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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Nov 10. 2017

MT 가서 투명인간 된 썰

설레는 맘을 안고 갔던 과 MT(경영학과, 국문학과같이 과마다 가는 1박에서 2박 정도의 여행).


당시 1학년이었던 우리 학번과 선배들, 교수님들이 같이 갔었다. 마지막 날에 각자의 이름 앞으로 롤링페이퍼를 줬었다. ‘너 있는 줄도 몰랐다.ㅋㅋㅋㅋ. ‘넌 누구냐ㅋㅋㅋㅋ.’ ‘오지 말지 그랬냐.’ 등의 말이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욕설과 함께 명백히 깔보는 식의 말이 있었다. 다른 애들의 종이를 봤다. ‘야 재밌었다!’ ‘너 잘 생겼더라. 앞으로 자주 보자’ 등의 말이 있었다.


정시 합격이라 남들보다 늦게 단톡 방에 들어간 것이 문제였는지. 매번 과행사마다 겹쳤던 아르바이트 때문에 못 간 것이 문제였는지. 과행사마다 집이 멀어서 막차 때문에 일찍 간 것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그냥 내가 문제인 건지. 어떤 이유였던지 학기가 시작돼서도 나는 남들보다 과에 적응하는 것이 늦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선배라는 사람은 직접 마주할 기회가 없는 사람이었고, 대학교에 와서는 더욱더 선후배라는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왜 굳이 돈이 있는데 선배한테 밥을 얻어먹어야 하는 건지. 처음 보는 선배한테 왜 번호를 얻어야 하는 건지. 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초반에는 선배들이랑 같이 식사나 하자던 동기(같은 년도 입학한 사람)들의 연락도 끊겨갔다.      


정관아 00 선배랑 밥 먹을 건데 같이 갈래?

이렇게 오면 며칠 뒤에 


아 미안. 선배가 그 날 어려울 것 같대..

라고 왔다.     


진짜 선배님이 바쁘셨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같이 가자던 친구랑 선배는 잘 지낸다. 나는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동기들끼리 모여서 술도 먹고 밥도 먹고 하던 양상은 바뀌어갔다. 선배들이랑 친하고 과생활 잘하는 사람이랑 아닌 사람들. 시간이 갈수록 다 같이 놀기보다는 전자는 전자끼리, 후자는 후자끼리 놀게 됐다. 나는 후자였다. 나도 과실(과마다 있는 방. 책상이나 컴퓨터 사물함 등이 있다.)에 가서 친구들이랑, 선배들이랑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MT에 가기로 했다.





MT 가는 버스에 타자 마자 느꼈다. 아 괜히 왔다.


이미 친해진 사람들끼리 자리를 앉았고, 나는 같이 앉아 갈 사람이 없어 멀뚱히 서 있었다. 결국

나처럼 멀뚱히 서있던 남자애 한 명과 같이,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2시간을 달렸다. 낮에는 이런저런 활동으로 시간을 보냈고, 밤이 돼서 술자리를 가지게 됐다.


각 방에 몇 명씩 섞어 앉았다. 이제 조금 친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은 친해져 있는 상태였다. 다들 이야깃거리를 한 움큼 준비해와서 풀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느니, 걔는 싹수가 없다느니, 다음 과행사는 언제냐느니, 이 선배랑 동기랑 사귀고 있다느니. 모르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술 게임도 한두 번, 밤이 깊어갈수록 자리를 지키는 게 머쓱했다. 교수님과 취업한 선배들, 고학번의 선배들이 오면 다들 더 신나 했다. 나와 버스 옆에 앉아있던 남자애만 뒤에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병풍처럼 서있었다.


장기자랑을 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수록, 자리를 지키고 있기가 더 머쓱했다. 그래서 빈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버스 옆자리 남자애도 얼마 안 있다 방에 들어왔다.




어떻게 마지막 날까지 잘 버티고 롤링페이퍼를 받고 집에 왔다. 그 날 이후로 과의 행사나 선배들과의 모임은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반발심이나 복수심은 아니었다. 약간의 서운함이라면 있었지만.


굳이 이미 친해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 억지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들어갈 끼나 유머감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더 자주 놀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겉도는 사람들 몇몇이랑 친해지고, 동아리를 잠깐 기웃거리고, 여자친구도 잠깐 사귀고, 게임과 독서 등으로 1학년을 보냈다.



비록 고등학교처럼 많은 친구랑 지내지는 않았지만 1학년 생활은 재밌었다. CC(캠퍼스 커플. 대학 내에서의 사귐.)라는 것도 해보고, 미팅, 소개팅, 축제문화도 즐겨보고, 동아리방에서 떡볶이랑 캔맥주 하나를 사서 밤새 이야기하고, 술 먹고 자취하는 친구 집 앞에서 기억 잃고, 아르바이트해서 입대 전에 일본 여행도 가고. 큰 사건들은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군대를 가서, 2년 뒤 2학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같이 겉돌던 친구들도 군대를 갔다 와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됐다. 한 번 아싸는 영원히 아싸라고 복학생이라고 신입생들이 알아봐 준다거나, 동기들이 반가워해준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신입생들은 내가 1학년 때처럼, 과실에 자주 들르고 먼저 다가오는 선배를 알아봤다. 동기들은 남자는 군대에, 여자는 반 이상이 각자 진로를 찾아 휴학을 했었다.


2학년이 되고 나서는 더 학교 생활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그렇게 자주 하던 게임도 피시방에 가기가 귀찮아졌다.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덕인지, 생각이 정리되어선지, 몸이 바빠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르바이트를 두 개를 했고, 매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고, 주 1회는 서울에서 수원까지 대외활동을 하러 갔다. 아르바이트 회식을 하는 날은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형과 주말에는 집 앞 공원에 농구를 하러 나갔다. 모르는 아저씨들과 농구를 하고 나면 3시간, 4시간은 지나가 있었다. 대학에서는 원래 지내던 친구들이 있었고, 고등학교 친구들도 가끔 연락하는 사람이 있다. 전역 후 수업 중에 마음에 들어서 먼저 친해지자고 말 걸었던 여자애는 지금은 좋은 친구가 됐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왜 내가 학교생활, 학교 사람들에게 적응을 못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 반장도 부반장도 한 번씩 해봤다. 내가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친구 사귀는 데 서툴다고 생각해 본 적도 별로 없었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대학 와서 내 성격이 드러났구나’. 원래 혼자 있는 게 편하던 성격이었고, 친구를 많이 안 두는 게 편한 성격이었는데 괜히 욕심을 냈구나 생각한다. 군대에서 만난 정말 소중한 친구 서너 명, 대학에서 정말 아끼는 친구 서너 명. 그리고 가족. 이 사람들은 내가 무얼 해도 응원해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굳이 더 친구들을 사귀려고 욕심내지 않는다.




글을 읽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생활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명회를 가고, MT 같은 과행사(과마다 있는 여러가지 행사)를 가고, 다 같이 축제 준비를 하고, 동기들끼리 여행도 가고, 선배 후배 동아리 사람들이랑 룰루랄라 지내는 학교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한두 명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범하게 중고등학교 생활을 했고 나름 노력했지만 대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 하는 사람들. 술을 못하거나, 낯을 가리거나, 집이 멀거나, 대학문화가 어색하거나 등 한두 가지의 이유로 대학생활을 적응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 같은 사람도 어떻게든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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