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아픈지는 꽤 오래되었다. 약도 먹고 있고, 침도 꾸준히 맞고 있지만,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허리를 숙여본 적이 과연 언제였던가. 신채호 선생은 일본군에 고개를 안 숙이려 꼿꼿하게 서서 세수를 했다고 하던데... 난 허리가 숙여지지가 않아서 세수를 그만뒀더니, 피부가 좋아지고 있다.
통증은 퍼지고 퍼져 등과 허리를 잠식했고, 엉덩이로까지 확장되었다. 앉아 있어도 아프고, 누워도 아프고, 움직여도 아프고. 그냥 아픈 것이 아니라 통증 부위를 칼로 베는 느낌이 들었다. 한걸음을 떼는데 다리가 앞뒤로 2번 흔들리니 이에 맞춰 엉덩이 쪽에 2번 크게 베인 듯한 통증이 온다. 자려고 누워도 아프고, 자세를 조금 바꿔도 통증이 밀려왔다. 자다가 깨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잠을 자려는 순간에도,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에도 통증이 먼저 느껴졌다. 한 번은 새벽에 너무 아파서 잠에서 깨어나 엉엉 울고 말았다.
통증이 심해지면서 삶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누워서 조금만 움직여도 허리와 엉덩이가 베인 듯 아프니... 그 통증을 줄여보려고 아픈 곳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면 아주 조금 통증이 덜하니까. 그렇게 아픈 곳을 누르고 누르다 보니 허벅지와 엉덩이가 멍투성이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 멍도 하루 이틀 만에 없어지지 않으니 원... 허벅지고, 골반이고, 엉덩이고, 시꺼멓게 멍든 딸의 다리를 보며 엄마는 울먹였다.
- 좀 참아봐.
신경질이 버럭 났다.
- 어떻게 참아. 칼에 베인 것 같다니까. 엄마, 나 엄살 아니야!
엄살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화가 났다. 몸이 아프면서 아주 작은 것에도 그렇게 화가 났다.
나아 보려고 노력 한 번 안 한 게 아니다. 자기 전에 스트레칭도 해보고, 침도 맞고, 약도 먹었는데...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쫓아온 엄마. 진료실에 들어서서 나는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자세히 설명하려고 레깅스를 입고 가서 통증 부위를 열심히 누르며 이야기했고, 긴 브리핑이 끝나자 나를 30년 가까이 봐온 선생님은 입을 떼셨다.
- 근데 동그라미가.. 살이 너무 쪘어.
- 하핫. 선생님, 그 얘기는 지난번에도 하셨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갑자기 엄마를 보며 “동그라미가 똥배가 나왔어”라고 하시면 껄껄 웃으셨다. 엄마도 선생님의 말에 순간 빵 터졌다. 저기요 선생님 제가 아프다고요. 칼에 베인 것 같이 아프다고요.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아니 이 사람들이 지금 뭘 하는 거야 싶어서 픽 하니 웃음이. 엄마는 자신이 매일 하는 말에 힘이 실리니 신났다.
- 선생님, 이거 살 빼면 낫는 거죠?
아놔. 이런 결론으로 가는 건가?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하냐는 나의 질문에 선생님은 그럴 필요는 없다며 지난 엑스레이 파일을 꺼내셨다.
- 척추 봐라. 얼마나 잘생겼나.
풉. 척추 칭찬을 받는 사람이다, 내가.
선생님은 그렇게 농담 한마디 던지시고는 사진을 보고 내가 왜 아픈 건지 설명을 해주시기 시작했다. 엉덩이 쪽 뼈를 커서로 가리키시며
- 요기 요기. 요기가 부어있는 거야. 그래서 신경을 건드리니 칼에 베인 것처럼 아픈 거야.
견디기가 힘들어서 조금 강한 진통제를 받아왔다.
선생님의 최종 처방은 운동은 안 되고, 평지를 걸어라. 그리고 살을 빼자. 결국, 3달 전과 같은 결론이었다.
오래 사는 것이 꿈이었다. 인생에서 대단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려서부터 나의 꿈은 무병장수였다. 그런데, 요즘 이렇게 아프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꿈... 이루지 못할 수도 있겠다. 유병장수.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할 지경.
대책이 필요했다. 몇 달 전까지 꾸준히 해오던 탄수화물 금지 다이어트도 결국 폭발하여 폭주로 이어졌고,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상태.
이제, 다이어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해졌다. 오래 살고 싶다. 물론, 건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