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다는 점은 배를 타는 큰 장점 중에 하나다.
배 안에는 돈에 관련해 다양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 모두 바다에 안겨있는 동안에는 돈에 대한 걱정에서 잠시 떨어질 수 있다.
나는 돈에 관심이 아주 많다. 재테크 관련한 책만 수십 권 읽었을 것이다. 돈에 미련을 버리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수록 어느새 ‘돈돈’ 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가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부모님 덕분에 먹고사는 것에 큰 문제를 겪지 않았다. 하지만 가난에 대한 공포를 교육받았다. 돈이 없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에 대해서. 겪지 않았고, 겪고 싶지 않았다. 빚에 대한 두려움, 집이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나는 경험해 본 적 없는 미지의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그리고 배를 탄다는 것은 아주 큰 위로가 되었다. 배를 타는 동안에는 돈이 필요 없다. 특히 사회초년생이라 집이나 차가 없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더더욱 필요 없다. 배를 타기 전에 휴대폰은 정지하면 되고, 보험도 딱히 필요 없다(소용이 없다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얼마를 벌어야 나는 만족을 할 수 있을까.
나는 20년의 미래를 한 번 계획해 보기로 했다.
15억 원 정도 모으면 만족하지 않을까. 투자를 지금부터 꾸준히 한다면, 15년쯤 후에는 모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이곳을 떠나 내가 원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거야. 아무런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평안하고 자유로운 생활.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가 생각이 또 바뀌었다. 15억 원이라는 계산은 오로지 내가 건강하고 지금과 상황이 같을 거라 생각하고 예상한 수치였다. 내가 크게 사고가 나거나, 가족이 큰 병에 걸려서 돈이 필요하다면, 그렇다면 최소한 20억 원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평생 살 집 하나는 있어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집값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나의 목표 금액에 10억 원이 추가되었다.
30억이라는 수치는 직장 생활만 한다고 벌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바다에 뼈를 묻을 때쯤 가능할 듯싶었다. 평생 배를 타야 하는 건가. 당장 내려서 사업을 벌이거나 비트코인을 해봐야 하나.
난 어쩌지.
그랬기에 육상으로 가서 직장인으로 전향하는 것에 대해 주저했었다. 이건 생각보다 차이가 굉장히 크다. 수입의 관점에서도 크겠지만, 저축의 관점에서는 아득한 격차가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 집을 사거나 월세를 내야 했다. 차를 사거나 교통비를 내야 했고, 식비도 적지 않게 지출될 것이다. 출근할 때 입을 옷도 사야겠지. 저축을 50만 원은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배에 타는 동안은 그런 것이 없다. 그저 일하고 내려서 통장에 저축된 돈을 보면 대부분 온전히 보관되어 있다. 내 경우에 받는 월급에 비해서 저축률이 85%는 넘었다. 안 썼던 게 아니고 못 썼던 거겠지만, 그래도 모인 돈을 보면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순 없다.
돈은 대부분의 것과 교환할 수 있다.
물건은 당연하고, 비물질적인 것도 가능하다. 인력, 권리, 심지어 마음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많은 것을 대표하기도 한다. 우리는 돈으로 그 사람의 인성과, 능력을 해석한다.
바람 불면 날아갈 듯 위태로운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야말로 현실에 군림하는 절대 권력.
배를 타게 되면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답변해주지 않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 편이다.
그 속내에는 사람들이 월급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이런 걸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그래서 타인이나 심지어 가족에게도 내가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 잘 말해주지 않고, 말이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배를 타면서 자랑할 것이라곤 월급명세서 밖에 없지만, 그런 것으로 내가 재단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이런저런 행복에 대한 책을 뒤적거린 후 내린 결론 끝에, 검소하게 살아보려 시도했다.
욕망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그것이 내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이었다. 우리가 벌 수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지만, 우리의 욕망은 무한하다.
분모가 무한대인 사람에게 아무리 큰 분자를 들이대봤자 0이나 마찬가지다. 돈은 우리의 욕망이다. 그리고 나는 돈을 더 벌기보다 내가 검소해지는 게 훨씬 더 쉬웠고,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였다.
옷도, 가구도, 전자기기도 사지 않았다. 샴푸도, 바디워시도 제일 저렴한 것으로. 그리고 계속 궁리를 했다. 더, 더 줄이자. 바디워시? 비누를 쓰면 되지 않을까. 신발은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휴대폰은 제일 저렴한 요금제로, 그리고 공용 와이파이를 쓰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돈에 대해 고민하며, 더 돈에 집착하게 되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목아 마를 때 편의점 들르는 것에 스트레스받고, 식당에서 소주보다 비싼 맥주를 주문하는 것에 신경 쓰고,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을 아까워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돈이 만들어낸 족쇄를 풀어내고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였다. 짠돌이가 되는 것은 나에게 있어 답이 아니었다. 다른 태도를 가져야 했다.
책에서 이런 글을 보고 적극 공감했던 일이 있다.
‘살 수 있기에, 사지 않을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본주의에서 도피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특권이다.
흔히 말하는 명품이나 해외여행 같은 것들.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살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다. 그리고 경험이나 물건들이 내게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도 적당히 경험했다.
그래서 나는 절제할 수 있었다. 손에 닿을 거리에 있기에 욕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랬기에 아직 절제가 안 되는 것들도 있다. 마당 딸린 집 같이, 내가 쉽게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욕심.
다행히 나는 사치로부터 절제가 가능할 만큼의 돈을 모았었다. 나는 돈 쓰는 것에 신경이 곤두서지 않아도 이미 검소한 사람이었고, 다만 남에게 베푸는 일이 있을 때 전보다 넉넉해질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내가 돈을 쓸 때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게 더 행복한 사람인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