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신. 神력도_자청비, 도시인들의 구원 이미지화

명동 로프트 그라운드 통해 도시 한가운데로 출몰

by 이재정


전시란 대체 무엇일까


지인이 파트리스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를 인용하며 “자기 집착에서 비롯된 무엇”이라고 표현했는데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면 ‘사회적 참여’ 보다는 ‘에고(ego)의 극단’ 쪽이 가까운 것 같다.


내년 5월 명동 <로프트 그라운드>에서 진행될 ‘탐라신. 神력도_자청비, 명동을 날다’ 전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화산섬 제주를 돌아보게 된다.

2012년 5월 제주 이주 후 처음으로 대면한 것이 제주 4.3이었다. 제주신화를 만나기 이전의 일이었다.


제주도민의 1/8이 학살되고서야 끝난 1948년 제주 4.3은 그 후 나에게 제노사이드(Genocide)의 중심, 제주 삶의 절반을 관통하는 일이 되었다.​

국민, 인종, 민족, 종교 따위의 차이로 집단을 박해하고 살해하는 행위를 제노사이드라고 하는데, 한라산을 경계로 아래위를 삶과 죽음의 경계로 가른 제주 4.3의 발단은 이념뿐 아니라 한 개인의 예술적 경계를 가르고 말았다.

미군정 주도의 한민족(혹은 섬사람으로서의 제주도민, 이민족으로서의 섬사람)에 대한 인종적 하대 및 차별적 시선은 없었을까 질문하게 되었다.


난 분명 있었다고 본다. 육지에서 온 토벌대는 제주어를 알아듣지 못해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했다는 가록 등 그 기원의 몇몇 잔재는 아직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일제는 앞서 1945년 패망했지만 아직 3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표준 일본어는 다들 학교에서 배워놓은 상태였으므로 이런 게 가능했는데, 이들이 당시 일본어로 소통한 것은 제주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이민족이라는 인식을 가진 것이고, 이러한 인식이 대량학살의 촉발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에 상당 공감하게 된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 정말 알 수 없는,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확대되는 역사적 불합리를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어쩌면 ‘남로당 제주도당/인민유격대 군경토벌대 서북청년단’이라는 몇 개의 워딩들도 결국은 ‘사람 잡는 무엇’이 되었고 궁극적으로 이념의 희생물이 되었다.

공산주의(혹은 계파적 이념)에 대해 치를 떠는 지금 세대까지 더해지면 제주 4.3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적 불합리다.


당시 ​도지사(행정)의 정치적 개입은 지금도 이 섬에서 유효한 증거가 된다.​


당시 군정장관 베로스 중령은 "그(유해진)는 자신의 편과 가까운 단체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단체의 회합도 금지했다.

이와 같은 유 지사의 행보는 본인(군정장관)은 물론 도민들을 당혹게 했다. 제주도 우익 테러 행위는 증가했고, 지사는 이런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사가 부임한 이래 공직에서 해임되고 있다"며 제주도에 조성된 탄압적 상황을 꼬집었다고 한다.


지금의 ​‘제주 제2공항’ 사태를 생각하면 한 시대의 도지사가 걷게 되는 정치적 행보(혹은 결정이)가 지역민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지 미뤄 예측할 수 있다


감찰도 등장한다. 제주도를 감찰하던 미군정 넬슨 중령은 "유 지사가 무모하고 독재적인 방법으로 정치 이념을 통제하려는 헛된 시도를 해왔고... 경찰은 수없이 테러 활동을 자행했다"며 유해진 지사가 문제 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사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월북 덮어씌우기와 관련된 작금의 정치적 사태와도 오버랩된다.


정책의 중요함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탄압 정책에 동원되어 입도한 서북 청년회원들은 극우 테러 활동은 물론, 태극기와 이승만 사진을 강매하거나, 주민들의 재산을 강탈하는 등 여러 만행을 저질렀다.

서북청년단의 이 같은 폭력행위는 사상적 요인도 있었지만 경제적 요인과도 결부되었는데, 그들에게는 정규 봉급이 없었기 때문에 자금 모금을 위해 테러에 의존했던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같은 우익 진영과도 갈등하였는데, 서청 세력은 4.3 사건 진행과정에서, 5.10 총선거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유로 족청 단원들을 '빨갱이'로 몰아 집단으로 사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족청 단원 집단 사살의 예에서 보이듯이, 빨갱이(좌파)라는 지목은 순전히 탄압 주체의 자의적 독단에 의한 것이었다.​


이는 3.8선(지금의 군사분계선)을 기원하면 4.3의 모태 같은 느낌을 받는 것과 동일하다.

이에 <미국은 사과(배상)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현실은 사과 대신, 이 화산섬은 오히려 군사기지화되고 있다.

일제가 중국 남경을 치기 위해 주 경유지로 노렸던 이 섬이 지금은 남경 타격지로 미제의 탐나는 대상물로 바뀐 것뿐.

이에 이 섬은 지금 타자화 될 수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불행히도 화산섬 제노사이드는 이 섬에 사는 누구에게도 타자화 될 수 없다.

정부가 도민이, 일흔네 번째 해 전 과거라 잊고 사는 현실을 생각하면 (다시 이용당할 수 있고) 불가능하다.​


여기서 사진(혹은 예술)의 역할은 ​미제(?)에게 묻고 (타자화 대신) 동기화시키는 일 밖에 없을까 자문하게 된다.


​쉽지 않겠지만 내년 5월 명동 <로프트 그라운드>에서 진행될 ‘탐라신. 神력도_자청비, 명동을 날다’ 전을 통해 질문할 것이다.


역사에 게으른 민중이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이미지로서의 ‘탐라신. 神력도, 철학적으로서 자청비의 역할을 정말 한 번 표현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