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희연 Aug 10. 2022

장비병에 걸린 남자가 달리는 방법

6개월 동안 달리며 구입한 것 들, 러닝 용품 추천

 무엇이든 시작하면 장비 빨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겐 자신의 실력 따윈 중요치 않다. 실력이 조금 달리더라도, 장비로 커버하려는 마인드.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앓고 있는 질환을 우리는 '장비병'이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참 많은 '병' 이 있다. 중2병, 공주병, 도끼병 등등. 치료를 위한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르는 병원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선생님들의 입으로 진단을 받는 그런 병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병들이 제법 존재하는 듯하다. 


 장비병 역시, 병원에서 진단받을 수 없는 특유의 증상이 심화된 것으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장비병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다. 사실 장비병에 걸린 사람보다, 그 사람을 옆에 둔 사람이 훨씬 고생을 많이 하는 듯하다. 나 역시도 이런 장비병에 심하게 걸린 사람으로, 모르긴 몰라도 주변 사람들이 많이 피곤했을 것 같다. 





 나의 장비병의 시작은 아무래도 게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창 시절, PC방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우리들의 학창 시절 문화는 놀이터에서 PC방으로 그 장소를 바꾸어갔다. 친구들과 어울려 서로 이기기 위한 경쟁 심리에 불탔던 그때, 좋은 카트를 끌면 1등 할까 하며 현질(?)을 했던 그때. 나의 장비병이 시작한 날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재밌는 점은 현질을 할 때 마음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표현을 이럴 때 한번 써먹어본다. '이제는 내가 무조건 1등 하겠지?' 라며 했던 나의 '현질'은 생각만치 높은 승률을 가져다주진 못했다. 당연하겠지만 카트 하나 바꿨다고 해서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것은 마치 '지금까지 똑같은 인생을 살아와놓고, 내일 일어나면 부자가 되어 있을 거야!'라는 일종의 '사고'로 자신의 삶을 한순간에 변화시키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욕심과도 같은 마음 아닐까?


사실 장비병의 무서움은 그 전염성에 있다. 나의 경우에 비춰봤을 때 보다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게임으로 시작한 나의 장비병은 귀신 같이 운동으로 전염되었다. 축구를 할 때면 축구화, 농구를 할 때면 농구화, 등산을 할 때면 등산화 나 등산복 등으로 빠르게, 거침없이 퍼져나갔다. 


지출, 지출 또 지출.


사실 장비병이 가장 무서운 것은 현금의 압박이리라. 매달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 주제에 장비병에 빠지면 그것만큼 답도 없는 게 없다. 그래서 내가 답이 없나 보다. 결혼 이후에는 이러한 나의 장비병이 다소 주춤(?) 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내 월급의 대부분을 장비에 쓸 정도였으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장비가 갖추어진다고 해서 실력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등산을 하기로 마음먹고 정상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숨을 헥헥거리고 있다. 그 사람에게 값비싼 등산화를 쥐어준다 한들, 갑자기 깃털처럼 가벼운 모습으로 정상으로 올라가겠는가 말이다. 축구를 하며, 트래핑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에게 손흥민이 신고 있는 축구화를 신겨 준다 한들, 헛발질을 면하면 다행이겠다. 






이 몹쓸 장비병은 22년, 올해에도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그야말로 지독한 녀석이다. 사람들이 즐겨하는 모든 취미들 중에서도 특별한 추가 장비가 필요 없다는 러닝을 하면서도 찾아온 이 녀석은, 아마 내 평생 함께 안고 가야 할 동반자라고 소개할 수도 있겠다. 


러닝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장비병을 특별하게 내세울 것 없는 취미 생활이다. 그야말로 몸뚱이 하나만 있어도 즐길 수 있는 게 바로 '러닝' 이니까. 하지만 이 '러닝' 에서조차 장비 빨을 세우는 내 이야기를 조금 풀어본다. 


내가 러닝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첫 번째 구입했던 장비가 바로 '신발'이다. 사실 러닝을 하면서 가장 비싼 장비를 꼽자면 단연 '러닝화' 겠다. 러닝화는 부상을 막아주고, 더 빠른 페이스를 내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에, 장비빨이 아니더라도 달리는 사람들에게 러닝화는 어쩌면 필수 조건일 수 있다. 나 역시 이러한 마음으로 러닝화를 구매했는데... 처음 구매한 러닝화를 몇 번 신기도 전에 다른 러닝화에 기웃거리고 있는 나란 놈. 어쩔 수 없나 보다.


출처 : 나이키


21년 9월에 구입해 아직도 신고 있는 나이키 러닝화다. 정확한 명칭은 줌 X인빈서블 런 플라이니트. 나이를 먹어가며 화려한 색감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눈이 부실 정도의 형광색을 살 생각은 없었다. 화이트 색상이나, 무난한 검은색의 제품이 모두 품절만 되지 않았다면 난 주저 없이 화이트 또는 블랙의 인빈서블 러닝화를 신고 뛰고 있었을 거다. 잠깐 이 러닝화에 대한 소감을 몇 자 적자면, 나와 같이 무게가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제격이 아닌가 싶다. 일단 눈에 보이듯 쿠션이 빵빵해서 뛸 때, 뛰고 나서 무릎에 후유증이 적다. 그래서 비교적 몸이 덜 풀리는 새벽이나 아침 러닝 때, 혹은 몸이 너무 피곤하고 스트레칭이 안 되는 러닝 때는 꼭 이 친구와 함께 러닝을 하고 한다. 

 

출처 : 나이키

인빈서블 러닝화가 나에게 참 잘 맞는 신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단순 예뻐서 구입하게 된 러닝화다. 

이름은 줌 X베이퍼 플라이 넥스트%2, 이름 한번 길다. 얄팍하게 생긴 러닝화, 실물로 봐도 너무 예쁜 녀석이다. 러닝 고수들의 평가는, 이 친구와 함께 달리면 계속 앞으로 나가게끔 도와준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진짜 러너가 된 기분을 들게 해주는 정도가 고작인 신발이다. 매우 가벼운 게 특징인데, 몸을 충분히 풀고 뛸 때면 나름 만족할만한 느낌을 가져다준달까? 앞서 소개한 인빈서블에 비해서는 쿠션이 많이 부족한 느낌이라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 베이퍼 플라이를 신고 뛰면 무릎이 살살 아파온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을 때만 찾는 녀석이다. 





베이퍼 플라이를 구입한 이후, 한동안 러닝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이후로는 의류 쪽에 관심이 가더라. 


2월부터, 6개월을 꾸준하게 뛰면서 내린 결론은 생각보다 러닝 할 때 하의가 중요하다는 것. 하의를 잘못 입게 되면 속살이 쓸리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생각보다 골치가 아파진다. 해서, 생각보다 하의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며 이때, 러닝 팬츠를 3벌 정도 구입한 것 같다. 사실 의류는 신발과 달리 가성비 있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을 추천하는데, 가급적 아웃렛을 통해 구입하는 것을 권한다. 


출처 : 나이키

사실 나는 7인치 팬츠를 즐겨 입었었다. 지금까지 운동을 하거나 실외 또는 실내 운동을 하면서도 불편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무릎을 살짝 덮는 정도의 쇼트 팬츠를 즐겨 입었었다. 하지만 러닝을 6개월 정도 지속하며 느낀 점, 러닝 팬츠는 무조건 5인치부터. 


사실, 러닝 팬츠를 구입할 때는 팬츠 안에 속바지처럼 되어 있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양 발을 써가며 움직여야 하는 러닝의 특성상 속옷과 마찰되는 부분이 생기고, 그 부분이 계속된다면 쓸리거나 물집이 잡히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심하게 허벅지 안쪽 부분이 쓸린 이후로, 러닝 팬츠를 구입할 때, 길이는 무조건 5인치, 그리고 팬츠 안에 속바지 같이 안 쪽에 속옷을 대신할 수 있는 팬츠로 구입하고 있다. 


상의 같은 경우에는 100% 면으로 된 티셔츠는 피하는 것이 좋은데, 땀의 흡수가 빠른 상태에서 몸을 무겁게 하고, 몸의 온도 역시 빠르게 떨어뜨리는 효과를 주게 되어 30분 이상의 러닝을 할 때 생각보다 몸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별도의 사진을 첨부하진 않겠지만 러닝 할 때 상의의 경우에는 100% 면 소재를 피해 구입하는 것이 제일 좋다. 역시 아웃렛에서 가성비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러닝화를 구입하고, 러닝 의류 상, 하의 구입을 마쳤다면 사실 달릴 준비는 거의 끝났다. 아무리 장비 빨을 세운다고 해도 위의 3가지를 구입했다면 하산해도 좋다. 하지만 더 장비 빨을 세우고 싶은 장비병 말기의 동지들이라면 다음과 같은 제품도 고려해보길 바란다. 


유독 자신이 땀이 많다면, 혹은 운동을 하며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거슬린다면 헤어밴드를 꼭 추천한다. 헤어밴드는 땀이 흐르는 것을 방지해줄 뿐 아니라 흩어지는 머리를 잡아주고 러닝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다른 제품들은 몰라도 헤어밴드는 꽤나 유용하니 한 번쯤 써보는 것을 권해본다. 

출처 : 나이키


그밖에 러닝을 하며 핸드폰을 지참해야 하는 경우라면 다음과 같은 장비들을 고민해보는 것이 좋다.

출처 : 나이키
출처 : 나이키


위의 순서대로 암밴드와 웨이스트 백이다. 둘 다 장단이 있는 제품들이라 자신에게 적합한 제품들로 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암밴드는 한쪽 팔에 고정하여 사용할 수 있으나, 한쪽으로만 착용하는 제품이라 장시간 착용 시, 해당 팔에 무리가 간다는 점이 단점이겠고, 웨이스트 백 같은 경우에는 단단하게 고정한다 해도 자꾸 위아래로 흔들거리다 보니 생각보다 신경이 쓰이는 점을 단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앗, 마지막으로 깜빡할 뻔했다. 러닝 양말. 꽤나 중요한 친구라서 빼먹을 수 없어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러닝 의류와 마찬가지로 러닝 양말 역시 100% 면은 피해야 한다. 특히 러닝의 경우는 발을 쓰면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발 쪽에 부담을 최대한 없애주는 게 좋다. 통기성을 극대화하여 발의 온도 역시 신경 써주는 것이 중요한데, 면으로만 되어 있는 양말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발의 땀이나 통기성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좋아하는 브랜드 또는 러닝 브랜드의 제품 중에 러닝을 위한 양말로 구입하는 것이 좋다. 일반 양말보다는 가격이 비싼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이럴 때 당신의 러닝에 대한 진심을 보여달라. 러닝 양말 역시 무시하지 못할 중요한 장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6개월 동안 러닝을 하며 구입한 장비들을 나열해보니 많이 사기도 했다. 해당 제품들을 여럿 구입했다 보니, 지출이 비교적 적다고 생각하던 러닝임에도 지출이 상당했다. 하지만 이런 장비들을 구입하면서 더욱 달리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사실 장비병이라는 게, 내가 보다 진심으로 해보고자(나와 같은 경우에는 러닝) 하는 마음에 구입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맥락에서의 장비 구입은 애초에 내가 하고자 하는 관심사(나와 같은 경우에는 러닝)를 길게 끌어갈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항상 달리기 선수와 같은 마음으로 해당 제품들을 착용하고 공원에 나간다. 10분 정도 웜업을 마치고, 

'후 - ' 하고 긴 호흡을 한 번 뱉으며 달리기를 시작한다. 이 순간만큼은 마라톤 선수와 못지않는 나름의 진지한 각오가 함께 한다. 하지만 이내 뒤늦게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추월당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지금의 나는 그런 부분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가 구입해 입고 있는 장비들이 누군가에게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부상 없이, 오래 달릴 수 있는 나의 동반자들이기 때문에.


달리기에 전문가도 아니고, 경력도 6개월밖에 되지 않아 장비 소개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리고 장비 빨을 세우는 모습을 글로 적는 게 쉽지는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러닝을 할까 말까 하는 사람들에게, '달리기를 처음 하는 사람은 어떤 장비가 필요하지?'라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글을 써본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한동안 달리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하늘이 너무나도 맑고 예쁘다. 이제는 이렇게 예쁜 하늘을 볼 때면 '달려야 하는 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나는 퇴근 후에 공원에 나가 달릴 거다. 내가 구입한 멋진 신발과 옷을 입고 말이다. 누구는 잘 뛰지도 못하는데 장비 빨 만 세운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나를 위해 달릴 뿐이니까. 그리고 나만의 달리기에 이 정도 투자는 할만하다 생각하니까.


작가의 이전글 거북이가 토끼에게 승리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