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등기관사로 처음 업무를 보고 있었을 시기였다.
어느 날 순찰을 돌던 중 에어컨 동파이프에서 터져 나오던 냉매를 아직도 기억한다.
회사에서 삼등기관사에게 주어지는 직무는 다양하다. 엘리베이터, 에어컨, 조수기(해수를 증발시켜 증류수로 만드는 장치), 냉동기 등등…
실습 때도 느꼈던 거지만, 회사에서는 어쩌자고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에게 단독으로 이런 기기를 맡길 수 있는 건지 의아하기만 했다. 나는 이 기계들을 도저히 숙달할 자신이 없었다. 하나만 열심히 파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기기들인데 이렇게 많은 직무를 맡다니.
그래서 처음 삼기사를 맡을 때는 이런 부담감이 내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이런 책임감은 온실 속에서 자라온 내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밤마다 불안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잠식해 나갔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추락하면 어떡하지. 조수기에서 물이 잘못 만들어져서 증류수가 들어가야 하는 보일러가 고장 나면 어떡하지. 그리고 종종 나는 꿈을 통해 내 걱정을 상기시켰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는 꿈, 조수기가 터져 배가 바닷물에 잠기는 꿈, 보일러가 불타는 꿈.
그래서 내가 꾸던 꿈 중의 하나가 현실에 나왔을 때,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동파이프에서 냉매가 터져 나오는 걸 본 순간, 그 즉시 오른손을 뻗어 구멍을 막았다(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하지만 압축기 출구에서 나오는 고압의 냉매는 손의 악력만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막은 손 옆으로 냉매가 빠져나오는 것을 보던 나는, 그것을 영리하게 깨닫고는 테이프를 가져와서 동파이프를 둘둘 감싸기 시작했다(매우 멍청한 행동이다). 이후에 이것마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똥인지 된장인지 전부 다 맛본 후에야 다른 사관님들에게 무전을 치고, 다량의 냉매를 날려먹고, 여차저차 마무리를 지었다.
이 정도 일이야 하나의 작은 해프닝이지만, 그런 경험을 처음 하게 된 나는 도저히 일등기관사까지 할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아니 이등기관사도 쉽지 않았다.
일등기관사는 기관부서를 관리하는 실무책임자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기관부서에 사고가 터지면 제일 먼저 보고를 받고 수습을 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메인엔진, 혹은 메인터빈을 담당한다.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동력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 에어컨에서 냉매 뿜어 나오던 것과 차원이 다른 문제다.
어쩌면 사람의 목숨과 까마득한 재산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문제였고, 나는 도저히 이런 막중한 책임감을 어깨에 매단 채 일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후, 나는 태연하게 일등기관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어째서 지금 일등기관사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종종 든다.
배를 타는 동안 기기를 끊임없이 공부하며 모든 지식을 마스터한 후, 배에서 일어나는 문제란 만류귀종과 같아 결국엔 하나로 통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모든 것을 능수능란하게 해결할 자신이 생겼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었다.
내가 지금 일등기관사로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되었다.
첫 째는 ‘저 사람도 일등기관사를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없다’라는 생각이었다. 배를 타다 보면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을 상사로 만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을 경험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한 번쯤은 들게 된다.
둘 째는 ‘그동안 타보니 그런 험악한 일을 일어나지 않더라’이다. 흔히 말해 블랙스완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험악한 일. 예를 들어 대양에서 배가 멈춘다거나, 해적의 습격을 받거나, 배가 침몰하거나. 그런 상황을 겪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공포감으로 배를 다시 찾지 않게 되고, 결국 험한 일을 겪지 않은 사람들만 모여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서로를 다독이며, 언젠가 찾아올지 모를 미래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고개 숙이고, 무시하려 노력한다.
셋 째는 무뎌졌기 때문이다. 에어컨 냉매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큰 해프닝들을 겪게 되면서 결국엔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무뎌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일등기관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책임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일등기관사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단지 사고 난 이후의 후폭풍을 생각하는 감정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책임감이란 어쩌면 삼등기관사 때보다 늘어나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도 사고가 나면 항상 두려워하고 감당할 수 없을 거란 막막함이 어깨를 짓누르고, 그렇게 일이 어영부영 해결되면 나는 다시 멍청스레 웃으며 막막했던 압박감을 잊어버릴 것이다.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덮쳐오기 전까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 사람이 죽으면 도대체 어떻게 책임을 진다는 것인가. 사자소생술을 할 줄 모르면 그런 책임이란 질 수 없다.
도저히 책임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그것을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진 이들이 사회 도처에 있다. 막상 사고가 일어나면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돌릴 사람들이, 그렇게 검은 백조를 기다리며 목을 길게 빼두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그런 것 같아서, 그래서 나도 자신감이 생겼다.
사회가 원래 이렇구나. 정말 모래성과 같구나. 엉성하게 기워져 있는 허수아비 같구나.
톡 치면 터져나갈 유리잔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이란 허상이다. 책임자란 탄환이다. 회사는, 혹은 단체는 허상이란 유령이 나타나면 총을 쏘고 물리쳤다고 외친다. 그리고 단지 총을 재장전할 뿐이다.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면 각오를 하면 되겠더라. 내가 탄환이라는 것을. 사회가 혼란할 때 허공으로 쏘아질 하나의 총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