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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연 Aug 28. 2023

글을 쓰기 위해 오늘도 걷습니다.(20)

어느 토요일의 출근길

8월 하고도 26일의 이야기이다.


주 5일제로 근무 시스템이 바뀐 지 벌써 몇 년이 흘렀는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시대를 거스르고 있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업무 탓에 주 6일제 근무를 하고 있으니까. 올해 새로운 신생팀의 팀장으로 발령받아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결과를 내야 하는 신생팀의 숙명이리라. 그렇게 오늘도 토요일에 출근을 하고 있었다.

유난히(매년 유난이라고 생각하지만...) 습하고 무더웠던 23년의 여름도 조금씩 떠나는 느낌이다. 누가 말했던가,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좀처럼 떠날 것 같지 않았던 23년의 여름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 


새삼 선선함을 느끼며 오랜만에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어제 갑작스러운 술모임으로 차를 회사에 두고 온 터다. 지하철로 퇴근은 종종 했었지만 출근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다행인 것은 온몸을 적시는 땀이 흐르는 날씨는 아니라는 거. 조금은 습했지만 참을만했고 견딜만했다. 

삑 - 

교통카드를 갖다 대며 들리는 소리가 오랜만에 귀에 맴도는데 싫지 않다. 의외로 반가운 소리라 생각하며 열차를 타기 위해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토요일의 출근길은 한산하다. 지하철 문이 열릴 때면 항상 기도하는 자세로 변하게 되는 평일과는 전혀 다른 일상이 펼쳐진다. 


'제발 자리가 있게 해 주세요, 그것도 제발 끝자리로요!'

회사까지 짧은 거리는 아니니 앉아서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을 누가 모를쏘냐. 나와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수없이 얽히고설키는 평일과는 다른 평화로운 주말 지하철 풍경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지하철 3-2칸에는 자리가 많았다. 늘 기도했지만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끝자리들도 비어있었다. 

오늘 아침, 이 자리는 이제 내겁니다. 

자리에 앉아 오랜만에 출근길에 양손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 집에서부터 챙겨 온 책을 펼쳤다. 항상 차로 출퇴근을 할 때면 운전으로 인해 양손을 사용할 수 없었는데 이게 대종교통을 이용한 출퇴근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래도 너무 더운 날의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퇴근은 피하고 싶다...)

끝자리에 앉은 나의 왼쪽으로의 3자리는 네 개의 역을 지난동안에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섯 번째 역에 도착하는 순간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요란스럽게 나의 바로 옆자리에 오셔서 앉으셨다. 그리고는.


"할멈, 요 앞자리에 앉아!"


어르신들은 귀가 잘 들리지 않으셔서 평소 대화하실 때 목소리의 크기가 조금 높은 편이다. 예전 사회복지법인에서 근무할 때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사업을 하면서 배운 부분 중에 하나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부터 어르신들의 큰 목소리는 나에게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내 왼쪽 옆에 앉으신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같이 야외로 나오신 것 같았다. 한데 할머니의 걸음이 느리니 할아버지가 조금은 서둘러(요란스럽다고 표현했었다.) 자리를 맡아놓으신 듯했다. 할아버지 옆에도 자리가 비었었지만 금세 젊은 사람들로 바로 채워졌는데, 다행인 것은 할아버지 맞은편에 딱 한자리가 비어있었다는 것.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그 자리를 권유하셨다.  서로를 마주 보며 자리에 앉으신 이 노부부는 그렇게 약 2-3분가량을 시원시원하게 대화를 나누셨다. 덕분에 주변에 있던 우리들도 반 강제로 두 분의 삶의 이야기를 잠시나마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대화가 오갔던 것도 잠시. 대화가 갑자기 뚝 끊겼다. 나를 포함한 2-3명의 사람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쪽으로 고개를 돌려 힐끔 쳐다보는데 할머니가 대뜸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저기 노인석으로 갈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왼쪽 끝 쪽에 보이는 노인석 쪽에도 자리가 비어있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노인석 자리로 가셔도 그만이지만 '굳이 저기까지 가실 필요가 있나? 그냥 그 자리에 계셔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였다.


"그래요, 젊은이들 여 앉게 하고 우리는 노인석으로 갑시다." 하시며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석으로 가시는 게 아닌가.


'.............'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갑작스럽게 내 마음은 왠지 모를 죄송함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올라왔다. 노인석이 있다고 노인 분들은 그 자리만 이용하라는 법이 없는 건데, 특별히 그 자리는 만약을 위해 남겨두라는 것이지 우리가 같이 쓰는 공간을 애써 비워둘 필요는 없었는데...


마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끝자락에 나눈 대화는 마치 지금의 자린느 자신들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듯 느껴지는 뉘앙스였다면...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두 분이서 노인석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은 의외로 애처롭거나 쓸쓸해 보이진 않았다. 어르신들이 대화를 끝으로 일어나 노인석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유독 영화에서 슬로 모션이 걸린 것처럼 천천히 눈앞에 펼쳐졌다. 되려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었고 그래서 보기 좋은 모습이었고 기분 좋아지는 장면이었다. 그 모습은 오히려 우리들을 위한 배려의 모습이라고 느껴졌다. 자신들을 움직여 인생 후배님들 조금이라도 편하라는 인생 선배님들의 배려. 되려 우리의 인생 선배님들이 시간이 흘러 자신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혹은 비슷한 나이) 우리와 같이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는 솔선수범의 모습과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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