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아작이 난지 너무 오래되었다. 이젠 약발도 잘 듣지 않고, 잠시 서있는 것도 어려워지면서 운동은 꿈도 못 꾸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나마 앉아 있는 것 마저 힘들어지면서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한때 사재기로 잔뜩 구매해 놨던 저주파 치료기가 요즘 효자노릇을 하는 중이다.
무료한 일요일 오후,
허리에 전기 자극 패드를 잔뜩 붙여놓고, 어제 자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 중이었다.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살인자. 한 여성의 집에 찾아와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딸까지 무참하게 죽인 한 남자. 그 남자는 그 사건 이전, 다른 살인사건에도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그 일은 무혐의를 받았다고 한다. 정말 볼수록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대한 방송을 보는데... 허리가 아니라 팔이 서늘해지는 느낌. 역시, 인간이 제일 무섭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젓는데... 팔에 든 서늘함은 방송 때문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반쯤 열린 내방 문틈으로 누군가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에.
아아아아악!!!!!!!!
방을 뚫고 나간 나의 비명 소리. 범인은 고양이었다. 내 방 안으로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던 녀석은 호다닥 도망을 갔고, 가게에 있던 엄마가 집으로 뛰어 들어오셨다. 무슨 일이냐며 묻는 엄마에게 놀란 목소리로 “엄마, 우리 집에 고양이가 들어왔어!!!!!!” 라며 연실 소리쳤다.
우리 집은 가게 집이다. 가게와 집이 결합된 구조. 항상 가게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지만, 집 안으로 고양이가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난 동물농장의 애청자이고, 랜선으로 수많은 고양이들의 애교를 보는 것을 즐기지만, 갑작스럽게 집안에 들어온 고양이는 나에게 무서움 그 자체였다. 엄마는 깜짝 놀랐다며 부산을 떠는 날 보고 혀를 차셨다. 고양이 한 마리에 뭘 그렇게 놀라냐고. 하지만 단순히 고양이어서 놀란 것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하게 내 방에 찾아온 누군가에겐 당연히 놀랄 수밖에. 아무리 가게 문이 열려있었다 한들, 내방까지 오려면 꽤 많이 들어와야 하는 상태. 예상치 못한 낯선 이의 방문은 그 자체로 공포가 될 수 있다. 겨우 고양이에도 이렇게 놀라는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놀란 가슴을 여러 번 쓸어내리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나저나 그 녀석은 왜 여기까지 들어온 걸까?
우리 집은 고양이와 인연이 아예 없는 집은 아니었다. 가게 창고는 고양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다. 겨울이면 가게로 찾아온 고양이 한두 마리가 마대자루 위에서 겨울을 났고, 두 번이 넘게 고양이 새끼들이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어린 고양이들의 우유와 먹을 걸 챙겨주곤 했다. 멋모르는 새끼 고양이들이 가게 통로에서 투닥투닥 놀기도 하긴 했지만, 직접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문틈 사이로 빼꼼하게 고개를 내밀며 날 보던 그 얼굴이 당시엔 그렇게 무서웠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녀석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니 유러피안 숏헤어와 많이 닮아있던 얼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꽤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사는 것이 너무 외롭다고 느꼈던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3초 정도 한 적이 있다. 딱, 3초만. 왜냐면 외롭다는 생각에 입양은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내가 고양이를 조금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난 사실, 동물들이 조금 무섭다. 개를 키우면서도 우리 집 개를 무서워했었고, 어느 집에 가든지 개가 달려들면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된다. 그래도 개와 고양이 중 누가 더 좋냐고,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개였지만... 시간이 흐르니 고양이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고양이는 적당한 거리를 둔 관계 그리고 그 거리 안에서 길게 신뢰를 쌓아가는 동물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
한때,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마당발로 통했다. 누구든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사람.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몇 년 전부터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금방 친해진 내게 선 넘는 일이 잦았고, 거리두기에 실패한 나에게 관계에서 생긴 생채기가 깊은 상처로 변질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지금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편해져 버렸다.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예전의 날 알던 친구들은 내가 변했다고 이야기 하지만, 사실 난 지금의 내가 좋다. 적당한 거리. 그 안에서 오히려 깊어지는 관계들이 있으니.
마음의 진정을 마치고, 난 가게 밖으로 나가 아까 그 녀석의 흔적을 찾았다. 밖에서 적당한 거리를 둔 채 한 번 더 만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비명을 지를 일은 없을 테니. 또, 오늘 같이 집에 들어온다면 가게에 열린 문은 영원히 닫히겠지만, 밖에서 한번 더 얼굴 도장을 찍는다면 녀석을 위해 참치캔 정도는 준비해 줄 생각이다. 그러면서 이 말은 잊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