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에 청춘

고진감래를 믿으며

by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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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의 나는 춥고 애잔한 삶을 살았다. 가족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삶의 토대를 마련해야 했다.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오직 육체적인 노동력뿐이었다. 친구들이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을 때, 나는 내 삶의 토대를 스스로 마련해야만 했다.


공작기계 기술을 배우려고 했다. 기술을 배우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애잔한 현실에 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밝은 미래를 꿈꾸며, 기술을 익히고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면 언젠가 행복한 날이 오리라 굳게 믿으며 성실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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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이즈음부터 내 삶의 조각들을 틈틈이 일기에 쓰기 시작했다. 애잔한 현실과 내 생각들을 일기장에 그대로 적으며 마음을 어루만졌다. 18세가 되던 해 겨울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 삶이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육체적이고 경제적인 것이었다.


∥1977.01.04. 계속되는 영하 10도의 날씨다. 연삭기계에 물이 떨어지면 그대로 얼어붙는다. 그 얼음을 떼어가며 불로 녹여가며 원통연삭 정밀가공 일을 한다. 손이 시려서 도저히 일이 안 된다. 손은 동상에 걸려서 빨갛게 부어올랐다.


고생을 이기는 자에게는 복이 온다. ‘고진감래’를 머리에 아로새기며 일한다. 한 달 부은 적금이지만 은행통장을 보면 그저 마음만은 미래에 부풀었다.


서울 고척동에서 공장생활을 1년 정도 하던 시절이다.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찬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서 손에 동상이 걸렸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침을 놓아주던 기억으로, 동상이 걸리면 바늘로 찔러 피를 빼며 문질렀다. 그러면 피가 통하고 며칠 있으면 괜찮아졌다.


그토록 추운 날씨인데 난로를 안 피웠나? 연탄난로를 2~3곳에 피워 놓았으나 공장이 넓고 단열이 안 되어 소용이 없었다. 가끔 손을 녹이기 위해 가까이 가서 불을 쬐는 정도였다. 이토록 열악한 환경에서도 월급을 꼬박꼬박 저축하며 삶의 토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공장 기술 계통에는 “기술을 배우려면 한 곳에 오래 머물면 안 된다.”는 말이 있었다. 나는 정밀가공 연삭기술자가 되기 위해 서울 고척동·신정동·마장동·청파동에 있는 여러 공장들을 옮겨 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이 당시 마장동에 황○석 씨가 기억에 남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었기에 관심이 갔다. 그는 권투 세계 챔피언을 꿈꾸며 도장에서 훈련했다. 성격은 과묵했지만, 활짝 웃을 때는 참으로 순박해 보였던 모습이 기억난다. 나중에 동양 챔피언이 되었고, 세계 챔피언에 도전할 때는 TV를 보면서 응원했다.


∥1979.05.13. 청파동 공장을 옮겼다. 합판으로 만든 방 하나가 있었다. 나 혼자서 방을 여러 번 닦았다. 닦느라고 닦은 방인데 벽은 거무스름하고 벽지는 들떠서 한쪽은 찢어 버리고 조금 성한 부분만 남았다. 유리창도 4장 중에 2장은 없고 전기장판도 온도조절기가 고장이라 못쓴다.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진동 때문에 시커먼 먼지들이 방에서 흩날린다. 점심시간에는 공장 직원들이 이곳에 작업복을 걸고 식사를 하는데 어찌해야 할까. 방도 쉽게 더러워지고 기름 냄새도 날 텐데...... 내일부터가 걱정이다.


이 청파동 공장에서 숙소의 생활여건은 최악이었지만, 정밀가공 연삭기술은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현장에서 쓰는 일본 용어로 마찌꼬바, 소규모 공장이라서 다품종 소량 가공이었다. 그 덕분에 크고 작은 부품과 외경 및 내경 정밀가공 원통연삭 기술을 다양하게 익힐 수 있었다. 오직 기술을 제대로 배우고 경험하기 위해서, 그 어떤 다른 어려움들은 모두 참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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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2.11. 아침 날씨가 춥다. 내경연삭기를 공회전해서 열을 올려야 했다. 스위치를 켜고 공회전을 시키면서 먼지 묻은 기계를 닦았다. 공회전하는 내경연삭기에 순간 장갑이 말려 들어갔다.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이 비틀린 채 기계가 겉돌았다. 왼손으로 급하게 스위치를 끄고 손을 빼보니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부러지지는 않았다. 잘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천만다행이었다. 난롯가에서 아픈 손가락을 만지며 나도 모르게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를 드렸다.


∥1980.01.18. 영하 15도의 매서운 날씨다. 오늘 저녁은 추워서 얼어 죽겠다 싶다. 전기장판이 고장 나 냉방에서 이불만 덮었다. 일기를 쓰는데 손이 곱다. 어제와 오늘 계속해서 깡추위다.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 걱정된다. 전기장판을 고치자니 또 큰돈이 들어갈 게 분명한데 사장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1980.02.27. 지난번 부상당한 손가락이 며칠 전부터 심하게 아팠다. 돈을 아끼느라 병원에 가지 않았었다. 부상당한 지 2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아프다. 다음날 사장에게 손가락을 보이며 “병원에 가야겠다.”라고 했더니, “지금은 돈이 없다.”면서 다음에 보자고 했다. 서운했다. 손가락 병신이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병원비를 내가 부담하기로 마음먹고 병원에 갔다. 다행히 X-RAY 결과는 괜찮았다. 뼈가 깨졌으나 그동안 뼈가 완전히 붙어서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다행히 손가락 병신은 면한 셈이다.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뼈가 깨져서 아팠는데도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참으로 무모하게 2개월이 넘도록 일을 했다. 나중에는 통증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사장에게 “병원에 가겠다.”라고 말했지만 병원비도 주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사회적으로 노동환경이나 의료보험이 열악해서 내가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뼈에 별 이상이 없어서 그나마 천만다행이었지만, 사장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크게 실망했다.


∥1980.03.26. 겨울 내내 고장 난 전기장판 위에서 잠을 잤다. 저녁에 누우면 발이 시리고 아침이면 어깨가 뻐근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한다. 전기장판을 내 돈으로 고치자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데, 사장은 신경을 쓰지도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연탄난로마저도 아예 피우지 않는다. 연탄을 사는데 돈 들어간다고 사장이 제때에 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는 찬물로 세수를 하고 저녁에 머리를 감는다. 직원들이 “추운데 어떻게 머리를 감느냐.”라고 말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더운물이 없으니 찬물로라도 씻어야 한다.

며칠 전에는 영하 3도까지 내려갔었다. 추위를 견디려고 겨우내 백열전구를 이불속에 넣고 잤다. 전구가 있는 부분은 제법 따뜻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따뜻한 봄이 온다. 추운 겨울에도 전기장판 없이 참고 견뎌냈는데, 서늘함 정도를 불평해서야 되겠는가.


이 내용도 청파동 공장에서 고달픈 삶을 적은 글이다. 이 공장은 기술 습득 이외에는 그 어떤 생활환경도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고장 난 전기장판 위에서 한 겨울을 지냈다. 추워서 이불속에 백열전구를 켜고 그 열로 추위를 조금이나마 달래며 잠을 청했다.


이러한 현실의 괴로움이나 어려움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나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이 공장에서는 기술을 익히는데 중점을 두었고, 공장생활의 모든 어려움과 고달픔은 부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며 꿋꿋하게 견디고 참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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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차분히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인생이 어찌 평탄하고 행복하기만 할까. 시련을 겪을 당시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것과도 같았다. 때로는 나를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지만, 기술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뎌야만 했다.


인내는 단순히 시간이나 상황을 견디는 것이 아니다. 희망을 품고 포기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꿈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인내를 통해 더욱 성장하고, 내면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항해와 같다. 감정의 파도에 휘말려 포기하면, 결코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인내하며 파도를 헤치고 나가면, 그 끝에는 내가 꿈꾸던 열매인 정밀가공 연삭기술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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