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대해

by 윈스턴

한 번도 일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돈을 벌기 위해 하는 행동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나를 늪에 빠진 것처럼 끌고 들어갔다. 직업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나도 내가 하는 일을 평생 할 거냐고 물어본다면 자신이 없는데, 이런 직장에서 어떻게 자부심을 가지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러던 중 ‘일의 철학’이라는 책을 읽고, 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일은 대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신의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85%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조사의 표본은 모두가 되길 원하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대기업 직원들이다.

그렇다면 바뀌어야 할 것은 내가 아닐까. 불만스러운 직업밖에 없는 세상이라면, 내가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 밖에 방법이 없지 않을까.



일은 왜 할까. 돈을 벌기 위해서. 그게 가장 큰 이유인 것에 동의한다.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는 전부 돈으로 귀결되니 말이다.

돈이 넘쳐 날만큼 많다면, 그때는 일을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 내 통장에 1조 원이 찍혀있다면. 그럼 나는 이제 뭘 하고 살지.

평생을 여행 다니면서?

평생을 명품을 소비하면서?

평생 거대한 저택을 짓고 누군가의 수발을 받으면서?

정말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할까. 돈이 목적이었던 내가 어느 날 한순간에 꿈이 이뤄져 버리면, 그다음을 생각하지 않았던 나에게 그것이 평생의 행복으로 다가올까.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돈이 일정 이상 넘쳐나 봐야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없다. 없던 돈이 갑자기 생기면 그 순간은 아주 행복하겠지만, 행복을 가리켰던 그 시계추는 권태를 향해 진자 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약에 절여진 뇌처럼, 어떠한 자극에도 도파민이 나오지 않는 불행한 사람이 되겠지.




일에는 다른 목적이 분명히 있어야만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가지고 있어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닌 이상, 단지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독립을 하기 위해 일을 시작한 청년이라면, 돈 말고 다른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너의 삶은 조만간 무너질지 모른다. 왜 무너지는지 모른 채, 그저 기력이 없어지고 의지가 없어질 것이다.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는 멍청한 사람이 될 것이다.

돈이 전부인 세상이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위선적인 이곳에서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일은 우리의 권태를 없애준다.


이게 내가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일을 하면 나머지 시간이 더 소중해지고 더 행복해진다.

내가 두 달의 휴가 동안 평안하고 행복했던 이유는 여섯 달 동안 치열했기 때문이다. 그 여섯 달이 내게 없었더라면, 나는 그냥 지루한 여덟 달을 보냈을 것이다. 당신의 주말이 행복한 이유가 평일이 치열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지루하면 안 된다. 그 선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내가 하품을 할 만큼 쉬운 일도 아닌 적정선. 그런 일을 하는 게 가장 좋다.

일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너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그렇다. 나는 깊게 빠져든 취미가 없었다.

독서? 영화? 음악? 아니면 축구나 농구?

여섯 달을 일하고 두 달을 쉬는 내게, 취미 하나를 찾아서 파고든다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다. 언젠가 취미가 들려 일렉기타에 손 대본 적도 있고, 파이썬으로 코딩하는 것을 해본 적이 있다. 판타지 소설에 푹 빠져 20시간 동안 본 적도 있다. 그리고 드라마도 16화까지 밤을 새워 본 적도 있다. 얼마못가서 열정이 식었지만, 언젠가 평생 좋아하며 애지중지할 취미를 찾길 바라며 노력 중이다. 그런 소중한 취미가 직업이 되어버리면 어떨까. 나는 평생 취미라고는 영화 보는 것밖에 없는데, 영화평론가가 된다면 어떡할까. 이제 나는 의무적으로 영화를 한참 봐야 하고 싫어하는 장르의 영화도 봐야 하며 그에 대한 부차적인 서류 작업도 해야 한다. 나의 소중한 취미는, 일이라는 먹물에 더럽혀져서 더 이상 재미가 없다. 그렇게 나의 소중했던, 하나뿐이던 취미는 사라졌다. 이제 나는 그저 시간 때우기에 불과했던 골프나 골동품수집에 취미를 붙여야 한다. 내게 가장 소중했던 것이 사라졌으니, 적적한 마음에 뭐라도 욱여넣어야겠지.

그래서 나는 이 직업이 좋다. 즐기던 취미는 아니었지만, 기계를 운용하거나 기계가 고장 난 원인을 추론해 가며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집중도 잘되고 보람도 느낀다.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었지만, 일을 하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면서, 해결하면 보람을 느끼고, 내가 지루함을 느끼는 정도도 아니고, 감당 못할 만큼 벅차지도 않은. 내 삶을 조금 더 보람차게 만들어주는 이 직업을 좋아한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었고 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그저 맛있는 걸 배 터지게 먹고, 하루종일 게임만 하며, 평생 주변에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직업 특성상 휴가가 항상 한 달 이상은 된다. 그동안 비축한 돈과 넉넉한 시간이 있으니, 못했던 것들을 하면 되었다. 먹고 싶은 건 먹었고, 놀고 싶으면 놀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땐 행복했다. 놀고 있을 때도 행복했다.


그리고 지나간 자리는 너무 공허했다.

행복보다는 공허감이 드는 순간이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허들은 높다.

나는 그 허들에 대해 교육받으며 자랐고, 그 교육은 아무것도 안 하고 배부르기만 한 나를,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나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나는 살이 찌면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고 게임을 하면 오늘도 아무것도 안 하고 허송세월을 보낸 내가 한심스러워지도록 배웠다.

교육은 성공했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나를 주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친구가, 가족이 한심스러워한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지 않아도 소용없다. 나 스스로가 손가락질을 하고, 사회의 망령이 나를 한심한 사람이라고 삿대질하는 게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된다.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원치 않더라도, 하지 않을 때보단 덜 고통스러우니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남들이 원하는 직업을 자기가 원한다고 생각하나 보다. 일 하는 목적이 사회의 압박감으로부터의 도피나 사회의 칭찬이라서. 그래서 내가 원하는 직장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이 된 것이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사회 속에 있는 우리에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사회가 원하는 인재상에 한 발 가까워졌다.
도태되는 기분, 무시당하는 기분, 소외당하는 슬픔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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