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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Mar 14. 2018

미안해, 아무래도 나는 같이 못 갈 것 같아

매년 방학 시즌만 되면, 간사이 부근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스냅샷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라온다. 저들처럼 오사카성을 배경 삼아, 교토의 고풍스러운 거리를 배경 삼아 찍은 사진을 올리고 싶다고 마음먹은 출국 일주일 전의 늦은 오후에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연락이라기보다는 통보였다. 노트에 다음의 글을 끄적였다.


출국을 일주일 남겨놓고, 동행자가 일정을 취소했을 때 취해야 할 행동을 고르시오.

① 동행자를 따라 모든 일정을 취소한다.
② 지금이라도 패키지여행을 신청한다.
③ 혼자서라도 여행을 간다.
④ 동행자와 함께 여행 갈 수 있는 날의 항공편을 알아본다.


저 네 가지 선택지에서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③ 혼자서라도 여행을 간다.”였다. 나이 스물둘 먹도록 인천공항을 가본 적 없어 무서웠던 와중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파는 오코노미야키가 너무 먹고 싶어서 내린 결론이었다.


혼자 여행 가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함께 여행을 가서 같이 헤매고, 같이 찾고, 같이 먹는, 같이 하는 모든 행위들은 홀로가 된다. 모든 최악의 경우를 배제하고자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하고자 했다. 공항 가는 길부터 가타카나 문자표까지 오사카 여행에 필요할 것 같은 모든 것을 검색했다. 간사이공항역에서 숙소가 있는 에비스초역까지 가는 길이 포스팅된 블로그 글을 즐겨찾기 해 출국하기까지 5일 내내 읽으며 외웠다. 막상 간사이공항에 도착해서 전철표를 뽑고 숙소까지 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실감 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돌아다니는 것처럼 다녀서 숙소까지 도착해서 일본에 온 거 맞나 싶었다.


전철표



혼자서 여행 중입니다!


숙소는 자취방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장롱과 냉장고와 전신 거울과 욕조가 있으니 풀옵션 원룸이 아니라면 뭐라고 서술해야 할까. 일본에서 머문 일주일이 일본 자취생의 일주일 같았다. 두 명이 묵는 방을 혼자 사용했는데, 두 명이 지내기엔 적당히 아담하고 혼자 보내기엔 넓었다. 첫날엔 에어비엔비 괴담이나 괜히 일본 귀신들(링이라던가, 토시오라던가) 같은 게 생각나고 혼자라서 무서웠는데, 깊은 욕조에 몸을 푹 담그니 그런 생각이 없어졌다.


항상 M.T를 가도, 친구들과 숙소를 빌려 파자마 파티를 해도 항상 “먼저 씻어”라고 배려하는 나였는데, 누구에게 말할 일 없이 씻고 싶은 만큼 있고 싶은 만큼 욕조에 머물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혼자 여행 가면 좋은 첫 번째 이유 발견! 같이 하는 모든 행위들이 혼자가 되어, 무한 개인주의를 펼쳐도 아무도 이기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행선지로 가야 한다고 재촉하는 동행자가 없으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길에 멈춰 서서 찍고 싶은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도시마다 달랐던 오사카, 나라, 교토, 고베에서 맨홀 하나하나 위에 멈춰서 사진들을 왕창 찍었다.


또 서로 다른 곳에 가고 싶다고 갈등을 겪을 필요가 없고, 식사시간을 조금 미루고 더 많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도 있었다. 가이유칸 수족관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상어를 오랜 시간 동안 하염없이 바라보며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오사카성에서는 사진만 찍고 빨리 다음 행선지로 옮기기도 했다.


고베 맨홀


여행 계획은 오사카 주유패스로 이틀간의 오사카 여행, 간사이 미니패스를 통한 나라, 교토, 고베방문이었다. 가는 곳마다 한국인을 발견할 수 있는데, 대체적으로 롱 패딩을 입고 있으며, 셀카봉을 들거나 삼각대를 통해 사진을 찍고, 특히 네 명 이상 함께 다니는 남자들은 한국인이다. (두명이나 세명이 뭉치면 간혹 중국인의 수도 있는데 셋 이상은 무조건 한국인이었다.)


출국 전에 여행에 필요한 정보들을 다 조사했으니 수월했을 수도 있지만, 매표소를 못 찾거나, 역 앞에서 역을 찾거나, 전철표를 끊지 못하는 한국인 관광객을 매우 많이 봤다. 여러 명이 함께 가는 여행이니 준비단계에서 ‘누군가 알겠지’ 혹은 ‘누군가 나를 챙겨주겠지’하고 소홀히 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았다. 나 혼자 잘 준비해서 나만 잘 챙기면 된다는 것. 굳이 남들을 챙겨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여행의 장점이라면 장점일까.


본래의 필자의 성격이 틀린 맞춤법을 고쳐주고 싶고, 코트의 실밥을 떼주고 싶고, 남의 가방지퍼를 잠가주고 싶어 하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 남을 챙기지 않으면 본인이 괴로운 성격인데, 동행자가 없으니 인솔할 책임도 없고 굳이 챙겨줄 필요도 없으므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서 미리 알아봐 둔 루트를 통해 맛집을 가고, 예약을 하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일본 축제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낭만이 있다. 우연히 나와 같은 처지의 혼자 여행 온 사람을 만나서 어쩌면 좋은 인연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여행으로 만나서 연애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남자를 만나서 돌아올 땐 남자친구를 사귀어서 오라고 조언해주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고. 물론 어디까지나 낭만으로 끝났다. 여행 가서 남자를 사귀진 못했지만, 혼자 여행 간 덕분에 다른 인연을 맺기도 했다. 혼자 고독을 씹으며 거리를 걷고 다른 관람객도 구경하며 다니는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에 공허함과 외로움이 자리 잡았다. 여행의 일수가 지속될수록 행인에게 말 거는 일이 늘었다.


처음은 도톤보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코노미야키 집이었다. 오코노미야키 위에 짱구나 도라에몽 등 귀여운 캐릭터를 마요네즈로 그려주는 것으로 유명해 블로그나 여행책자에 올라오는 맛집이었다. 내 뒤에서 기다리던 여성분도 혼자라고 하시고 웨이팅 시간은 대략 40분 정도라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먹고 싶어서 합석을 청했다. 한국인이었고 (역시나 롱 패딩을 입고 있었다.) 오사카는 두 번째 방문이며 내일은 교토로 여행 간다고 했다. 기다리는 40분에 오코노미야키를 시키고 먹으면서도 내내 수다를 떨었다. 생각보다 오사카는 너무 서울과 같다는 이야기나, 한국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든가, 곧 귀국해야 하는데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 등을 나누며 가장 즐거웠던 식사를 마쳤다. 내 성격에 모르는 사람이랑 합류해서 밥 먹을 줄은 전혀 몰랐는데 여행 중에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서 그랬는지, 그동안 대화가 고팠었는지 너무나 즐겁고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식사 중 하나다.


오코노미야끼


교토에 간 날은 버스가 낯설어서 많이 헤맸었다. 은각사에 가는 버스가 맞는지 학생에게 물었다. 운 좋게 같은 버스를 타게 되어서 함께 이동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서 메신저 아이디를 교환했다. 그날 밤 숙소에 도착하자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장문의 메세지가 도착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제 딸이가 교토에서 예쁜 한국 언니를 만났다고.. 일본어도 잘 한다고 들었어요.
성함이 유라씨 입니까?
제 딸이가 좋은 분이 만났다고 기뻤어요.
일본에 다음에 오실 떄는 꼭 열락해 주세요. 딸아이는 한국어 잘하지 안지만 저는 조금… 한국말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중략)
많이 즐거움 여행 되세요~


번역기를 돌려 메세지를 보낸 게 아니라, 직접 한국어를 공부한 것이 티가 나는 서툰 맞춤법과 어색한 한국어에 감사했고, 영화 같은 일이 나에게 벌어짐에 감사했다. 인연이 이어져서 여행 마지막 날 밤 아이의 어머니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고, 아이의 어머니는 한국에 관심이 많고 한국을 좋아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 매년 방문할 뿐만 아니라 한국인 친구들도 있다고 소개하며, 수원에도 언젠간 꼭 방문하겠다며 웃으며 인사하시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에게 버스번호를 알려준 아이와도, 아이의 어머니와도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까지 계속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됐다. 혼자 여행을 했기 때문에 길을 묻는 것에서 끝날 수 있었던 인연이, 새로운 인연을 만든 기회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교토 버스




혼자 여행 다니면 눈치도 보이고, 외롭기도 하지 않아?


혼자 여행하면 주변 눈치가 보이지 않냐는 질문을 여럿 받았다. 우선, 내 첫 여행지가 유니버셜스튜디오였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에서 유원지를 혼자 가 본 적은 없지만, 외국이라는 환경적 조건과 내가 어마어마한 해리포터 덕후라는 것을 밝힌다. 유니버셜스튜디오는 싱글라이더라고 해서 혼자 놀이기구를 타는 고객이 일행이 있는 팀보다 더 빨리 입장해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싱글라이더시스템에 해당하는 놀이기구는 대여섯 개뿐이지만, 혼잡도 13(방문객 14999명 이하로 꽤 비어있는 수준)으로 대부분의 놀이기구 대기시간이 50분 안팎이었다. 더 많은 놀이기구를 타고 더 많은 기념품 가게를 가기 위해, 놀이기구 입장 줄마다 “싱글라이더”라는 말을 했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전신사진을 찍고 싶을 때에는 가족을, 셀카 찍는 커플에게 다가가 ‘내가 사진 찍어줄 테니 내 사진도 찍어줘’라는 의도로 가서 말을 걸고 손짓 발짓을 하면 꽤 괜찮은 사진을 찍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즐거운 여행하라는 덕담은 덤으로 들을 수 있다. 여행 첫날에 타지에서 혼자 놀이기구 타고 놀이공원을 돌아다니니 그다음 날부터의 본격적인 혼자 여행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됐다.


오히려 혼자 여행을 하면서 자신에게 많은 집중을 할 수 있었다. 발 닿는 대로 걷고, 눈에 담고 싶은 대로 눈에 담았으며,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여가의 개념으로 타지에서 시간을 보내며 즐기고 쉬다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뭘 좋아하고 내가 얼마만큼의 일본어를 할 수 있는지 나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는 여행이었다.




일본은 혼자 다니기에 굉장히 좋은 나라다. 애초에 ‘혼문화‘라고 하는 혼자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가를 즐기는 문화가 우리나라보다 더 빨리 성행했다. 1인만을 위한 공간도 많이 존재하며 혼자 무얼 한다고 눈치를 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관광지의 포토존에서 직원이 사진을 찍어주기 때문에 사진을 못 남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치안도 우리나라만큼이나 좋고, 경찰이 한국보다 더 많이 거리를 돌아다닌다. 물가 또한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가성비 측면에서는 일본이 더 우수하다. 비행시간도 1시간 30분남짓으로 편한 마음으로 쉽게 다녀오기 좋은 곳이다. 언어 또한 “감사합니다.”, “실례합니다.”와 같은 기본적인 일본어 회화에 몸짓, 손짓을 더하면 대부분 알아듣고 한자어도 우리나라와 유사한 측면이 많아 발음으로 예상이 가능하기도 하다. 관광지의 안내원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할 수 있으며 번역기는 생각보다 번역을 잘하기 때문에 언어에 대해 걱정 말고 무사히 다녀오기를 권한다.


혼자 여행을 가면 누군가와 함께 갔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도 보이고,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 다음 방학에는 혼자 여행길에 올라 나 자신을 더 알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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