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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Mar 12. 2018

당신이 외친 세상은 정말로 정의로운가요?

지금을 넘어설 첫 번째 할 일


작년 가을의 일이다. 막 2학기가 시작되어 친구들과 개강파티를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학교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는 술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몇 명은 먼저 가고, 수업을 마치고 모인 나와 친구 몇 명은 택시를 기다렸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차츰 물러가고 이제 막 살랑살랑 기분 좋은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였다. 택시를 기다리는 그 순간 내 주변 공기의 느낌이 너무 좋아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몇 분을 기다렸을까, 우리 앞에 멈춰 선 채도 낮은 주황색 택시와 인상 좋은 기사님. 우리는 기사님께 목적지를 말씀드리며 택시에 올라탔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뒤차가 빵빵- 했다. 안 그래도 번잡한 학교 앞에서 택시를 타서 그런 듯하다. 분명 누가 봐도 복잡한 학교 앞에서 택시를 잡은 우리 잘못이다. 뒤 운전사분께 죄송한 마음과 놀란 마음이 겹쳐져 후다닥 문을 닫았다. 기사님은 차를 출발시키며 연신 백미러를 흘깃하셨다. 그리고 따라온 말, 쯧, 이래서 여자는 운전하면 안 돼.”


잠깐 숨이 턱 막혔다. 왠지 모를 웃음도 났다. ‘요즘도 이런 말을 듣는구나.’ 싶었던 거다. 조금 변화한 듯 변화하지 않은 세상이 답답했다. 욱하는 마음을 간신히 밀어내니 머릿속에 여러 가지 대꾸할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곧이어 기사님께서 건네신 명함 한 장은 내 입을 다물게 했다. 명함에는 기사님 지인분의 성함이 새겨져 있었다. 사연은 즉, 기사님의 지인분이 회사에서 부당한 처우에 맞서 항의하다 좋지 않은 일을 당하셨다는 거다. 그리고 명함에는 그의 명예회복을 위한 서명운동 주소가 적혀있었다. 기사님께서는 이건 정의로운 일이니, 꼭 동참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다. 얼떨떨했다. 백미러를 흘깃하던 모습이 겹쳐진다.


목적지로 가는 그 길 위에 기사님은 우리 청년들의 안부를 물어보시고 여러 가지 좋은 얘기를 해주셨다. 청년의 복지와 국가의 방향, 그리고 정의와 평화. 하지만 이 이질적인 기분은 결국 가라앉지 않았다.




기사님은 너무나 쉽고 가볍게 차별을 입에 담았다. 그러면서 이 세상의 정의를 바라신다. 이 두 모습의 간격은 맞물리지 않을 것 같음에도 맞물려졌다. 분명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아들일 테다. 그런데 왜 그 누군가에 대한 배려는 없는 걸까. 나는 말하고 싶었다. 기사님이 외친 세상은 반쪽짜리 평화일 뿐이에요, 라고. 기사님이 뜨겁게 외친 그곳에는 포함되지 않은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자리는 그곳에 없다.


나의 이런 경험뿐만 아니라 주변 곳곳에서 이런 간격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얼마 전 친구와 나눈 얘기가 생각난다. 친구는 아빠와 같이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텔레비전 속에 나온 남자는 아내에게 폭언하고, 가족 구성원에게 화풀이하며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아내와 자식들은 물론, 그의 어머니조차 두려움에 떨며 눈치를 보기 바빴다. 친구의 아빠는 드라마 속의 남자를 가리키며 뭐 저런 놈이 다 있냐며 욕을 했다고 한다. 정작 가정에서 그 남자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아마 자신은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일을 듣고, 또 겪다 보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혹시 나도, 저렇게 이중적인 생각이나 모습을 가졌던 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는 새에 차별과 강요를 입에 담고,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하고, 누군가에게 상처 준 것은 아닌지. 내가 무서워졌다. 그 날부터는 어떤 말을 내뱉기까지 많은 생각을 거친 다음에 말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힘들게 나온 말을 또 더 조심스럽게 꺼내기로 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내가 무섭다.



몇 번의 경험 끝에 자신의 모습을 먼저 돌아보지 않고 상대방에게 어떤 조언을 하거나, ‘이건~ 이거다!’라고 확신하는 태도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떨 때는, 심하게 말하면 매우 오만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오만함을 구분하기란 어렵고, 자신에 대해 성찰할 시간을 가진다는 것 또한 드물다. 세상의 모든 개개인이 말 한마디에 누군가를 향한 폭력이 담겨 있을 수 있음을 견지하고, 자신이 확실히 옳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한 번 더 반문하고 점검한다면 어떨까. 인사를 건넬 때,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 숙이듯, 당연하고 일상적으로 한다면 어떨까. 서로에게 더욱 겸손하고 말 한마디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간단하다. 성찰하고 경계할 대상 1순위를 늘 ‘나’로 두기. 이렇게만 한다 하더라도, 지금을 넘어설 수 있다. 세상은 너로 인해 충분히 성장할 것이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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