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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Mar 08. 2018

10대는 누구나 한 번씩 성장통을 겪으며 성숙해진다

‘성장통’은 흔히 한창 자라나는 성장기 아이들에게서 발견된다. 이는 곧 키가 자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나 염증은 아니지만, 몸 안에서 느껴지는 찌릿찌릿한 통증이다. 그리고 그 짧은 통증을 이겨낸다는 것은 곧 키가 크는 신체적 변화와 더불어 전과 비교해 마음이 보다 성숙해짐을 의미한다. 우리는 키가 자랄 때쯤 이러한 통증을 한 번쯤은 느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성장통’은 우리가 경험해 본, 몸에서 느껴지는 아픔이 아닌 어른이 되기 전 경험하는 10대의 ‘성장통’이다.




10대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들도 많다. 그러나 그에 비해 겪어야 하는 아픔들도 만만치 않다. 숫자 0 앞에 붙어 다니는 ‘1’이라는 숫자가 ‘2’로 바뀌기 전까진 우리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서 자란다. 취업에 대한 걱정 없이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 노트북을 열었을 때 자기소개서(자신의 이름, 성격, 경력 등을 타인에게 알리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를 써야 하기에 나오는 한숨보다는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웃음이 먼저 흐른다. 가벼워진 주머니는 아르바이트가 아닌 부모님의 용돈으로 다시금 두둑해진다. 이처럼 숫자 ‘1’ 안에서 우리는 특별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이와 같은 특권만을 누리고 싶겠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숫자 ‘1’은 자기가 ‘2’로 바뀌기 전에, 다시 말해 어른이 되기 전에 우리에게 완전한 성숙을 위한 아픔을 주고 떠난다. 이 성장통은 누구에게나 같은 시기에,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실제로 성장기의 아이들에게도 각자 다른 시기에, 다른 강도로 성장통이 찾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10대가 경험하는 성장통은 대부분 어른이 되기 바로 직전의 과도기적인 단계인 고등학교 때 경험하게 되는 것 같다.



나의 ‘성장통’은 3년이라는 고등학교 시절 동안 정확히 나를 두 번 찾아왔던 것 같다.


나름 중학교에서 공부로 이름을 날렸던 나는 서울에서 가장 좋다고 인정받는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했고 이후 중학교 3년간 열심히 공부해 당당히 입학할 수 있었다. 막상 입학하고 나니 예전에는 한 번도 1등급 밑으로 받아본 적 없는 나의 성적표에는 1은커녕 2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주변에는 집안 자체가 부유하고, 이미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도 수두룩했다. 그 당시에 나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주변의 환경으로 너무 아팠다. 내가 모자란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미 패자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약간 바꿔보았다.

‘세상에 다 똑같은 사람만 있는 거는 재미없잖아?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이 있으니깐 그것을 열심히 해보자! 남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나를 이겨보자’

이렇게 생각하니 성장통은 금세 나를 떠나버렸다. 단지 내가 생각하는 관점을 약간만 틀었을 뿐인데 너무 아프고 어두웠던 순간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한 차례 나를 찾아봤던 성장통은 3학년 말에 대학 입시 실패라는 모습으로 나에게로 또 한 번 다가왔다. 수시로 6개의 대학을 지원했던 당시의 나는 지금 보면 조금 자만했던 것 같다. 솔직히 6개 모두 붙어서 그중 내가 원하는 대학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고 오만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점차 한두 개의 대학이 합격자 발표를 하기 시작했고, 나와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은 ‘여기 붙었네.’, ‘저기 붙었네.’라는 말들을 했다. 친구들이 합격의 기쁨을 누릴 때, 나는 초조한 심정으로 나머지 대학의 발표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대학이 나를 선택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지만 야속하게도 6개의 대학 중 5개의 대학은 ‘나’라는 사람을 차갑게 외면했고, 남은 것은 단 하나의 대학뿐이었다. 그 대학은 원서 작성을 할 때, 나의 가장 마지막 순위였으며 최초합(대학에서 최초로 발표하는 합격자)으로 붙을 수 있는 대학이라 생각했다. 이 또한 나의 큰 오만이었다. 그 대학조차도 나에게 최초합의 기쁨은 주지 않았다. 추가 합격을 통해서 지금처럼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과 캠퍼스 라이프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10대의 ‘성장통’과 어렵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사실 어떤 이는 이 글을 읽고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거나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10대의 성장통을 겪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렇게 큰 아픔은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이라곤 할 수 없다. 내가 겪었던 통증은 남들이 보기에 가볍게 지나간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누구에게나 같은 시기에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 않듯이 같은 시련과 아픔을 주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또 누군가는 좋아했던 사람과의 이별로,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아픔을 겪게 된다. 그리고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가벼울 수도 또 무거울 수도 있는 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10대의 ‘성장통’이다.


생각해보면 당시에 내가 겪었던 성장통은 지금의 나의 대학생 생활의 탄탄한 기반을 다져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픔을 미처 경험하지 못했다면 20대에 처음 실패를 맛봤을 때, 어려움을 극복할 힘이 부족했을 것이다. ‘성장통’을 느껴야 성장을 하듯 10대들은 한 번 이상의 패배감과 좌절감이라는 통증을 느껴야 진짜 어른이 될 준비를 마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0 앞의 숫자가 ‘2’로 바뀌었다 해서 ‘성장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0 앞에 다른 숫자가 왔다고 해서 우리가 다시는 아프지 않을 것이라 확신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경험을 통해 성장통과 슬기롭게 작별하는 법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두렵지 않다. 언젠가 우리는 또 성장통과 마주하게 될 것이며 그때의 아픔은 거름이 되어 새로운 을 틔울 것이고, 그로 인해 우리는 지금보다 성숙해질 것이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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