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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Dec 07. 2017

친구와 오사카 3박 4일

지난 겨울, 친구와 오사카 여행을 다녀왔다. 요즘 대학생들은 친구와 일본 여행을 갔다 오는 것이 흔한 일이지만, 내 독자는 주로 고등학생으로 친구들과 우정 여행 가는 것에 한참 로망을 가질 때이니 우리의 여행일지를 풀어보려고 한다. 이 짧은 3박 4일을 위해 갈등도 많았고 기대도 많았다. 사실 내 주변사람들만 봐도 그렇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 전 맞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닌 사람들이 있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그 전자였다. 나랑 내 친구는 여행 스타일이 완전히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항공사에 근무하시는 부모님을 뒀거나 그런 친구들이 있는 사람들은 항공사의 자녀들이 여행을 자주 간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는 항공사에 다니시는 우리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해외여행의 경험이 잦았다. 몇 군데를 가봤는지 정확히 생각은 안 나지만 20살이 되기 전 여권 하나를 도장으로 꽉 채운 것만은 확실하다.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힐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지에 가서 그날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면 바로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을 좋아했다. 그에 반면 내 친구는 해외여행을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낯선 나라에 간다는 것에 쉽게 불안해했고 여행을 자주 가지 않으니 한 번 가는 거 계획표를 완벽하게 짜서 유명한 관광지들을 많이 들러 보고 싶어 했다. 기본적인 여행 성향이 다르니 여행 가기 전부터 계획표를 짜면서 자주 부딪혔다. 그래도 나는 여행을 자주 가봤으니 친구한테 맞춰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마인드 덕분에 어떻게 여행을 잘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유 시간 한 시간 정도는 주장할 걸 싶기도 하다. 내가 그 빡빡한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대견하기 때문이다. 막상 스케줄을 짠 친구도 다음부터는 널널하게 계획을 세워야겠다면서 여행 마지막 날에 너털웃음을 지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함부로 우리의 계획을 따라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고대하던 여행이 다가온 첫날, 나는 어이없게도 늦잠을 잤다. 아마 한 시간만 더 잤으면 비행기도 못 탔을 것이다. 전화를 받지 않자 친구가 내 방에 들어와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본 것이 아직도 선명하다. 허겁지겁 준비한 채로 택시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다행히 인천사람인지라 공항과 가까워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먼저 포켓 와이파이를 빌리고 탑승 수속을 하면서 짐을 부쳤다. 그리고 시간이 남아 여행 전 간단히 스낵코너에서 점심을 먹고 면세점을 둘러보다가 비행기의 이륙을 기다렸다. 이륙을 기다리면서 친구가 긴장해 손을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초등학생 때 비행기가 이륙할 때마다 하늘을 난다는 것에 신나고 설레었는데 그런 어릴 적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비행기를 탈 때 마다 자는 것이 습관이 됐는지 그날도 어김없이 잠이 쏟아졌는데 잠시 눈을 감고 떴을 땐 간사이 공항에 도착한 후였다. 친구가 자는 것을 몰래 찍었다며 사진을 보여줬는데 정말 넋 놓고 입 벌리며 자고 있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첫 번째로 내가 가장 가보고 싶었던 규동집을 찾았다. ‘스키야’라는 일본에서 유명한 규동 체인점인데, 한국의 김밥천국과 같은 곳이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자주 먹는 진짜 규동 맛은 어떤 맛인가 궁금하기도 했고 공항에 있다고 하니 위치도 가까워 맨 처음 점 찍은 곳이었다. 근데 생각보다 찾기 어려워서 한참 헤맸다. 분명 위치를 블로그로 다 찾아서 봐도 막상 도착하니 어디가 어디인지 헷갈리더라. 다행히 공항 안내원으로 추정되는 할아버지께 만인의 공용어 바디랭귀지인 손짓 발짓을 활용해 가까스로 찾아냈다. 다행히 스키야에는 메뉴판이 한국어로 해석되어 있어서 주문은 무난히 할 수 있었다. 카레 향이 섞인 규동과, 파가 잔뜩 올라간 네기규동을 시켰는데 한국 돈으로 만원도 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이때 같이 나온 생계란이 누구 것인지 한참 심각히 토론했었는데, 결국 친구가 자기 것이 맞는 거 같다며 계란을 가져갔었다. 지금 찾아보니 내가 시킨 네기규동에 나오는 계란이 맞다고 한다. 


공항에서 나온 뒤 먼저 짐을 풀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우리가 고른 숙소는 Hotel Consort라는 곳이었다. 사실 웬만한 게스트하우스 가격이랑 비슷할 정도로 저렴한 숙박업소라 기대하지 않던 곳이었는데 정말 만족스러웠다. 일단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어서 이동이 편했고 주변에 크고 유명한 편의점들이 많아서 좋았다. 그리고 기대도 안 했던 유니폼을 차려입은 호텔리어도 있었고 매일 청소도 해주던 게 인상적이었다. 유일한 단점은 방이 조금 작다는 것뿐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재빨리 야경을 보기 위해 하루카스 300으로 향했다. 왜 하루카스 뒤에 300이라는 숫자가 붙는지 궁금했는데 전망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 미터기를 보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전망대가 지상 300M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상 300M가 크게 와닿지는 않았는데 막상 전망대에 올라와 보니 한눈에 보이는 오사카의 야경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내가 갔을 때는 별이 쏟아지는 야경 프로젝터를 틀어주는 이벤트 기간이었는데 덕분에 전망대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포토존들을 즐길 수 있었다. 곳곳에 있는 망원경으로 자세히 야경을 들여다보고 사진 몇 장 찍으니 시간이 정말 총알같이 지나갔다. 



다음은 우메다 헵파이브 대관람차로 향했다. 가는 길에 구로몬 시장에서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다코야키 하나도 먹어줬다. 헵파이브 관람차는 오사카 필수 관광지로 꼽히는 곳인데 오사카주유패스를 가지고 있으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침 오사카 주유 패스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야경을 더 즐기고 싶기도 했지만, 우리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클럽 즐기기! 대관람차 안에 스피커가 있어서 핸드폰을 연결하면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클럽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방출할 계획인 우리는 핸드폰에 잔뜩 신나는 노래들을 내려받고 헵파이브 앞에 섰다. 마감 시간과 가까워진 탓에 유명한 관광지지만 얼마 기다리지 않고 탑승할 수 있었다. 그리고 “Daiwn – Dessert”와 “Tungevaag & Raaban – Samsara”을 틀고 우리만의 클럽을 만들고 춤을 췄다. 여행 첫날이라 긴장도 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느라 지쳐있었는데 공중에서 신나는 노래를 틀고 즐기는 건 정말 색다르고 흥이 나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방전된 몸을 충전하고 우리는 다음 날을 위해 숙소로 향했다.





다음날 우리의 목표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이었다. 20대 오사카 여행객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필수 관광지로 각종 영화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이다. 가장 유명한 어트렉션은 해리포터인데, 일명 ‘해리포터 덕후’였던 우리는 부푼 꿈을 안고 새벽 일찍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오사카를 대표할 만큼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놀이공원으로 향하는 전철에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풍경과 해리포터가 그려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그걸 보고 해리포터 전철이라며 들떠있었다. 놀이공원으로 가기 위해 먼저 유니버설시티역에서 내려 걸어갔어야 했는데 전철에서 내린 순간부터 내가 서 있는 곳이 만화책의 한 풍경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단색의 휘황찬란한 건물들에 눈을 뺏겼을 때 유니버셜의 입구를 보고 더 흥분했다. 내가 그리던 유니버셜의 풍경보다 더 크고 장대했기 때문이다. 입구는 이렇게 큰데 안은 얼마나 넓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을지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올라 있었다. 다만, 유니버셜의 규모가 큰 만큼 오픈 시간도 안 됐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한참 후에야 놀이공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겁이 많고 멀미가 심해 놀이기구 타는 것을 원체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은 많이 다녀봤지만, 놀이공원은 기껏 해봐야 한국에서 롯데월드나 에버랜드 조금 돌아다녀 본 것이 끝이었다. 그런데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정말 급이 달랐다. 놀이기구 하나가 웬만한 놀이공원 크기였고 전체 크기가 롯데월드 열 배는 되는 거 같았다. 벽 하나하나 아기자기한 그림들로 꾸며져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지체해서는 안 됐다.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의 목표는 ‘해리포터’이기 때문이다. 해리포터는 정말 가장 인기가 많은 어트렉션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들려야 하는 곳이다. 입구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 오픈하자마자 사람들이 모두 해리포터로 향하기 때문에 길을 찾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해리포터와 가까워 지면 울창한 나무들이 보이고 해리포터의 메인 테마음악이 들려온다. 그럼 해리포터 어트렉션까지 딱 절반 왔다는 소리다. 해리포터 어트렉션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해리포터 마을을 꼭 들려야 한다. 마을에는 위즐리 가문의 사고 난 자동차도 있고 호그와트 급행열차, 버터 비어, 지팡이 가게, 올빼미 가게 등이 있다. 이 모든 걸 다 지나간 후 거대한 호그와트 성 앞에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해리 포터 앤드 더 포비든 저니'어트렉션을 탈 수 있는 곳이다. 


어트렉션을 타기 위해 기다리다 보면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재연한 비밀의 정원을 지날 수 있다. 해리포터의 광적인 팬으로서 정원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호그와트 성으로 향했다. 호그와트 성 내부는 영화처럼 완벽하게 꾸며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명한 장소들 몇 군데를 그대로 재현해 놓아 그것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했다. 그렇게 홀린 듯이 걷다 보면 짐을 맡기고 놀이기구에 탑승할 수 있게 된다. 놀이기구의 내용은 해리포터의 동료가 되어 빗자루를 타고 다니면서 스니치를 잡는 것이다. 단순히 스니치를 잡는 것뿐만 아니라 불을 뿜는 용도 만나고 아즈카반의 무시무시한 간수인 디멘터들과도 맞부딪치며 모험을 떠나기도 한다. 3D 안경과 움직이는 의자로 몰입도 높은 어트렉션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영어로 진행돼서 해리포터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점이다. 물론 자막이 없어 이해하지 못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놀이기구였다. 놀이기구에서 내리고 얼마 안 가 해리포터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해리포터 팬들을 위한 각종 기념품들에 홀려서 기념품 가게에서 족히 30분은 보냈다, 그때 친구가 고른 기념품 중 컵이 있었는데 그게 그날 겪은 고생의 시발점이었다.



친구가 고른 컵은 한국 돈으로 이만원 정도의 머그잔이었는데 겉은 호그와트 성의 비밀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고심 끝에 고른 기념품이라 애지중지 들고 다니다가 컵을 열어봤는데 안에 조그마한 점이 있다며 족히 200m는 넘는 거리를 다시 가서 다른 컵으로 교환해 올 만큼 신경 쓰던 기념품이었다. 그런데, 정말 믿을 수 없게도 놀이공원 밖으로 나간 지 1분 만에 컵을 떨어트려 산산이 조각나버리고 만 것이다, 놀이공원 안에서 표를 버리고 나온지라 다시 들어가서 사올 수도 없고 발만 동동 굴리고 있는데 한 직원분이 우리의 사정을 듣고 입구 근처에 있는 작은 기념품 가게에 가보라며 조언해주었다. 하지만 그 컵은 해리포터 기념품 가게에서만 파는 물건이라 구할 수 없었다. 대신 우리의 사정을 전해 들은 점원이 깨진 컵과 우리의 절망적인 표정을 보고 안타까웠는지 우리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주셨다. 감사하게도 한번 놀이공원에서 나가면 다시 들여보내 주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우리가 원하는 컵만 사서 나오는 조건으로 딱 한 번 사정을 봐주기로 하였다. 결국, 그 머나먼 기념품 가게까지 다시 한번 갔다 왔지만 친절한 직원분들 덕분에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물론 우리는 유니버셜에 가서 해리포터만 구경하고 컵을 깬 것은 아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퍼레이드도 봤다. 놀이공원에서 퍼레이드를 몇 번 본적이 있는데 유니버셜은 규모가 정말 다르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놀이공원에서 하는 퍼레이드는 볼거리였다면 유니버셜은 즐길 거리였다. 흥겨운 음악에 동동 뛰면서 리듬을 타고 종이 가루들을 흩뿌리며 퍼레이드를 즐길 수 있었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던 쿠키 몬스터와, 스누피, 헬로키티들이 한자리에 모여 춤을 추는데 정말 이색적인 광경이었다, 지나가다가 퍼레이드 한다며 우연히 서서 즐겼는데 아직도 퍼레이드가 잊히지 않아 친구와 만나면 종종 이야깃거리로 삼을 만큼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좋은 사진과 추억들을 담아갈 수 있는 하루였다.


저녁까지 유니버셜스튜디오에서 시간을 보낸 후 지칠 새 없이 도톤보리로 향했다. 여행 오기 전 눈여겨봤던 여행코스인 'japan night walk tour'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도톤보리의 밤거리를 걸으며 도톤보리의 역사와 맛집들을 알려주는 가이드형식의 투어라고 한다. 후기를 찾아보니 가이드가 한국말을 할 줄 알며 사람이 적어서 소수로 다닐 수 있다고 하여 신청하게 되었다. 또, 오사카 주유 패스가 있다면 50% 할인된 가격으로 갈 수 있으니 주유 패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신청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저녁 6시쯤 친구와 나 그리고 교토에서 음식집을 하시는 일본인 중년 부부와 함께 안내를 받았다. 유창하진 않지만, 가이드가 생각보다 한국말에 능숙해서 놀랐다. 100% 한국말로 된 가이드가 아니라서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외부 여행객들은 지나치기 쉬운 골목 하나하나 되짚어주며 역사를 알려줘서 좋았다. 하지만 굳이 추천하지는 않는다. 일단 한국어로 전부 설명해주지도 않을뿐더러, 돌아다니는 곳도 많고 알려주는 것도 많아서 투어가 끝나고 나면 대부분 잊어버리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대신 가이드가 알려준 현지인들의 진짜 맛집들을 몇 개 기억해두는 것은 유용한 것 같다. 우리는 가이드가 추천해준 세상에서 2번째로 맛있는 메론빵아이스크림과 포장마차 골목에 있는 야키소바와 다코야키로 출출한 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갔다.





오늘도 새벽 일찍 일어나 새로운 여행을 준비했다. 오늘은 교토로 기모노 여행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7시 40분에 준비를 다 하고 나왔는데 전철이 헷갈려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기모노를 예약할 때 예약한 시간보다 늦으면 예약이 취소된다는 안내문을 읽은 뒤라 친구가 많이 조급해했다. 전철에 내려서 부리나케 지도를 보고 쫓아갔는데 우리가 예약한 기모노 대여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도에서는 이미 도착한 것으로 나왔는데 근처를 샅샅이 살펴봐도 무용지물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해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다시 한번 주소를 찾아봤다. 주소가 잘못된 거 같다며 지도를 다시 검색해봤는데 우리가 먼저 찾은 주소가 잘못됐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이미 예약시간을 훨씬 넘어서기도 했고 대여점까지 뛴다고 달라질 거리가 아닌 것 같아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걸어가는데 친구의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졌다. 기모노 예약을 맡고 대여점 주소를 잘 못 알아온 건 친구인데 왜 나를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모노 대여점에는 예약시간보다 40분 넘어서 도착했지만, 다행히 예약이 취소되는 일은 없었다. 기모노 대여점에서도 친구와 내 사이가 묘하게 틀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소한 말이라도 괜히 까칠하게 반응하는 것 같고 친구를 대하는게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도 친구와 더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괜한 말은 하지 않았다. 분위기는 묘했지만 서로 서운한 점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오사카는 한국의 명동 같은 곳이라 현대적인 느낌이었는데 교토는 일본 전통의 느낌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길거리를 걸으며 ‘이웃집 토토로’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많이 떠오르곤 했다. 기모노를 입고 산녠자카, 니녠자카, 청수사, 후시미 이나리 신사 등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기장 기억에 남는 곳은 후시미 이나리 신사이다.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여우신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신성한 여우가 신사를 지키기 때문인데 신사를 대표하는 붉은 기둥(토리이)만큼이나 여우는 강렬한 인상을 뿜어낸다. 기둥을 따라 산을 오르는 데 2시간이 걸릴 정도로 규모가 매우 크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면 교토 시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시간이 부족해서 다 오르지 못했다. 다음에 다시 갈 기회가 생긴다면 정상에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시간 맞춰 기모노를 돌려주고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여행의 마무리로 온천에 가기로 했다. 온천이나 대중목욕탕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동안 피로가 많이 쌓이기도 했고 온천의 본고장 일본까지 왔으니 한 번쯤 들려보고 싶기도 했다. 비싼 온천을 갈 형편은 안돼서 저렴한 곳을 알아보던 중 오사카 주유 패스가 있으면 ‘나니와노유 온천’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온천에 가니 친구와 속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친구가 먼저 여행하면서 섭섭했던 것들을 조심스레 풀어놨다. 친구는 첫 해외여행이라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데 내가 여행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고 여행 스케줄을 짤 때 자길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도 내 속사정을 털어놨다. 친구와 우정 여행은 처음이지만, 친구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는 만큼 거기에 나도 맞춰주고 싶었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는 놀이공원도 가고 빽빽한 일정표에도 내색하지 않고 따라준 것이었다. 한 번도 다툰 적 없는 사이였는데 이런 말이 오고 간다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다. 한 번도 친구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고 여행까지 와서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고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면서 짜증 낼 때도 있었지만 결국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우린 많이 예민해져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처음 만난 순간부터 한 번도 싸운 적 없는 우리였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들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받아들이니까 기분이 상하고 그걸 숨길 수 없었던 거라고 결론을 지었다. 바보같이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친구가 사우나에서 등목해준다며 먼저 다가와 줬다. 그동안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서로 그동안의 뭉친 근육들을 풀어주면서 생각했다.


왜 이렇게 좋은 친구와 여행 와서 날을 세웠을까.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마터면 늦어서 비행기를 못 탈 뻔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친구들을 위한 기념품들을 잔뜩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빠가 여행 가서 친구랑 싸우지 않았냐고 물었다.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하마터면 싸울 뻔했다고 했다. 그러자 아빠가 웃으면서 말했다. “원래 친구와 외국 여행 가면 대판 싸우고 오는 거야, 인마.” 그 말을 듣고 한참이나 차 안에서 웃었다. 그 말이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도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첫 나의 우정 여행이 막을 내렸다. 비행기는 무려 2번이나 놓칠 뻔하고 기념품도 깨트려보고 길도 여러 번 잃어보고 친구와 서먹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추억들이 먼저 떠오른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떨리는 친구의 손을 잡기도 했고 관람차에서 클럽을 즐기기도 했고 내 인생에서 가장 멋있는 퍼레이드도 봤다. 실수가 잦았다고 해서 그 여행은 결코 나쁜 여행이 아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여행이었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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