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희연 Oct 17. 2022

비 오는 날만 기다리는 변태 러너(2)

비가 오는 게 더 이상은 두렵지 않은 초보 러너의 우중런 일화

툭, 투둑. 투두 두둑.


비란 녀석은 한번 존재감을 드러내면 좀처럼 쉽게 가는 법이 없다.


자신의 존재감을 그렇게도 크게 어필하고 싶은 것 일까? 


세차게 내리는 비는 몇 일째 계속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 기간을 장마라 부르지 아마?




비가 내리는 동안 달려야 하는지, 말지를 한참을 고민하고 고민하다 결국 달리기로 결심했다.



뛰기 전까지가 힘들지 막상 뛰기 시작하면 괜찮지 않겠나 싶었다. 



그래서 비가 오는 장마의 어느 날. 


신발끈을 질끈 고쳐 메고 방수 모자와 방수 바람막이를 입은 채, 야외로 나갔다. 


그렇게 빗속에 나를 던졌다. 








툭 툭툭. 모자 위에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의 몇 방울은 잘 튕겨내더니 이내 살짝 젖었는지 별다른 소리를 내지 않는다. 



'후우' 


심호흡을 한 번 뱉었다.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심호흡을 뱉는 내 입술에 빗물이 튀기는 정도?


태어나 처음으로 비가 올 때 밖에 나와 달리는 상황이니 모든 게 처음이고 모든 게 어색했다. 


그렇다고 내리는 빗줄기가 나를 봐줄 리 없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나는 공원으로 조금씩 속도를 늘려 걷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달리기를 하기 위한 웜업이었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후끈거림. 


몸이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었다. 


충분한 웜업이 끝났고 본격적으로 달려야 했다.


이제부터 진짜 우중런 시작이다.






탁탁 탁탁.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양말과 신발도 점점 젖어들기 시작했다. 


사실 상의와 하의는 살짝 올라오는 열 때문에 젖어 있었는데 아직 살아있던(?) 양말과 신발 때문에


자유롭게 걷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양말과 신발까지 모두 젖어들면서 나의 우중런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본격적인 우중런 이 시작되며 묘한 느낌이 느껴졌다.


이어폰으로 들리는 경쾌한 음악소리가 흩뿌리는 비 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자 지금까지는 느껴보지는 못한 감정이 올라왔다. 


평소에 지겹도록 반복해서 듣던 플레이리스트였는데...


전 곡을 새롭게 짜서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또 어떤가.


지겹도록 봤던, 이제는 질리는 풍경이었는데...



비가 내리는 공원의 풍경은 내가 알던 그곳이 아니었다. 


새로운 곳에서 달리는 듯한 느낌. 



이 모든 것이 말로 설명하기엔 아주 많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다. 







30분 달리기를 하면 15분쯤 고비가 찾아온다.


멈추고 싶다는 유혹과 걷고 싶다는 유혹이 동시에 찾아온다.


이 유혹을 이겨내면 거의 대부분 30분을 뛰었던 것 같다.



우중런이라고 다를쏘냐. 


어김없이 15분 전후로, 두 가지의 유혹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런데 우중전을 하며 몸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비를 맞아서 그런지 몸 전체적으로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체력적으로도 계속 달릴 수 있다는 느낌이 올라왔다. 


분명 멈추면 멈출 수도, 걸으면 걸을 수도 있는 상황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러고 싶은 마음이


예전과는 달랐다.



이게 우중런 의 위력인가? 맞기 싫었던 비를 맞으며 달리다 보니 예상외로 힘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래서 우중전을 맛본 사람들은 계속 우중전을 하는 것이었을까?


나 같은 초보 러너가 감히 일반화하기엔 여러모로 어려운 부분이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평소에 달리는 것보단 분명 달릴 때 상쾌함을 선물 받았다. 





15분의 고비를 넘기니 30분이 금방 찾아왔다. 


삑. 



애플 워치 버튼을 눌러 달리기 기록을 남겼다. 


지금까지 30분을 달렸던 것 중에 가장 힘들지 않았던 달리기였다.




놀라웠다. 신기했다. 아니... 이럴 수 있나 싶었다. 



갑작스레 정한 우중런이 나에게 이런 느낌을 선물해줄 줄이야. 



새로운 풍경에 놀랐고 30분을 편하게 뛸 수 있어 신기했다. 


무엇보다 장마 기간 동안 비를 맞으며 달리는 선택을 했고, 그것을 해낸 나의 '실행' 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살아왔다. 


그게 정답인 양.


그 정답을 맞히지 못할 때, 실패자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자존감이 바닥을 찍었을 때도 있었고. 


무엇인가 규정된 형식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설 때 내가 불편함을 느끼던, 남이 불편함을 느끼던 무언가 불편함이 항상 존재했다. 



그런데 이번 우중런을 통해 나의 이런 생각들이 산산이 깨졌다. 




기존에 해왔던 것만이 정답이 아닐 수 있구나.


해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구나.


새롭게 시도하고 얻는 것이 생각보다 크구나.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달리기를 시작하길 참 잘한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비 오는 날만 기다리는 변태 러너(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