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우선 잘린 닭은 우유에 30분 이상 재워둬야 비린내가 나지 않아”
나를 주방으로 데려가 치킨 만드는 법을 상세히 알려주던 이등 기관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첫 사회생활을 예상치 못하게 닭 튀기는 법부터 배우는 게 된 나는, 직업에 회의감이 들기보다는 순응했던 걸로 기억한다. 실습을 나가기 전에 학교에서는 다양한 소문들이 나돌았었다. 실습생이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다 분노한 기관장님 때문에 한참 동안 엎드려뻗치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는 소문. 실수하는 일이 있으면 머리에 헬멧을 씌우고 몽키 스패너로 내려쳤다고 하는 소문 등. 그리고 그런 소문에 비하면 회식 음식 준비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고, 간단한 야식 레시피는 실습을 준비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공유되었다.
배 안에서의 직급은 수직적이었고 그 수직을 지탱하는 바닥도 안 되는 실습생이 그들의 회식을 준비하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타당한 말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닭을 튀겼고, 선 내의 네 번째 요리사(당시 배 안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인원은 세 명이었다.)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수여받았으며, 종내에는 치킨 양념을 제조해서 양념치킨을 만드는 기염을 토하며 우수한 고과로 실습을 마치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삼등 기관사를 하고 있을 때도 여전히 나의 요리 실력은 빛을 발했다. 냉동닭을 주문시키더니 양념치킨을 만들고, 식빵으로 피자로 만들고, 통삼겹으로 바비큐를 만들었다. 회식 때는 술도 넙죽넙죽 잘도 마셨다. 이런 우수한 성과들을 통해서 나는 능력을 인정받아 동기들보다 한 발 빠르게 이등 기관사로 진급할 수 있었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회사의 진급 시스템은 공정하지 않았었다. 진급 시즌에 만나는 마지막 기관장과 어떤 승선생활을 했는지에 따라 진급이 갈리게 되었다. 진급에서 누락된 동기들이 일을 못해서 진급을 못한 게 아니다. 이건 시스템의 문제다. 그리고 해결책은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오로지 나의 시선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사회 구조의 문제는 개인이 해결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이것은 회사가, 사회가 바뀌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럼 나는 그저 부조리한 현실에 억울해하며 울먹이고 있어야 하나. 이건 사회의 탓이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리고 포기를 해야 하는가. 그렇게 가던 길 멈추고 배 째라는 듯 드러누워 버릴 것인가.
우리는 다른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끊임없이 억울한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다 보면 완벽하게 공정한 사회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적어도 우리가 사는 동안,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런 완벽한 세상은 오지 않을 거다. 우리의 사회는 언제까지고 완성된 사회가 아니라 완벽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 위에 있을 것이다. 그 말은, 사회의 시스템이 개선되어도 개인은 얼마 못 가 다른 억울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온다는 말이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불완전한 세상. 완벽하게 공정한 유토피아에서는 나와 너, 우리 같이 불완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밟고 있는 땅 위의 세상은 모조리 부조리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야 세상에서 숨쉬기가 좀 더 편하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부조리가 당연한 세상.
몇 년 후, 조금은 찜찜한 이유로 일등 기관사 진급에서 누락되었고, 난 그저 받아들였다. 회사의 시스템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나의 태도만 바뀌었다.
억울함을 느낀 선배, 후배, 동기들은 떠나갔고, 회사는 인력난이 조금 더 심해졌을 뿐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까지 서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능력 있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에 서있는 사람이 승리자라 했던가. 나는 버티고 있었고, 잘하지만 인정 못 받던 사람들은 떠나갔으며, 그렇게 나는 대기표를 받고 기다린 끝에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회사를 떠나는 게 나을지, 계속 남아있는 게 나을지 그것은 순전히 선택의 문제다. 어떤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떠난 친구들은 대부분 번듯한 직장에 취업했으며 분명 배를 내린 것에 후회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래. 그렇게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