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NI(리니) - 'After the Sun'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나만 듣고픈 가수." 호주 R&B 싱어송라이터 'RINI(리니)'. 리니의 음악은 무더운 여름, 푹푹 찌는 더위 때문에 잠을 설치던 날 찾아온 에메랄드 같은 목소리였다. 국내에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리니는 프랭크 오션, 다니엘 시저, 켈라니, 브라이슨 틸러의 영향을 많이 받아 R&B를 좋아하는 리스너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아티스트이다. 그와의 첫 만남은 앨범 'After the Sun'의 수록곡 'Meet Me in Amsterdam'. 민머리에 금 귀걸이를 차고 무심한 듯 소파에 앉아서 내뱉는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덕질은 대게 첫 느낌의 결과일 때가 많다. 지금까지도 'Meet Me in Amsterdam'은 RINI의 곡들 중 나의 최고의 곡이다. 하지만 충격적이었던 것은 'Meet Me in Amsterdam'이 담긴 앨범의 정체였다.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곡이나 아티스트는 다르다. 그러므로 명곡, 명반이라고 생각하는 기준도 다르다는 것. 나는 '명반'을 만났다.
숨은 명곡들의 집합. Justin Bieber의 'Believe', Frank Ocean의 'Blond' 사이에 얹힌 RINI의 앨범 'After the Sun'. 현세대 최정상 아티스트라고 알려진 이름들 사이에서 무게감은 확실히 떨어진다. 하지만 단지 덜 유명하다는 이유가 내게 이 앨범을 선택하지 않을 명분을 주진 못한다. '해가 진 후' 어두운 방안 전구 하나만 켜진 채 차분히 앉아있는 RINI. 그가 제시한 키워드는 '사랑'이다. 흔하디 흔한 '사랑'의 이야기를 리니는 어떠한 방식으로 풀어냈을까.
눈을 감고 드럼 소리에 맞춰 음악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드럼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단 하나의 박자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 곡의 분위기를 일관된 박자로 리니의 목소리에 감정을 싣고 있다.
곡의 내용은 하나의 사랑을 위해 부르는 리니의 일편단심. 내가 본 리니의 첫 모습이었고 1번 트랙부터 앨범의 메시지를 던진다. "암스테르담에서 만나자." 왜 하필 네덜란드 수도인 '암스테르담'일까? 노래의 첫 벌스 가사를 살펴보면,
I would sail across the world
난 온 세계를 항해할 거야
Row this boat from dusk till dawn
해 질 녘부터 새벽까지 이 보트를 저을 거야
To a place where we belong
우리가 있는 곳으로
'상징'적인 곳이 아닐까. 가사에서 보면 보트를 항해해서 너에게 가겠다는 표현으로 보아 작은 운하가 사방으로 퍼져 있는 '암스테르담'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아무것도 필요 없어, 너만 있으면 돼.'라고 흐느낀 리니의 1번 트랙 'Meet Me in Amsterdam'.
이 곡은 리니의 애절한 '구애'라고 표현하고 싶다. 리니의 감정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Aphrodite'.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운 조각상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2번 트랙 'Aphrodite'에서 리니는 사랑하는 '상대'를 표현했다. '너'를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로 비유한다. 여성의 성적 아름다움과 사랑의 욕망을 관장하는 여신이기에 'your waters, your foutain'같은 상징적인 가사를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곡의 감상 포인트는 가사 뒤에 덧붙여진 리니의 속삭임과 추임새. 감정을 끊지 않고 이어가려는 리니의 노력 같아 보인다. 더하여 곡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33초의 도입부는 노래에 온전히 몰입하게 해 준다.
현란한 손놀림을 연상케 하는 기타의 선율. 3분 35초 내내 간드러진 기타의 튕김은 곡 전체를 이끌어 간다. 비트는 1,2번 트랙과는 사뭇 달라졌다. 흐느끼는 리니의 가성과 진성을 오가는 목소리였다면 이번 트랙에서는 절박함이 묻어나는 당당한 목소리로 노래를 이어간다. 제목 'Good Intentions'와 연관되어있는 걸까.
그렇다. 'Good Intensions'는 리니가 '너'에게 했던 모든 것들은 전부 '좋은'의도였다고 울분을 토한다. 그렇기에 위에서 언급했던 떳떳하고 당당한 목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넌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바쳤지만, 네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어. 그래서 처음으로 널 실망시켰지만 이 모든 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을 뿐이야.' 곡을 못 들어 본 사람에게 이 두 문장이면 곡의 내용을 설명하는데 충분하다고 확신한다.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곡 'After the Sun'. 비트가 낭랑해진다. 저절로 몸이 움직이게 된다. 마치 런치패드로 멜로디를 갖고 노는 것 같다. 우리가 자주 하는 핑거스냅의 딱, 딱 소리를 자연스럽게 곡에 삽입했다. 리니의 음악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마지막 가성으로 외치는 리니의 고음은 이 앨범의 정점을 찍는다.
3번 트랙 이후부터 맑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4번 트랙 'After the Sun'에서는 '너'를 만나 우리가 나누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산들바람 맞으며 해변에 눕자, 바다에 뛰어들어 물놀이를 하자' 등의 행복한 가사들로 채워져 있다. 동명의 앨범 커버를 보면 주황빛은 노을을 뜻하는 게 분명해졌다. 해가 질 무렵 나타나는 노을과 함께 나누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이 곡을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선정했다. 통통 튀는 비트와 함께 해가 진 뒤 나누는 사랑을 이야기 한 타이틀 곡 'After the Sun'.
유일하게 피처링과 함께한 곡이다. 함께한 가수는 호주 아티스트 'Olivia Escuyos'. 두 명의 목소리는 물 흐르는 듯 한 조화로 단연 압권이다. 올리비아가 리니의 상대역을 맡고 대화를 주고받는다. 훅(Hook)에서 같은 가사를 다른 목소리로 부르는 포인트가 황홀함을 선사한다. 잇따라 나오는 두 명이 같이 부르며 맞추는 화음은 이 곡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클라이맥스다. 리니의 목소리에 엇박자로 치고 들어오는 파트는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리니의 마지막 이야기.
서로 모든 것을 인정하고 함께 나아가기로 결정한다.
Never too late, never too late to try
절대 늦지 않았어, 우린 아직 늦지 않았어
Make your mistakes keep on the move, that's life
실수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겠어, 그게 삶이잖아
Don't you think that it's beautiful
그러니까 아름다운 거 아니겠어
A new day dawns we get to live some more
새벽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하루를 더 살아가잖아
Not everyone gets to do it all
모든 사람이 원하는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는 법이야
그렇게 차분히 내려놓고 자신의 사랑을 적어 내려간다.
리니의 표정은 곡의 분위기와 달리 미소를 짓고 잇지 않았을까.
그의 서사는 기승전결 완벽함 그 자체였다. 리니의 목소리, 감정, 내러티브, 음악적 스킬까지 빈틈이 없는 앨범이기에 나에게 있어 이 앨범은 '명반'의 리스트에 담겨있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의 'RINI(리니)'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R&B의 숨은 명곡들을 듣고 싶다면 'RINI(리니)'의 페이지를 넘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