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과 페미. 이 단어들이 낀 대화는 참... 참여하고 싶지 않다. 아직 우리나라는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게 정착되어 있지 않은 과도기라고 생각하고, 여혐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본다. 이런 과도기에선 누군가의 의견은 뉘앙스에 따라 곡해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가진 의도를 글로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어려운 세상이다. 사람들은 달을 가르키면 가끔 그 손가락에 대해 더 집중하기도 하니까. 이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하고도 싶지 않았지만, 결국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한숨만 나온다.
요즘 한창 뜨거운 논란의 중심인 기안 84. 그가 쓴 회춘이란 작품이 좋아서 리뷰를 한 적도 있었다. (뒤로 갈수록 내용이 점점 산으로 가니 문제지만) 사실, 그의 개그 코드는 웃기기보다 불편함으로 다가올 때가 많아서 복학왕은 잘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네이버 어플 메인 화면을 뒤적거리다가 회춘인 줄 알고 클릭한 웹툰이 하필 복학왕 광어 인간 2편이었다. 내용을 보다가 회춘이 아니네 하고 뒤로 가려했건만, 논란의 그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안 본 눈 사고 싶다 정말)
봉지은이란 캐릭터가 배 위에 조개를 올려놓고 깨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아 이거 난리 나겠는데... 싶었는데 역시나, 난리가 났다. 언급하고 싶지도 않아서 넘기려 했다. 그런데 그의 사과문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풍자... 풍자라니.
기안 84. 공부 다시 하고 와라. 풍자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런 단어를 쓰다니 그건 정말 화가 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그냥 이 지저분한 논란이 지나가길 바랐다. 그런데 내가 화가 정말 났던 건, 어제, 매불쇼 때문이었다.
사실, 정영진의 평소 스탠스를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가 꽤나 이성적인 판단을 할 때도 많다고 본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대해 말한 그의 판단엔 오류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제일 먼저... 기안 84의 만화로 국민 청원에, <나 혼자 산다>를 하차하라는 것까지 나온 건 명백히 너무 간 것이다. 청원 기사를 보고 한숨이 나왔다. 국민 청원은 아니다 정말...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우선 이 부분은 먼저 정리하자.
그가 그린 장면은 다분히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들이 일하는 곳이 아쿠아리움이니 수달을 표현하려는 의도이니, 이런 말은 하지 마라. 적어도 이 부분은 실드 치지 말자. 조개를 배에 두고 깨는 것과 거기에서 나오는 물이라던지 그리고 그런 그녀와 잤고, 사귀기 시작했다는 내용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성적인 내용이다. 작가가 이를 고려하지 않고 그렸을 리 없다. 그리고 그 성적인 내용이 어린아이들도 보는 웹툰에서 나왔다는 점. 19세 이상이 보는 웹툰도 아니고 수위조절에 실패한 것은 맞다. 성적인 노림수가 분명한 장면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것은 웃기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작가가 의도 1도 없이 그렸을 리가 없는 장면이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첫째, 논란의 장면은 맥락을 끊고 봐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다. 맥락이 없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정영진의 발언부터 보자. 정영진은 매불쇼에서 맥락을 끊고서 보면, 세상 그 어떤 문화콘텐츠에서의 성적인 묘사가 들어간 것은 다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여성 비하, 여성 혐오를 담고 있는 장면을 다 잡을 수 있다며 82년생 김지영의 책 문구를 내민다. 이 부분에서 실소가 나왔다. 그가 방송에서 친히 읊었던 82년생 김지영의 한 구절을 보자.
“좋겠다. 남편이 벌어다준 돈으로 커피를 마시고. 그래도 아들이 있어야지 딸은 시집가면 끝이야”
작가는 그 대사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다. 여성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 그 시선 안에서 느끼는 무기력. 그런데, 기안의 광어 인간에선 대체 봉지은 사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만약에 정말 취업이 어려운 세상에서 자신의 귀여움으로 밖에 승부를 볼 수 없는 봉지은의 고민이 제대로 묘사가 되어 있다면,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있었더라면 그건 풍자이자 사회 비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없다. 다만 주인공 우기명이 보아도 능력 없는 봉지은이란 인물이 상사와 자고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는 그 광경을 보는 것 그 이상 그 이하의 무엇도 없다. 그냥 몸을 팔아 자릴 유지하는 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맥락이 없는 그 지점에서 사람들이 화가 난 것이다. 정영진 그의 말처럼 맥락을 끊어봐서가 아니라 맥락이 없어서다. 없어서.
단순히 여성 혐오적 묘사를 했다고 열 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둘째, 봉지은에게 감정 이입한 여자들이 난리 치는 것이 아니다.
정영진은 말했다. 스스로를 낮게 생각하지 말라고. 이 부분은 진짜 화가 났다. 여성 독자들은 봉지은에 감정 이입해서 화난 것이 아니다. 봉지은이 무시당했다고 그 장면을 통해 우리가 무시당한다고 느껴서 화난 것만은 아니란 말이다. 그녀가 만화 속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고 우리가 그렇게 비춰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작가가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무슨 선?
여기서 기안 84의 사과문에서 등장한 풍자란 단어를 가져와야겠다. 먼저, 풍자의 제대로 된 뜻부터....
풍자는 과장, 왜곡, 비꼬는 방법이고 제일 중요한 것은 권위를 가진 주인공을 부정적으로 제시하고 이 모습을 과정 왜곡해서 현실 권력을 뒤엎는 것을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풍자의 시선은 아래에서 위를 향한다. 양반이 서민들을 비웃으면 모욕이지만, 서민이 양반을 비웃으면 풍자가 된다. 왜?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것이 어려운 세상에서 이를 비꼼으로써 한 편의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것. 그것이 풍자다.
그런데, 기안의 광어 인간 2편에서 어디서 그런 풍자를 느낄 수 있을까? 여자가 남자보다 아래라는 것이 아니라. 직급으로 보았을 때, 그녀가 제일 아랫사람 아닌가. 먹이사슬 맨 밑에 있는 그녀를 비꼬는 것은 그냥 모욕일 뿐이다. 그녀가 만약,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취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먹이사슬 제일 아랫사람을 비꼬는 내용을 그려놓고 풍자라고? 코웃음이 나오는 처사다. 저 장면은 성적으로 자신을 이용해 정직원이 된 여자를 단순히 그냥 그려낸 것 이외엔 아무 의미가 없다. 기안에게 묻고 싶다. 저 묘사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 진짜 저걸 풍자라고 생각하냐고.
권력이 아닌 사람을 조롱하는 것에 분노하는 것인데, 이를 페미들이 난리 친다고 볼 수 있는가? 이건 풍자도 아닌 것을 저속하게 사용한 작가에 대한 분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여기서 여혐은 빼자 제발. 이건 여성 혐오를 떠나 권력이 아닌, 권력 아래에 있는 자를 비꼰, 모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란 점이다.
작가는 누구나 표현의 자유가 있다. 표현하는 것은 자기 마음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화난 건, 작가의 표현이 저질이어서이다.
질이 낮은 것에 분노한 것이다.
성적인 묘사를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하라. 다만 그 묘사엔 맥락이 있어야 한다. 포르노에 대해 사람들은 작품성을 가졌다고 하지 않는다. 포르노가 격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담긴 질 낮은 표현과 수위 그리고 맥락 없음 때문이다. 자극적인 장면을 담고 있는 영화들 중에도 작품성이 뛰어난 것들은 많다. 결국, 작가가 자신이 그려낸 것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함인가는 작품의 질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 사람들은 그 점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질 낮은 표현이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그 장면은 이런 사건들과 상황들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1도 없는, 마치 포르노의 묘사처럼 의미 없는 질 낮은 표현이었다는 점. 작가가 자신의 수준을 드러낸 장면이었고, 이에 분노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를 비판한 여성들은 모두 페미인 양 몰아가는 것. 페미는 정신병이니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여성 혐오에 해당한다.
19금 장면을 그려놓고, 풍자를 하고 있다는 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풍자가 뭔지 제대로 알고 쓸 생각을 해야 한다. 적어도 작가라면.
한 번 더 강조하지만 그가 여혐을 해서 그를 공격하는 것만이 아니다. 표현이 저급해서 사람들이 화가 난 것이지. 원한다면 계속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작가의 표현의 자유는 막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굳이 3류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저급한 표현을 해놓고 풍자라는 단어 뒤에 숨지 말길 바란다. 그리고 정영진은 사람들이 왜 분노하는지 제대로 알고 말해라. 차라리 이 사건에 대해 어렵다고 이야기를 유보한 최욱이 낫다.
매불쇼 정영진의 이야기 중에 하나 공감하는 것이 있다.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다른 연예인들과 제작진이 있으니 사과했을 거라고 하는 그의 말엔 100% 동감한다. 사실 기안 84는 현재,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지 않고 있다고 본다. 문제의 본질을 알았다면, 작품보다 저급한 저따위 사과문을 가지고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