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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연 Jul 26. 2022

몸무게 세 자리 러너,

저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늘 하는 의식이 하나 있다.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OO입니다." 시작하는 자기소개는 어디에서나 뻔하게 시행되고 있는 진부한 의식이라고 생각 하지만 생각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요즘 케이블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있는데, 결혼을 하고 싶은 혼기  (혹은 결혼을 하고 싶은) 남과 여가 나와 자신의 짝을 찾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포맷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출연진들은 첫째 날에 자신을 소개할  없고, 둘째 날이 돼서야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첫인상과 사뭇 다른 출연진들의 자기소개를 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재밌는 것은 자신을 소개하기 전에 상대방에게 보이는 첫인상과 자기소개 이후의 모습이 이성들에게 꽤나 다르게 인식이 된다. 그로 인한 출연진들의 심적 변화를 보여주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부분인데, 이런 뻔한 수법이 '나는 솔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 아니겠나.


 자기소개라는 것이 우리가 새로운 곳에 가게 되면 하게 되는 뻔하디 뻔한 진부한 의식이나 행위 같아 보이지만, 위의 프로그램 등이 아니더라도 자기소개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상당히 커다란 것에 다들 동의하지 않을까?


자신을 소개함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러니까 어떤 과거를 살아왔고, 어떤 미래를 살아갈 지에 대해 설명을 해줄 수 있다 보니, 출연진들의 자기소개가 첫인상과 사뭇 다르게 이성을 보는 시각을 달라지게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자기소개는 어쩌면 길을 걷다 OO마트 앞에서 마주하는 수박과 비슷해 보인다.

수박의 겉모습을 보고 우리는 '수박'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수박 속은 어떤 모습인지, 어떤 맛이 나는지   없다. 수박의 내면과  과일의 맛은 결국 수박을 반으로 갈라 열어봐야   있다는 것이다.

자기소개도 이와 같진 않을까? 자신의 속을 갈라내어 내가 어떤 내면을 갖고 있는지, 어떤 맛을 내는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


나는 오늘  페이지를 통해 나를 갈라내려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취향이며 어떤 글을  것인가를 말하려고.


내가 어떤 내면을 갖고 있는지, 어떤 맛을 내는 사람인지를 소개하며 앞으로 나의 글이 어떤 결을 갖게 될는지를 말하려고 한다.


굳이 이렇게 하려고 하는 이유는 나라는 사람을 소개함으로, 조금  많은 분들에게 설득력 있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나는 글이라는 것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고 재능도 뛰어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나라는 존재를 어필함으로 부족한 필력을 대체하려고 하는 나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겨달라. 그럼 내가 약간의 억지나 생떼를 부려도 재미있게 봐주지 않을까?   좋았다고 해주지 않을까?




나는 러너다. 몸무게  자리 러너.


 유행은 돌고 돈다는데, 달리기가 이렇게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나 싶다. 내가 달리기를 접한 순간은 오직 '올림픽'  전부였다.

1992 바르셀로나,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할 때나, 2001, 무려 51 만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스턴 마라톤에서 이봉주 선수가 우승을 했을 때는 공원으로 나가 놀지도 않았었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없었기 때문에 그때 상황의 이해와 지금 상황의 이해를 정확하게 비교해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뛰지는 않았음이 틀림없다.(.. 틀림없을  같다...)


 지금은 달리기가 우리의 생활환경 곳곳에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우리 집 바로 앞에 있는 공원에만 나가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숨을 헉헉 거리며 달리고 있다. 이 달리는 풍경 또한 약간의 변화가 있다는 느낌인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달리는 사람은 한정되어있었달까. 달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남자들, 특히 20대에서 40대 남자들 정도가 러닝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뛰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한 가지 편견이 있다. 바로 달리는 사람은 모두 마른 체형의 사람들이라는 것. 그래서 잘 달리는 사람은 원래부터 정해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공원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남녀노소의 수많은 사람들 조차 나같이 과체중인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이쯤 되면 두 가지 중에 하나가 아닐까?


1. 달리기는 마른 사람들의 고유 운동이다.

2. 과체중인 사람은 달리질 않는다.


당연하게도 너무나 편협한 생각이고, 말도 안 되는 이분법적인 계산이긴 하지만 극단적으로 생각할 땐 저런 생각이 들긴 했다. 인스타그램에 #러닝을 검색만 해보시길.

 



21년 9월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고 실패, 22년 2월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며 지금까지 나는 달리고 있다.(글 쓰고 있는 현재 22년 7월 말이다.) 물리적 시간으로 친다면 6개월을 지나고 있으니 러너라는 표현이 생소하지는 않은 시점인 것 같다. 런린이는 벗어나지 못한 것 같지만.


6개월째 달리고 있는 나를 돌아봤을 때, 우선 위에서 말한 1번은 틀렸다. 나는 마르지 않았으니까. 세 자리 러너라니까? 지금까지 한 번도 뛰면서 안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을 정도로 뛰는 매일이 힘들었고 속도도 이렇게까지 천천히 뛴다고? 할 정도의 느린 속도지만 그래도 걷지 않고 있으니까, 달리고 있기 때문에 어쨌든 1번은 틀렸다.


그럼 2번. 과체중인 사람은 달리질 않는다.

 부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주변을 보면 마른 사람들이 확률적으로  많지만  사람들도 러닝이라면 기겁을 한다. 출퇴근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굳이 뛰어야  이유를 모르겠단다.

 역시도 지금처럼 달리기 전에는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을 존중한다. 이럴  이런 말을 쓰는 건가?

취향 존중이라고?


 반면에 과체중인 사람들이 달리지 않는 모습도 어느 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도  반반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있는데, 자신의 의지로  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제외한 이유들로  뛰는 사람도 있다는 거다.


자신의 의지로  뛰는 사람은 마른 체중의 사람들 역시 그러하니 굳이 설명은 하지 않겠다. 다만 타의로 인해  뛰는 사람들, 그러니까 무릎에 무리가 간다던지 하는 부상의 위험 때문에 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부분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나뉘며 내가 하는 말에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정도로 정리를 해보자.  깊게 들어가면 골치 아프지 않나.


3. 나는 조금 특별한 러너

과체중이면서 달리고 있다. 이름하여 과체중 러너, 몸무게  자리 러너로 표현하련다. 지금까지의 글의 뉘앙스로 눈치챘겠지만 외형 적어 보면 나는 러너로서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러너라는 타이틀이 지금도 사실 부담스럽다. 내가 러너라는 표현을 써도 괜찮은 걸까? 러너로서는 실격이 아닐까?


달리는 습관을 만들고 싶어서 무작정 달렸고, 달리는  좋아서 꾸준하게 달리고 있는 것뿐인데, 이런 사람을 러너라고 부르는 거라면 나는 남부끄럽지 않게 러너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겠다. 하지만 아직도 부끄럽고 위축되고 창피한  어쩔  없나 보다.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으로 매번 뛰는 사진을 올리고 #오운 (오늘도 운동 완료) 외치며 인증샷을 올리고는 있지만 이렇게 올리는 것에 대해 걱정과 염려를 떨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세상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는 아이러니한 공간에 운동이라는 키워드로 인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같다.


"달리는 사람이 왜 이렇게 살이 쪘어요?"라고 누군가는 말할 것 같아 두려웠었나 보다.


아니면 인스타그램으로만 소통하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 누군가가 의아한 눈빛으로 볼까 두려웠을 수도 있고.


"요새 인스타 보니까 엄청 열심히 달리던데, 몸은 그대론데?" 라던지.




즐겨보고 있는 어떤 운동 유튜버가 이런 말을 했다.


"살이 많이 쪘다고 헬스장에 가야겠다고 말만 하는 사람들보다 살찐 몸을 이끌고 헬스장에 나와 운동하는 사람들이 훨씬 멋있. 그리고 운동하는 사람들은 그런 분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부디 포기하지 말고 매일 나와 운동을 하셨으면 좋겠다."


'말로만 하지 말고, 생각으로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헬스장으로 나와라, 그리고 운동하라'라는 의미였다.  유튜버가 나를 공원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나를 뛰게 했고, 지금까지 달리게   원동력이 되었다. 나의 머릿속을 채웠던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나의 걱정들. 이런 것들을 생각하기 전에 몸을 일으켜 공원으로 나가 달려보기로 결심했고, 이때의 결심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지금도 운동을, 러닝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 생각만 하고 있는 분들께 위와 같은 유튜버가 되고 싶다. 지금도 생각만 하고 있는 방구석 모든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곳에서 나오라고, 지금 당장 움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나도 했는데 당신이라고 못 할 이유 하나 없다고 말이다.


몸무게  자리 러너라고 대문짝만 하게 제목을 걸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에겐  도전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몸무게를 숨기기 급급했고, 체중계에 올라 표시되어지는  숫자들을 외면해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  모습은 언젠간 사라질, 나의 본모습은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말도  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188cm이라는  키에 가려 남들보다  나가 보일 , 살들은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너무나 숨기고 싶었다.


이제는 이런 나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련다. 오히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을 위해 나를 오픈한다. 그리고 그분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 아니, 쓸 거다. 달리기를 어느 정도 해 본 중급자들 이상은 거들떠도 보지 않을 글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 해도 상관없다. 나는 타깃을 명확하게 잡았으니까.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혹은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상황이던지, 조금 더 나쁜 상황이던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격려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몸무게 세 자리인 나도 뛰고 있다. 신발 끈을 고쳐 메고 나가면 된다.

당신이라면 충분히 더 잘 뛸 수 있다.


왜냐고? 몸무게 세 자리인 나도 잘 뛰고 있으니까.

아주 조금 특별한 러너, 이희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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