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복잡할 때는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행히 집 주변이 한적한 편이라서 아무도 없는 논길을 자주 걷고는 한다.
배에서는 산책을 하기가 쉽지 않다. 해가 저문 후 함부로 나가면 위험하기도 하고, 낮에도 데크 위를 돌아다니다가 자칫 기관실에 알람이나 무전을 못 듣게 되면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서 산책을 꺼리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휴가 때 조용한 곳에서 평화롭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축복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혼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배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산책이란, 집에서 지루해하는 강아지 바람을 쐬주는 일이라던가 배불리 먹고는 속이 더부룩해져서 소화를 시키고 싶을 때 하는 행동 정도였다.
그리고 혼자서 걸으면서 즐겁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마침 배에서 하선을 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어느 가을날,
하늘이 너무나 높아 보여서,
그리고 바람이 무척 살랑거려서,
나는 대문 밖으로 나가 마을의 뒤편으로 산책을 했다.
길게 늘어진 회색 콘크리트 길은 바다처럼 출렁거리지 않아 단단했고, 옆으로는 추수할 때가 된 벼들이 서로 부딪히며 차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
너무 평화로운 기분에 행복감이 차 올랐다.
그 후로 종종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휴가 때는 무엇을 해볼까. 그렇게 고민거리를 들고 산책을 하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불쑥 솟아오른다.
내가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 나 스스로도 잘 몰랐던, 그리고 내가 해보고 싶어 했던 여러 가지 계획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아무런 고민거리가 없어도 혼자서 조용하게 걷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생겨났다 증발한다.
그러다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하면, 하던 생각이 마무리되지 않아 또다시 마을을 한 바퀴 돌러 간다.
배 안에서는 산책을 하기 어려우니, 명상을 한 번 시작해 볼까 생각을 했었다. 내 생각을 비우고 무의식에 들어가 무언가를 깨닫거나 느끼기 위해서 보다는, 하던 생각을 비우고 나면 내가 그전까지 고민하지 않았던 생각들이 불쑥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명상을 하다 보면 점점 나른해지고 졸려서 산책만큼 생각을 길게 이어갈 순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껏 고민해 본 적 없는 화두를 많이 얻었지만, 산책을 하면서도 그만큼 많은 화두를 얻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혼자서 조용히 산책을 하는 것이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산책을 해도 누군가와 같이 걸어왔다면, 한 번쯤은 혼자서 조용히 걸어보는 것을 권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