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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연 Jul 19. 2022

토끼보단, 거북이 같은 달림자

잘 달리는 것보다 오래 달리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작년부터,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2021년 9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려보자고 마음먹고, 신발이며 옷가지를 챙겨서 어디론가 뛰러 나간 것을 기준으로 말하는 거다.


회사에 지각할까 봐 식은땀 뻘뻘 흘리며 아슬아슬하게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 위한 생존의 달리기는 제외. 스마트폰 속 유튜브에 정신 팔려 고개를 아래로 처박고 걷다가 눈앞에 보이는 신호등이 깜빡 깜빡이고, 초록불에서 빨간불로 바뀌고 다시 초록불로 바뀌기까지 애 멎은 시간을 버리게 될까 하며 달렸던 그런 시간도 제외다.


흠흠. 


나에게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이 세계의 파괴를 막기 위해!,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가장 큰 목적은 체중 감량이라고 말할 수 있겠고,

그다음으로는 달리는 사람이 멋져, 달리기라는 습관을 만들고 싶어서가 두 번째라 말할 수 있겠다.


주변에서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왜 하필 달리기야?"라고.


물론 앞서 말한 두 가지의 이유로도 설명이 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굳이 그들을 설득시킬 필요는 없는 부분이니 과감하게 패스하겠다. 


근데, 위의 두 가지가 내가 뛰는 찐 이유다. (고르고 골라서 말이다.)


 사실, 달리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달라 한다면, 돗자리 펴놓고 달달한 약과 같은 걸 먹으며 몇 시간이고 재잘재잘 거리며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시간은 금' 이 아닌가. 나 같은 사람의 달리는 이유 따위 뭐가 중요하다고. 혹시라도 궁금한 분이 있다면, 나중에라도 꼭 따로 글을 써보겠다. 




 나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신비한 묘약 같은 게 있다고 믿는다. '처음'이라는 녀석은 언제나 열정이라는 선물을 덧대어 주는데, 나의 달리기 또한 '처음' 이 주는 '열정'이라는 선물에 덧대어 매우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나의 처음과 열정은 자석의 n극과 s극 같아, 서로를 끌어들여 달리기에 진심으로 만들었는데, 달리기 좀 한다는 사람들의 유튜브, 블로그, 그리고 관련 서적들을 틈나는 대로 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간지럽지만, 1분조차 뛰어보지도 못한 놈이 달리는 영상, 글들을 보며 풀 마라톤부터 생각하며 이런저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란 놈, 참 답도 없다.


 열정적으로 달리기를 공부하는 시간이 조금 쌓일 즈음,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된 거냐?'


 달릴 준비 되었냐고 물었다. 나 스스로에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이론적으로 시작할 만은 했으니, 이제는 방구석에서 책이나 영상만 볼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 나가서 뛰고 싶은 마음이 가슴 한편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기분 탓이었을까? 어디선가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기초 지식은 쌓을 만큼 쌓았으니, 이제는 달려보아라. 

 넓디넓은 푸른 초원에 풀어놓은 망아지 마냥, 한 번 뛰어보아라.


 어디선가 들리는 음성. 내면의 목소리였는지, 내가 듣고 싶은 음성이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무조건 뛰러 나가라고 하는데, 망설일 이유도, 필요도 없었고 무엇보다 나는 달려보고 싶었다. 

야심 차게 구입한 러닝화의 신발끈을 고쳐 메고, 공원에서 운동하는 남들에게 꿀리지 않으려 아웃렛에서 구입한 러닝복을 차려입고 공원으로 나갔다. 




집에서 걸으면 고작 5분이면 도착하는 공원을, 왜 이제야 이렇게 왔는지 모를 일이다.

집에서 나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려면, 작은 문 하나를 지난다. 철문으로 막혀있는데 차가 넉넉히 5대 정도는 지나다닐 정도다. 요 철문이 항상 닫혀 있어, 정문으로 들어와 한참을 돌아서야 집에 도착했던 과거의 며칠이 생각났다. 철문을 나오면 공원까지는 빼빼로를 눕힌 것 마냥 길게 누워뜨린 길이 펼쳐져있다. 그리고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너, 맞은편에는 지금은 철거 예정 중인 미군부대가 있다. 맨날 차로 왔다 갔다 하면서 스치듯 보았던 곳을 걸으며 보고 있으니 그것 또한 색다른 느낌이다. 평소에 잠깐씩 나와 걸었다면, 이렇게 낯설지는 않았을 텐데. 3년째 살고 있는 집 앞 공원까지 가는 길이 새삼 어색했다. 


가까이에 있지만 너무 먼 당신, 집 앞 공원과 어색한 대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나는 오늘 공원에 온 목적을 상기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이곳에 왜 왔는가.


난 달리러 왔다.


공원에 대한 낯가림도 잠시, 달리기 위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운동 자체는 꾸준하게 해왔기 때문에 스트레칭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오히려 이제는 스트레칭을 하지 않고 운동을 바로 하게 되면 꼭 후유증이 남는다. 확실히 나이는 속일 수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어주기 시작했다. 머리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돌리며 충분하게 풀어주고, 어깨, 허리, 무릎 그리고 발 순으로 차근차근 풀어줬다. 약간 몸에 열이 날 정도로 풀어줘야 실전 운동에 들어갔을 때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 


스트레칭도 했겠다, 이제 달릴 일만 남았다. 그동안의 쌓아둔 지식, 머리로만 달렸던 나를 꺼낼 타이밍이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인가. 30분은 족히 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고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미리 깔아 둔 '런데이' 앱을 켰다. '런데이' 앱은 초보 러너들에게 가장 추천하는 앱인데 달리기에 대한 유용한 정보들과 초보부터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제공된다. 처음 달리는 나에게 가장 추천해주는 프로그램은 30분 달리기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런데이 앱을 알 수 있었던 것도 나의 충분한 사전조사 덕분이리라.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뽕짝인 자아도취에 빠져 달리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봉주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것 같다. 


이제 달리기 시작 버튼만 누르면 나는 러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나는 나름의 목표를 설정했다. 런데이 앱에서 제공하는 30분 프로그램을 클리어해보는 것으로. 나란 놈은 항상 무언가를 시작하면 중간에 흐지부지 되기 일수였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꼭 30분 달리기라는 목표를 이루고야 말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 로만 보면 나란 사람은 운동도 못하는 운동신경 꽝인 사람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나름의 운동 역사를 갖고 있는 사람이랄까? 보통의 남자들이 그렇듯 구기종목에 한하여 종류는 다양하지 않지만, 축구와 농구를 중심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운동을 즐겨하긴 했다. 축구와 농구의 공통이 있는데, 바로 '공'을 중심으로 '뛰어다닌다'라는 것. 지금은 몸이 코끼리 같은 무게를 자랑하기 때문에 '박지성'처럼 달릴 순 없지만 그래도 '달리기'가 아예 생소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달리기를 각 잡고 해 볼 생각도 없긴 했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를 일이다.


 런데이 앱을 통해 30분 달리기 프로그램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나의 첫 달리기는 꽤나 순조로웠다.

1분 달리기부터 달리는 시간을 차츰 늘려가는데, 2주 차 까지는 무난하게 달려냈다. 기본 짬바가 있지, 나름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 아니던가! 런데이 앱을 켜고 달리는 그 짧은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 그렇게 런데이 앱과 함께 달리는 시간을 늘리고 아주 조금 오버해서 달리기에 소질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나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생각하며 달렸다. 


 스스로를 칭찬하며 대견스러워하던 오만한 달리기도  3주라는 시간이 흘렀을까? 뛰는 시간이 5분 늘 넘어가자 점점 힘들어지는 게 아닌가? 즐거움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행복한 마음이 조금씩 증발해버리는 느낌이었다. 터미네이터 2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I Will be back"이라고 말하며 서서히 몸이 용암 안으로 들어가 듯, 나의 즐거움도 불편함으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속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달리기 신동, 게 어디 갔는가?


 지금까지 함께 달리며, 잘 뛰고 있다면서! 잘하고 있다면서! 이제껏 달리면서 칭찬 일색이던 런데이가 이제는 5분을 달려야 한다며 채찍질을 하는데,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같은 남자로서(런데이 프로그램의 목소리가 남성 목소리로 되어있다.) 우리는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배신감을 느낄 줄이야. 


세상 참 믿을 놈 없다던데, 딱 그 짝 아닌가?




'힘들다, 귀찮고, 쉬고 싶다.'


'멈추고 싶다. 으아... 괴롭다.'


 상상으로만 펼쳤던 나의 달리기가 또 멈췄다. 예상보다 너무 힘든 달리기에 나는 두 손 두 발 모두 들어버렸다. 완전 항복이었다. 이봉주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달리던 러너는 어디 갔단 말인가? 

물론 굳은 결심으로 시작한 나의 달리기가 3주 차에, 그것도 급 힘들다고 멈춰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5주 차 까지 달려냈다. 하지만 총 8주로 구성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결국 끝내지 못하고 그렇게 나의 달리기는 또 멈춰버렸다. 구차하고 지질하지만 약간의 변명을 해보자면 힘들기도 힘들었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장마도 한 몫했다. 연일 퍼붓는 비로 인해 밖에 나가 뛸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 이후로 점점 추워지는 날씨 탓에, 몸이 잔뜩 웅크려지며 '처음'이라는 신비한 묘약의 효과는 점점 사라져 갔다. 


 달리기를 멈추게 되면서 애정 듬뿍 담아 구매했던 러닝 용품들이 생기를 잃었다. 날 좀 입어달라며 저녁시간만 되면 아우성이던 러닝 의류들도 이제는 옷장 한편에서 잠만 잘 뿐이다. 꽤 고가의 러닝화는 집 한 구석에 홀로 처박혀서, 이따금씩 나를 흘기며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달리기가 멈추자 나 스스로는 또 한 번의 실망의 순간이 찾아왔다. 나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왜 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왜 꾸준하지 못할까?




 21년의 달림은 그렇게 끝났다. 야심 찼지만 그만큼 허무했고 그래서 더욱 차갑게 달리기에 대한 마음이 식어갔다. 뭐든지 뚝배기와 같아야 하는데, 서서히 달라 올랐다가 천천히 식어가는 그런 것 같이. 이따금씩 구석에 처박혀있는 러닝화와 옷장을 열 때 보이는 러닝 의류를 마주칠 때면, 러닝에 대한 아쉬움으로 '다시 나가서 달릴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아주 잠시였고 그렇게 나의 달리기는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러닝을 잊고 나는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의례적인 행사를 맞이한다. 사전에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새해만 되면 사람들은 왜 새해 목표를 세우는 걸까? 그 목표가 작심삼일로 끝나버릴 것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그렇게 목표를 세우는 것에 열을 올리는 걸까? 

 그렇다고 매년 1월이 되면 의례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을 향해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 역시 새해 목표를 세우기 위한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일말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새해 목표 세우기 대회가 있다면 입상은 할 수 없을 테지만, 개근상은 충분히 받지 않았을까? 그만큼 나름 신년 계회에는 자신이 있다. 


 나 따위의 신년 목표 따위 구구절절하게 써봤자 궁금해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그렇다. 나는 22년에 새롭게 달리기에 대한 목표를 세웠다. 목표를 세우기 앞서 다짐을 한 게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과 '반드시 끝을 보자'의 두 가지의 다짐이었다.


이제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뤄볼 때도 됐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몇 살까지 자책만 하고 스스로를 한심하게 볼 것인가. 


뛰자. 뛰는데, 현실적으로 뛰는 거다. 그리고 한 번 끝까지 해보자.


 매우 현실적으로 목표를 잡으려 했지만, 어디 그게 마음처럼 쉬운가? 사람이라면 응당 '욕심' 이라던지 '오기'라는 것이 생기지 않는가. 무엇보다 21년 9월에 포기한 달리기를 새해 들어 다시 시작하는데, 21년처럼 뛰는 건 나 스스로에게 용납이 되지 않을 일이었다.






 마침내 나는 22년 2월에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의 러닝 파트너, 런데이와 함께 달리고 또 달렸다. 1단계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뛰어보자는 나의 다짐대로 정말 꾸준히,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달렸다. 누가 보기 때문에 달리는 것도, 누군가에게 보여줄 심산으로 달린 것도 아니었다. 오롯이 나 자신과의 싸움이자 약속이었고, 이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힘들었지만 달렸고, 배가 아파도 배를 움켜쥐고 뛰었다. 날씨는 상관없었다.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곤, 나를 방구석 한편에서 비웃던 러닝화를 신고 무조건 공원으로 나갔다. 


 살면서 이렇게 열정적이었을 때가 있었을까? 


 그렇게 나는 열정적으로 달렸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어머니는 무슨 죄인가 싶지만, 그만큼 성공이 주는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수많은 인사이트를 말하는 것이리라. 실패를 했다고 낙담을 하거나 주저앉을 필요 없다. 실패를 통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배우면 되는 것이다.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고, 실패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21년 9월, 실패로 끝난 나의 첫 번째 달리기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달리기를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오기'를, 또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더욱 열심히 달릴 수 있는 '열정'을 선물로 받았다. 그래서 였을까? 나의 달리기는 쉼이 없었고, 한 달 조금 넘는 시간만 큼에서는 나는 멈추지 않는 기차였다. 


 그리고 마침내 30분을 달렸다. 5분을 넘어 숨을 헐떡 거리며 힘들다고, 못 달리겠다며 달리기를 포기했던 내가 10분도, 20분도 아닌 30분을 달렸다. 한 때 나에게 뒤통수가 아프다 못해 얼얼하던 배신감을 선사했던 배. 신. 자. '런데이'에 대한 앙금도 거짓말같이 날아가버렸다. 끝끝내 30분을 달려내며 30분 달리기 프로그램을 마치자, 런데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에게 극찬의 극찬을 퍼부어주었다. 


'역시, 본성은 착한 앱이었어.'


 지금에서야 그때의 감정, 30분을 막 달려냈을 땡의 순간을 되살려보는 정도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감정이 존재한다. 한 번의 실패를 겪고, 똑같은 실패는 하지 않기 위해 꾸준하게 마음을 먹고 달렸던 50여 일의 시간들. 30분을 달린 내가 대단하다며 연신 칭찬 세례였는데, 듣기 좋은 소리가 계속 들려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온 몸에 찌릿한 전율이 3분 정도 퍼졌던 것 같다. 이윽고 밀려오는 성취감. 내가 해냈다는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너무나 부족하다. 방금까지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던 많은 사람들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듯한 느낌. 소극장 무대 위에, 모든 불이 꺼지고 작은 핀 조명만이 나만을 비춰주는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30분을 달리고 느꼈던 그 전율과 성취감, 뿌듯함 등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누구보다 잘 달렸기 때문에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었을까? 

공원에서 달리던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치고 나가며 어떤 사람에게 진짜 잘 달리신다며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받을 수 있던 보상이었을까?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치고 나갈 정도의 실력도 안되거니와 그럴 속도를 낼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지금도 1분 페이스 7km 후반에서 8km 초반을 달리고 있는 사람이다. 잘 알고 있다. 절대로 내가 잘나서, 잘 뛰어서 받은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오래 달렸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달렸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싶었다. 뜀을 멈추고 걷고 싶었지만 그래도 달렸기 때문에 나에게 준 하늘의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자랑할 것도 아니었다. 나 스스로와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달렸다. 똑같은 실수를, 실패를 하고 싶지 않아서 달렸던 거다. 그래서 내가 느낀 성취감이 지금까지의 그 무엇보다 컸던 것 같다. 


 이제야 작은 성공을 이뤘다. 30분 달리기라는 아주 작은 성공을. 누군가에게는 이 짧은 시간의 달리기가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경험이고, 재산이 되었다. 이 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또다시 달리는 목표를 설정한다. 잘 달리는 것도, 빠르게 달리는 것도 아닌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달리는 사람이라는 목표를 설정한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달릴 거다.

달리는 나의 모습을 기록으로도 남길 것이다. 

달리면서 나는 절대 잘 달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남들 앞에서 달릴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행복하고 즐겁게, 신나게 '오래' 달리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토끼보다 거북이 같은 달림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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