학생들이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정부 수립을 외쳤던 것은 아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같은 학과 친구들의 생각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였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 공부했지만, 서로 다른 성장과정과 경험을 갖고 있었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다르고 생각도 달랐다. 심지어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학생들에게 반감을 품기도 했다. 민주화된 시대에 살면서도 반감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단점을 찾아서 자신의 생각을 강화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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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때였다. 여전히 사회과학에 관심이 있었기에 관련 서적들을 읽었다.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을 더 높이 더 멀리 보고 싶었고,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에 대해 이해하고 싶었다. 다양한 책을 통해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생각했고, 정치·경제·철학·종교·역사 등 폭넓은 사회사상에 관심을 갖고 견문을 넓혔다.


3학년 1학기 초에는, 인문사회대학 사회학과의 ‘한국사상’을 수강 신청했다. 독일에서 공부하신 전○국교수님께서 강의를 했다. 첫 강의에 들어가니 다른 학과 학생은 나 하나인 듯 했다. 교수님께서 내 이름만 부르며 “누구냐?”고 얼굴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서는 강의 도중에 학생들을 다소 무시하는 발언을 자주 하셨다. “데모를 하더라도 뭐 좀 알고나 해라.”, “네 놈들이라고 별다를 줄 아니? 똑같을 것이다.”와 같은 식의 말씀이었다.


어느 날 교수님 수업시간이었다. “너희들 ‘정의’가 무엇인지 읽어보기라도 했느냐.”면서, 공부 좀 하라며 수업을 끝내고 나가셨다. 나는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교수님을 뒤따라갔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용기는 자기 확신에 정비례한다고 했던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복도에서 “교수님! 제가 다음 시간에 ‘정의’에 대해 발표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더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그 시기에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 서적을 읽었기 때문에 발표에 자신 있었다. 과제가 생겼으니 책을 다시 읽고 요약하고 글로 썼다. 발표 자료를 만들고 여러 번 반복해서 연습했다.


다음 강의 시간이 되었다. 발표자료 복사물을 학우들에게 나누어 주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 과목은 수업시간이 3시간 연속이었다. 무려 2시간 반 동안 발표를 했다. 교수님의 질문에도 큰 어려움 없이 대답했고 교수님은 보충설명을 간단히 해주셨다. 무사히 발표를 마쳤다. 교수님께서는 “그래, 수고했어!”라고 말씀을 하자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래서일까? 나중에 성적표에는 ‘A0’가 찍혀 있었다. 이 발표 덕분에 교수님께서 학점을 높게 주신 것 같았다. 이는 대학생활 중에서 수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추억으로 오래도록 남았다.


3학년 2학기 초, 경영학과 사무실 근처에서 학회장을 만났다. 경영학과 행사인 ‘모의주주총회’ 대표이사를 맡아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갑작스런 부탁에 망설였다. 한 학기를 매달려야 하는 일이었다. 다른 적임자를 찾아보았지만 없어서 결국에는 허락했다.


행사를 마치고 기념사진

행사를 함께할 이사·주주·연출·진행자 20여명 모집했다. 시나리오 작성과 행사준비를 위해 이사들과 5일간 합숙했다. 작성한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지도교수님의 조언을 들었고, 다른 대학교 모의주주총회 행사도 학회장과 관객으로 참석해 관람했다.


모의주주총회까지 약 3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반복되는 연습의 연속이었다. 행사 며칠 전부터, 관객들을 모으기 위해 여러 학과에 홍보를 했다. 11월 19일, 약 300석 강당에는 자리가 모자랐고 통로에도 관객들이 서서 관람하고 있었다.


관객들의 웃음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주주총회장에서 시끄럽게 연출하는 주주를 향해 ‘몰지각한 사람’이라고 말했더니, 큰 웃음소리가 나서 오히려 우리들이 당황했다. 이 말은 당시 군부독재와 추종 언론에서 민주화 운동 세력을 향해서 자주 쓰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에는 평가회를 가졌고 지도교수님을 비롯해 모두들 모여서 의견을 들었다. 짧은 기간이라 이론적으로는 다소 미흡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잘 소화했다는 칭찬이었다. 이는 20여명이 함께 하는 행사를 리더로서 이끌었다는 점에서 대학생활의 새로운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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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4학년이 되었다. 졸업 후 직장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취업걱정에 그 동안 못했던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했으나 힘들었다. 여전히 어학에는 재능이 없었다. 인생은? 인간적인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게 좋은 인생일까? 등등 스스로 만들어 낸 이런 고민과 갈등이 꼬리를 물었다.


∥1987.03.08. 철학과 김○견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갔다. 오랜만에 연구실에서 뵈었다.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맞으셨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교수님께 여쭙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를 어쩌지요? 지금은 총장님을 뵈러 가야 하는데요. 외국에 다녀올 일이 있는데, 3월 20일 이후에 오시면 좋겠는데요”

“알겠습니다.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1987.04.22. 철학과 김○견 교수님과 면담을 했다. 인간의 존재는? 그 가치는?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하나? 요즈음에는 이런 수많은 고민 속에서 나와의 갈등이기에 이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그것은 갈등이 아니라 성숙하는 과정이다.”

“인생에 대한 해답은 없다.”

“선각자들이 해답을 말해도 그것을 듣고 알아차릴 수준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가치관은 내 자신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며 해답을 얻어야 해결되는 문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흔히 돈·명예·권력 등에 큰 가치를 두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것들은 인간의 욕심에 의해 성취되는 것들이다.”


“나는 욕심에서 졸업했다.”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 받았어도 그만두었다.”

“어느 제자가 돈 2천만 원가량 훔쳐갔어도 고소하지 않았다.”

“스스로 못난 사람 바보가 되고 싶다.”


교수님의 말씀 속에서 오늘날 이기주의와 지나치게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생각들에서 벋어난 초월적인 면을 보았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반드시 돈·명예·권력만으로 사는 게 아니다. 그 깊은 뜻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다소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내 자신의 수련이 중요하고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삶도 중요하다.”

“욕심을 버리고 낮아지는 것이 겸허이고 겸손이다.”

“예수께서 죽음에 이르러, 자신을 죽이려는 무리들을 사랑한다고 하신 그 정신에 나는 못 미치지만 그러한 정신을 갖고 싶다.”


교수님 연구실에서 나왔다. 어떻게 살 것인지와 가치관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했으나 이타적인 삶·겸손·사랑과 같은 의미 깊은 말씀을 듣고 나니 더욱 혼란스러웠다. 더구나 나는 은유적 표현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욕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살아라.”

“남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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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을 통해 내 삶을 변화시키고 교양인·지식인·지성인이 되고 싶었다. 독서를 통한 생각, 발표를 통한 용기, 행사를 통한 자긍심 등 지식과 행동에 대한 소중한 경험들이 나를 더욱 성장시켰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을 예전과 다르게 만들었고, 세상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 속으로 나가야 했다.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가득했다. 식품 대기업에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거쳐 공채로 입사했다. 연수원에서 입사동기 70여명이 연수교육을 받은 후에 전국으로 흩어져 배치되었다.


이렇게 세상을 향한 나의 발걸음은 시작되었다. 공장에서 일하던 애벌레가 드디어 환골탈태 하여 날개 달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앞으로 펼쳐질 이 세상에서, 나는 어떤 꿈들을 꾸고 어떻게 이루어가며 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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