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길

경영컨설턴트로서 걸어온 발자취

by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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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토대는 무엇일까. 인생 선배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학교를 졸업하면 첫 직장이 중요하다.”라고. 대체로 처음 입사한 회사가 건설회사면 건설 관련 분야로, 식품회사면 식품 관련 분야로 인생길이 이어지는 경우가 흔히 있다. 첫 직장에 따라서 삶의 토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또한 직장의 근무부서가 삶의 토대를 결정하기도 한다. 경영관리 부서는 신규 사업 및 경영전략 기획, 인사관리 부서는 직원 채용 및 인적자원 관리, 재무관리 부서는 자금조달 및 회계관리, 생산관리 부서는 구매 및 생산성 관리, 마케팅 부서는 마케팅 전략 및 영업관리, 홍보 부서는 광고 및 홍보 등으로 전문역량을 키우고 전문가로서 창업을 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직장에서 습득한 경험·지식·인맥 등이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삶의 토대가 된 것은 직장생활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식품 대기업에 입사해서, 영업부·판매관리부·마케팅실을 차례로 거치면서 실무지식을 익혔다. 또한 한국생산성본부, 한국방송광고공사 등에서 별도의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삶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전문 역량을 키우고 전문가의 꿈을 키웠다.

전문가는 어떤 분야에 대해 이론과 실무 경험을 쌓고 남들보다 더 많이 알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짚어 주는 사람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전문가가 되어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어느 기업이든, 경영 상태를 진단하고 대표자 및 임직원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경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창안하거나 전략을 제시하는 전문가로 활동하는 꿈을 꾸었다.




© dinoreichmuth, 출처 Unsplash

그런데 1997년 한국경제에 IMF 외환위기가 닥쳐 직장을 잃었다. 회사가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고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는 현실을 보면서 새로운 직장을 선택할 것인가 창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전문가가 될 것인가 이러한 갈림길에서 한 동안 고민을 했었다. 전문가로서 아직 준비가 부족했기에 내 삶은 온통 뒤틀려버렸고 현실의 냉엄함과 서글픔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변해야만 했다.

인터넷이 크게 활성화되던 2000년 초였다. 당시 인터넷에는 블로그 개념도 없었고 저작권 개념도 희미했고, 양질의 저작물보다는 상업적 광고가 도배를 하던 시절이었다. 인터넷방송 과정을 수강하면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마케팅에 대한 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론보다는 실무자들에게 필요한 경험적인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이 글이 나에게 기회가 되었다. 능률협회와 정보산업협회에서 강의를 요청했고, 이벤트 회사에서 컨설팅 의뢰가 들어왔다. 이러한 일들은 나에게 경영컨설팅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했고, 전문가의 길을 새롭게 시작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막연했던 전문가의 꿈은 더욱 선명해졌고, 새로운 직장이나 창업보다는 전문가의 길이 뚜렷하게 보였다.

경영컨설턴트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경영지도사 자격증이 필요했다. 물론 자격증 없이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 베인앤드컴퍼니, AT커니, 딜로이트 등에서 경험을 쌓아 활동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다른 길을 향했다. 대학전공·직장경험·마케팅관리사 등 그동안 쌓아온 내 경험과 나이를 고려해 자격증을 선택했다.

결심을 했어도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약 1년 정도 기간이 필요했다. 이 기간 동안 교육을 받았고 현실적인 절박함이 동기가 되어 더욱 땀과 노력을 쏟았다. 시험을 보던 날은 지금도 생생하다. 시험장에서 A3 시험지 10장 양면에 모든 지식을 쏟아 써 내려갔다. 나중에는 손이 덜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기진맥진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집에 겨우 도착해서는 바로 드러누워 안정을 취했던 기억이 있다.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경영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취득하니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 관련기관의 진단·컨설팅·평가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직장인에서 전문가인 경영컨설턴트로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그 후에 전문가로서 활동하는 데에는 근무하던 직장에서 익힌 마케팅 분야 실무 경험들이 큰 자산이 되었고, 진단·컨설팅·강의 활동에도 크게 활용되었다.

이렇게 변신에 성공은 했지만 마냥 아름답고 오색찬란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 후에도 경영컨설턴트로서 전문 역량을 지속적으로 높여야만 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한국능률협회, 한국표준협회, 한국경영기술컨설턴트협회, 매일경제신문사 등에서 각종 교육들을 이수함으로써 끊임없이 자기계발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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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지도사는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진단·교육·컨설팅·자문을 통해 중소기업의 경영상 문제를 해결하거나 방안을 제시한다. 기업진단을 통해 회사의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수행계획을 수립하여 컨설팅을 단계적으로 실행한다.

컨설팅을 수행하면 모든 기업들이 경영상 문제점을 해결하고 성장할까? 사람이 하는 일이 어찌 그리 쉽게 해결될까. 회사의 상황에 따라서 쉽게 개선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컨설팅 완료 후에는, 1년 단위로 자문(코칭) 계약을 하고 경영역량 강화와 문제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지도를 하기도 한다.

기업의 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마음은 대표자·임직원·경영지도사 모두 동일하다. 다만 기업의 경영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에서는 서로 다를 수 있다. 기업은 전문 분야별로 경영관리·인사관리·재무관리·생산관리·마케팅관리·정보관리 등으로 나뉘어 있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경영진단과 문제해결에 복잡성이 매우 높다. 이에 따라 디테일한 부분에서 회사 측과 경영지도사의 문제해결 방법이 서로 다를 수도 있다.

나는 주로 경영전략 및 마케팅전략 컨설팅을 전문으로 했다. 직장생활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중소기업이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성장잠재력 증대·재무 건전성 향상·기업가치 제고를 지향했다.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목표관리·경영 및 마케팅 전략개발·혁신활동·후계자 지도·경영자문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했다.

경영컨설턴트로서 활동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이러한 경험은 개별 기업별로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들이라 일반화할 수는 없기에, 문제점을 발견하고 최대한 기업의 상황에 적합한 최적의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이 외에도 강의를 하거나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심사평가 업무를 수행했다. 각 기관의 전문위원으로 참여하여 중소기업 및 청년창업자들에게 몇 년간 상담·코칭 업무를 수행했다.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실무적 경험과 이론들을 담아 『마케팅 경영』을 제목으로 3권의 책을 시리즈로 출간했다.


컨설팅을 수행한 기업들 중에는 기억에 남는 회사들이 있다. 창업 컨설팅을 받았던 기업이 근 10년 만에 매출액 수백억 원대 디지털기업으로 성장했다. 제품 브랜드 컨설팅을 받은 기업이 100여 개국 수출을 통해 수백억 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렇다고 기업의 성장이 모두 컨설팅 효과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일익을 담당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외에도 대기업에서 강의 및 워크숍을 진행한 일, H자동차 회사 연구팀을 대상으로 기술사업화 교육을 했던 일, 중소기업의 제품개선을 위해 설문조사 분석 후 방안을 제시했던 일, 사업자금 대출을 받고자 했던 기업들의 적정성을 정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직원들과 함께 동행 평가했던 일 등등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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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이 어찌 좋은 사례만 있겠는가. 컨설팅 추진이나 수행 과정에서 경험한 안타까운 사례들이 있기에 여기에 간략히 소개한다. (출처 : 최정규, 《마케팅 경영 Ⅰ》, 지식과감성, 2018, pp.293~295)

전라도의 한 홈패션 업체는 제품이 매우 우수하였지만, 유통경로 개설 및 관리에 애로를 겪고 있었다. 거래처 신규 개척과 유통 단계별 가격관리에 경험이 없었던 게 원인이었다. 제조회사가 소매점포를 운영하듯 관리하고 있었다. 마케팅 컨설팅을 추진했지만, 대표자가 망설였다. “컨설팅을 해 봐야 효과가 없더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다고 했다. 거래처 관리에 대해 역량을 높일 필요가 있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한 소프트웨어 업체는 개발을 위해 몇 년간 수십억 원을 투자하고도 뚜렷한 개발방향을 설정하지 못해, 대표자와 여러 부서 직원들이 혼란을 겪고 있었다. 전형적으로 기술 지향적인 연구개발과 신제품 개발이었다. 개발방향이 불분명하니 직원들 개개인의 업무에 혼선을 빚고 있었다. 개발 초기부터 시장조사를 토대로 방향을 정하고 개발을 진행했더라면, 이런 혼란과 낭비는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자동차 관련 소모품을 생산하는 한 기업은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한 총판 회사와 계약에 얽매여서, 매출이 지지부진한 채로 몇 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부터 거래처 다양화가 필요했지만, 다양화를 하지 못해서 5년이라는 계약기간이 종료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경우도 보았다.

컨설팅 수행 중에 오해로 중단한 사례도 있다. 대표자에게 자료를 요청하고 수행할 과제를 제시했더니, 바쁘다는 이유로 과제를 차일피일 미루며 수행하지 않았다. 자료가 미흡하여 더 이상 컨설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대표자는 “컨설팅을 수행하면, 컨설턴트가 모두 다 알아서 하는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안타까운 사연들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대표자는 모든 의사결정을 자신이 올바르게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의사결정이 직원들의 이기적인 편리성에 휘둘리고 있었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한 식품회사의 매출이 100억 원대에 이르는데, 대표자가 일일 생산량 자료만 보고 받고 있었다. 그 또한 누계자료는 없었다. 한마디로 대표자는 무엇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핵심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임원들은 “체계를 잡으려고 해도, 직원들의 역량이 따라오지 못한다.”면서, 관리체계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업력 20년에 매출이 100억 원이 넘었는데 언제까지 관리체계를 잡겠다는 것인지 대표자와 임직원들에게 되묻고 싶었다.

다른 회사에서는 대표자가 자금관리나 수치관리에 약하다면서 은행직원 출신 친척에게 회계관리 업무를 모두 맡겼으나, 그분 또한 관리역량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대표자는 그를 믿고 맡겼다고 했으나, 회계에 대해 기초 지식이 부족했기에 매월 매출 및 비용 마감 자료들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 전월 마감자료가 당월 20일이 넘어도 올바르게 나오지 않아 대표자가 힘들어했다.

수입 판매를 하는 또 다른 회사에서는 대표자가 재고관리를 포기한 상태였다. 대표자 스스로 “우리 회사는 사업 특성상 재고를 맞출 수가 없다”라고 했다. “직원들이 몰래 가져간다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막겠느냐” 고 했다.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의 대답도 대표자와 똑같은 대답을 했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이 외에도 자신의 사업 분야와 전혀 다른 사업에 진출하면서도 사업 타당성 검토를 제대로 거치지 않아 낭패를 본 기업, 창업 후 대학교수의 말만 믿고 광고를 잘못해서 행정처분을 받고 폐업의 위기에 몰린 기업, 10여 년이 넘도록 이런저런 아이템(제품, 서비스) 검토만 하다가 신규 사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기업, 새로운 아이템을 연구개발하고도 시장생산을 추진하지 못하는 B2B 기업 등이 있었다. 나는 이러한 기업들을 만날 때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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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경영컨설턴트의 길은 내 적성에 맞는 것이었을까? 재미 삼아 한 사이트에서 직업적성 테스트를 해보았다. 85개 문항에 대답한 결과는 “확고한 목표와 신념으로 인생을 리드하는 사령관”이라고 했다. “이상적이라기보다는 현실 문제에 대비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전형적인 리더형”이라고 했다. 추천 직업으로는 몇 가지 중에서 경영컨설턴트의 우선순위가 가장 높았다.

이 길을 걸어왔기에 결과가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내 적성이 원래 그러해서 이 길을 선택했던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다.

경영컨설턴트는 내 삶에 어떤 의미일까. 생계의 토대이기도 했지만, 나는 기업들이 성장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랐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해야만 각종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고용이 증가함으로써, 한국경제가 성장하고 국부도 창출되기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병을 고침으로써 건강한 생활을 하는데 기여한다. 법조인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경영컨설턴트는 기업의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나아가 국가경제 성장에 기여한다.

나는 사회적으로 선망하는 의사나 법조인은 아닐지라도, 기업과 한국경제 성장을 통해 국부를 창출하는데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왔다. 내가 걸어온 이 길에서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고 남겨놓은 커다란 족적도 없다. 하지만 내가 한국경제 성장에 티끌만큼이라도 기여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작으나마 자긍심을 느끼고 있으니 나름 인생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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