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꿈을 찾아서

중년에 이르러 찾아가는 행복

by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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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가족·이웃이 즐겁고 기쁘고 만족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렇다고 모두가 행복한 것일까? 그러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꼭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나만의 방식대로 사노라면 종종 마음이 까칠해지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게 된다. 감사할 줄 모르고 따뜻한 사랑을 베풀지도 못한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내 마음속에 부정과 어둠을 몰아내고, 긍정과 밝음을 불러와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종교 활동을 하거나 제3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에 하는 말이다.


오래전에 건강가정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으며 직접 체험을 했다. 이러한 경험들을 2012년 건강가정지원센터 경기도 단위 공모전에 응모하여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 생애 최고의 상이다. 개인적으로는 공개하기가 부끄러운 이야기가 있지만 원문을 조금 수정해서 여기에 적었다. 나만의 개인적인 경험이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행복을 찾는 이들에게 간접 경험의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 어릴 적 소년시절에는 소박한 꿈이 하나 있었다. 어른이 되어 결혼하면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었다. 집안에는 아이들의 밝은 웃음이 항상 넘쳐나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여유롭게 생활하는 꿈,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다.


어린 나이에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나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과 사랑을 모르고 자랐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나의 존재는 외톨이였다. 누구를 붙잡고 응석을 부리거나 떼를 써보지도 못했다. 가정은 행복과 사랑이 가득한 공간이 아니라 항상 서글픔과 불안이 가득 찬 곳이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어느덧 성인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미고 신혼생활을 보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태어나 지금은 고등학교 1학년과 3학년이 되었다. 어느새 한 여자의 남편이고, 1남 1녀의 아빠이고 집안의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힘겹고 무겁게 느껴졌다.


내 마음속에 소박한 바람은, 직업적인 일들이 잘 풀리고, 아이들이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 주고, 아내가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기대와 희망이었다.

이를 위해 전문서적을 읽고 아이들에게 가정교육을 하고 아내에게는 자기 계발을 요구했다. 오늘보다 내일은 마음과 지식이 좀 더 성장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행복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어느 날 문득 집안 분위기를 살펴보니 소년시절에 꿈꾸었던 행복하고 화목한 그런 집이 아니었다. “아빠만 집에 들오면 분위기가 썰렁해진다.”는 아이들의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어려서 아버지 때문에 불안에 떨었던 것처럼, 내 사랑하는 가족이 나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니......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아내의 표정은 왠지 어둡고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다투면서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고 가슴속에 쓰라린 생채기를 남겼다.


나의 소박한 기대와 희망이 아이들과 아내에게는 지나친 욕심이었단 말인가. 기대와 희망이 무너져버린 자리에는 허탈과 울화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현실 앞에 분노가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났고 행복은 보잘것없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힘들었고 이 모든 것이 전부 다 내 책임인 것만 같았다. 내 소년시절 꿈은 이게 아니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나 혼자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래서 작년 6월경 아이들 학교의 추천을 받아 교육청에서 근 7개월간 매주 1회씩 상담을 받았다. 이 과정을 딸아이는 거부했고 아들은 수용했다. 아내는 창피하다고 했지만, 나는 정말 성심을 다해 성실하게 임했고 관련 서적도 몇 권 읽었다. 어느새 심리적인 안정감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었다.




몇 개월이 흐른 지난 4월 어느 날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행복한 갱년기 부부 프로그램” 안내 문자를 한통 받았다. 선착순이란다. 순간, 이것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다급한 생각부터 들었다. 반드시 참석해야만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석에 이끌리듯 서재로 들어갔다. 급하게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신청부터 서둘러 마쳤다.


그 후에 아내에게 이 프로그램을 설명했다. 평소에는 대부분 아내에게 먼저 말하거나 상의를 했지만, 이번만큼은 내 마음대로 먼저 신청했다. 아내는 먼저 상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렇지만 프로그램 취지를 자세히 설명했더니, 다행히 아내는 이해를 하고 내 의견에 따랐다.


달력에 5회 참석할 일자를 미리 표시해 놓고 겹치는 일정들을 모두 조정해 놓았다. 소년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이 생긴 것이었다. 그만큼 내게는 가정의 행복을 찾는 일이 소중하고도 눈물겹도록 간절한 희망이었다.




© nate_dumlao, 출처 Unsplash

며칠 후 첫 모임이 있었다. 낯선 부부들과의 첫 만남이라 다소 어색했지만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가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다소의 동질감과 심리적 위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직업상 교육을 하거나 받기도 하지만, 5회 동안 받은 교육은 그 어떤 교육보다도 내 인생에 참으로 값진 것이었다. 가족의 행복 찾기보다 더 소중한 교육이 어디에 있겠는가 싶어 다른 일정이 생겨도 우선순위를 이 프로그램 참석에 두었다.


남자와 여자의 생리적 차이, 부부관계, 아내의 신체적 정신적 변화, 다른 부부들의 애환과 이혼 이야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타나는 갱년기, 늙음을 맞이해야 하는 나이 등의 강의를 들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내가 전혀 잘 알지 못하는 일들이고,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새로운 것들이었다. 이번 교육을 통해 중년기에 나타나는 변화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일정에 따라 5회를 모두 수강했고 뜻밖에 예쁜 선물도 받았다.


그동안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많은 일들이 나에게만 특별히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그저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반적인 일들이라는 생각들. 이런 일들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는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변화에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순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문득 마음속에서 커다란 깨달음이 일어났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먼 미래의 행복은 생각하면서도 현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의 기대치와 비교하며 불평하고 불만스러워했다는 생각. 살아온 인생이 어느덧 중년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저 멀리에 있는 미래의 행복을 찾으며 오늘의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속 초라한 풍경을 보게 되었다.


인식하고 있든 아니든 간에 그동안 “파랑새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파랑새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현재의 삶 속에 있다는 생각.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머리맡 창가에서 평화롭게 놀고 있는 비둘기가 자기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바로 그 파랑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처럼 말이다.


나만 그렇게 살았던 것일까?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함께 교육을 받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왔다는 사실에, 무거웠던 내 마음이 다소나마 가벼워졌다. 그러니 서로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내 마음이 좀 더 부드러워지고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졌다. 이제야 행복의 실마리를 찾은 듯했다. 독일 소설가이며 시인 헤르만 헤세(Herman Hesse)는 인생의 목적은 오로지 행복뿐이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행복에 대해 누군가가 한 말들이 헝클어진 실타래가 풀리듯 떠오른다.


“인생의 행복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다만 그쪽으로 손길을 뻗는 사람만이 그 행복을 만질 수 있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다. 웃고 있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제는 소년시절의 꿈을 이루어 보려고 한다. 기대치를 낮추고 가까이에서 기쁘고 즐거운 행복을 찾아보려고 한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보려고 한다. 오늘의 행복을 찾아 따뜻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보려고 한다. 그것이 비록 소소하게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밤에 그토록 늦게 잠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아내의 생활 태도에 대해서도, 아침에는 항상 먼저 일어나 아이들과 아내를 깨워야 하는 일상에 대해서도 이해하려고 한다. 아이들이 저녁에 늦게 집에 들어와도,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해도 좀 더 따뜻한 눈길로 보려고 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나의 진솔한 마음을 전하고 조금 더 다정한 행동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가족들의 행복 또한 소중한 것이니까.


오늘은 잠자는 아이들 발을 주물러 주면서 아침잠을 깨워본다. “사랑한다.”는 문자를 가끔씩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낸다. 아내의 손을 잡고 가까운 공원을 천천히 거닐어 본다. 비싸지는 않지만 예쁜 목걸이를 아내의 목에 걸어준다. 1박 2일 가족 여행을 하면서 일상의 잔잔한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하루에 4천 마디 말을 해야 한다며 조잘조잘 대는 아내에게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귀를 기울인다. 이렇게 작은 행복들을 토닥토닥 보듬고 쌓다 보면, 오늘의 삶 속에서 파랑새를 발견하고 소년의 꿈은 아름답게 이루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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