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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연 Aug 03. 2022

거북이가 토끼에게 승리하는 이유

오래 달리고 싶은 이유

전래동화 : 신화나 전설에서 발전하여 이루어진 동심(童心)이 기조(基調)가 된 이야기. 전래 동화는 특히 민담 가운데 많으며, 공상이나 교양적인 요소가 이야기의 주축을 이룬다. 


우리는 누구나 어릴 적 전래동화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있다. 재밌는 사실은, 이러한 전래동화의 추억이 우리 인생에 제법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최근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어릴 적 들었던 전래동화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았다. 

토끼는 거북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얼 해도 느릿느릿. '나무늘보 제외하곤 거북이가 세상에서 제일 느리지 않을까?' 하며 거북이를 보며 답답함이 쌓여가던 어느 날,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토끼는 거북이에게 말했다. 


"야, 거북. 너는 어쩜 그렇게 느린 거야? 속 터지겠다, 어? 어떻게 사는 거야 대체?"


밑도 끝도 없이 속을 긁어대는 토끼의 말에 거북이는 화가 나 토끼에게 제안을 한다.


"야 토끼, 그럼 나랑 시합할래? 달리기 시합?"


토끼는 살짝 놀랬다. 거북이가 이렇게 화를 내다니? 그리곤 이내 입가에 미소가 핀다. 거북이가 나에게 달리기 시합을 제안하다니?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닌가 싶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황당했다. 누가 이길지는 너무 뻔했으니까. 


"나랑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거북이 네가?"


마치 잘못 들었다는 듯, 토끼는 다시 한번 거북이의 의중을 물어보며 표정을 살폈다. 거북이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토기를 쳐다보며 말했다.


"쫄 리면 뒤지시든가!"


이렇게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시합이 시작됐다. 시합이 시작되고 시합의 양상은 당연히(?) 토끼가 앞서 나갔다. 속도 차이에서는 그야말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때 거북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거북이는 그저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갔고 또 달려가고 있었다. 한참을 뛰어간 토끼는 자신의 뒤를 보며 거북이의 모습을 한참을 찾았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보일 리 만무했다. 워낙의 많은 격차가 벌어진 탓일까? 토끼는 거북이가 보이질 않자, 잠깐 낮잠을 자고서도 충분히 이기겠다는 계산을 한다. 그리고 달리는 길 중간에 큰 나무 밑 그늘에서 낮잠을 청한다. 

너무 깊은 잠에 빠진 토끼. 그리고 그 사이에도 쉴 새 없이 달려, 마침내 토끼를 제치고 달리기 시합에서 승리한다.

(나의 생각을 가미하여 토끼와 거북이의 내용을 조금 각색했다)







22년 2월부터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며 매번 느끼는 점이 하나 있다. 


하나같이 나보다 잘 뛴다는 점. 나보다 못 뛰는 러너는 본 적이 없다. 도통 찾을 수가 없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남들과 비교하지 말자', '난 나의 속도로 뛰는 거야!'라고 다짐을 했지만, 이러한 다짐들이 무색하게, 나도 모르게 남들과의 비교로 나의 자존감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달리기를 이제 시작한 사람인데 당연한 거 아니야? 저 사람들은 이미 나보다 더 많이 달렸겠지!'라고 말하며 위안을 삼았으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그리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보고 있노라면, 나보다 늦게 시작한 사람들 조차 나보다 빨리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의 달리기는 잘못된 걸까? 내가 달리기와는 맞지 않는 걸까?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최면을 걸어보아도 한 여름, 절대 끝날 것 같지 않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처럼 내 머릿속을 '멤 멤' 거린다. 그렇게 나 스스로와의 싸움으로 나를 좀먹어가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꾸준하게 달리던 어느 날 토끼와 거북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토끼인가? 거북이인가?'


 나는 스스로를 토끼라고 생각했다. 마음만 앞선 토끼. 고작 유튜브 영상 몇 개, 책 몇 권 읽은 정도로 달리기를 잘하는 토끼라고 스스로가 정해놓고, 자신을 추월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온갖 부정적인 생각은 다하는 아주 멍청한 토끼였던 것이다. 거북이와의 시합에서 질래야 질 수 없는 달리기 시합에서 승리를 내 준 그 토끼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나이키 브랜드의 그럴싸한 러닝화를 신고, 남들에게 꿀리지 않을 러닝복을 입고 러닝 전용 시계를 차고 폼 나게 버튼을 몇 번 누르며 다른 러너들과의 비교우위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너무나 한심한 생각이었던 것을, 나는 달리는 것이 점점 습관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지금 나의 모습은 철저하게 거북이 같아야 한다. 누구보다 천천히, 하지만 자신이 목표함을 정확하게 걸어내는 거북이 말이다. 지금 나의 달리기를 누군가가 보면 하찮고, 보잘것없다 여길 수 있다. '겨우 그 정도 뛰어내면서 러너냐?'라고 비웃을 수도 있겠다. 혹은 '넌 안돼, 러닝이랑은 맞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이런 말들로 달리기를 멈춰버린다면, 나는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낮잠을 자버리는 토끼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스스로 자신의 능력에 취해 멈춰버린 토끼, 남들의 말에 휘둘리며 달리기를 멈춰버린 나. 멈춤의 이유는 다르지만, 멈췄다는 것만큼은 동일하지 않은가.


 토끼와 달리기 시합을 제안한 거북이는 토끼와의 시합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있었을까? 달리기 시합을 보는 모든 동물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알고 있었을 거북이. 거북이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토끼에게 무모한 달리기 시합을 신청했던 걸까? 


 거북이는 자신과 토끼를 비교하며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거북이가 토끼와의 신체적 능력과 달리기의 결과만 생각했더라면 절대 토끼에게 시합을 신청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니 못했겠지. 하지만 거북이는 자신의 것을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이 있었다. 토끼에게 시합을 제안했고, 모두가 알다시피 토끼를 이겨냈다. 이런 게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일까? 거북이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꿨다. 꾸준하게 목표를 위해,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것만 생각했다. 그 결과,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으로 인해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감히 제안한다. 거북이와 같은 모습으로 달리자고. 토끼와 비교해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으로 시합도 하기 전에 겁먹지 말고, 자신의 무기를 갈고닦자고. 꾸준하게 달리자고 말이다. 자기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으면 자신의 레이스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의 레이스는 영원할 것이다. 단지 속도가 좀 느릴 뿐이지.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함을 달리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성장하는 사람이 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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