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은 철학에 대해 학문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아닌, 글쓴이가 철학과를 경험하며 느낀 점을 중심으로 철학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내용을 담는다. 학문적으로 ‘철학이란 ~다.’에 대해 논의하기보다는 철학과 학생으로서 반년 정도 보낸 지금 ‘내가 느끼기에 철학이란 ~인 것 같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철학을 전공하는 나를 보는 주변의 시선은 다양하다.
‘왜 하필 어려운 학문을 골랐어?’, ‘철학과는 뭐 배워?’, ‘철학 그거 사는 데 별 도움 되는 것도 아니지 않아?’, ‘뭐 먹고 살려고 철학 했어?’
등의 질문들은 철학과를 가겠다고 주변에 말할 때부터 시작됐다, 물론 장난삼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늘 웃고 넘겼었다. 그런데 단순히 웃고 넘길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철학과 진학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생들도 막상 철학과가 무엇을 배우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철학과를 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철학이 정확히 뭔지, 철학과는 무엇을 배우는지는 대학에 와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그래서 내가 고등학생 때 갖고 있던 철학과에 대한 오해와 대학에 와서 깨달은 점들을 되돌아보려 한다. 철학과를 지망하는 학생이나, 철학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철학과를 소개할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오해1. 철학과는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과목을 더 어렵게 배울 뿐이다?
고등학생 때 윤리와 사상 과목을 좋아했다는 것은 내가 철학과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줬다. 고3 자기소개서를 쓸 때 대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전공을 정해야 하는데 나하고 맞지 않는 과목을 고르면 최소 4년을 괴로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자고 생각했다. 때마침 가장 좋아하던 고등학교 과목이 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였기에 그 과목들과 관련성이 큰 철학을 전공으로 결정했었다.
윤리와 사상은 처음 철학자들의 사상을 소개하는 과목이다. 철학과도 철학자들의 사상을 배우기 때문에 윤리와 사상을 더 어렵게 배우는 것이 철학과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물론 철학자들의 사상을 배운다. 철학자들의 저서들을 읽고 그의 사상을 정리하는 작업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 하지 않는다. 윤리와 사상 과목의 경우, 학교 시험이나 수능을 위해 철학자들이 주장한 대표적인 것들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지만, 철학과에서는 무조건적인 수용을 경계한다. 철학자의 사상을 배우지만 그들의 대표적인 주장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논리적 허점이나 오류에 대한 비판들을 더 많이 배운다.
그리고 철학자들의 입장만을 배우는 것이 철학과의 목적은 아니다. 철학 사상을 배우고, 철학자들이 자기 입장을 주장할 때 저지른 논리적 허점이나 오류에 어떤 것이 있는지 배우는 이유는 자신만의 사유를 할 발판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현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통찰하고 그에 대한 답을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철학과의 목적이라 생각한다.
오해2. 윤리와 사상 교과서는 철학자의 입장을 정확히 정리한 것이다?
처음 대학에 왔을 때 윤리와 사상을 열심히 공부했으니, 철학 수업도 쉽게 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나의 착각은 첫 수업 때부터 깨졌다. 고등학교 교과서의 철학자 정리는 실제 그것을 제시한 철학자의 입장과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과서는 데카르트를 이성적 통찰과 연역법을 중시했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를 찾기 위해 ‘방법적 회의’의 태도를 가졌으며, 인간은 생각하는 것으로서 존재함을 주장한 학자로 소개한다. 교과서에서 본 데카르트는 근대 기계적 세계관이 대두하며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차이점에 대해 답하고자 노력한 사람으로 비친다. 물론 데카르트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란 무엇인지에 답하려고 하긴 했지만, 그가 이런 작업을 한 목적은 따로 있다. 그의 저서 ⌜성찰⌟을 보면 그가 명석 판명한 절대적 진리를 확립하려는 목적은 무신론자에 반박하여 신 존재를 증명하고 영혼과 신체가 다름을 증명함으로써 영혼이 불멸함을 보이기 위함이다.
즉, 교과서는 한 철학자의 사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만 추려서 설명할 뿐이다. 그 사람이 그런 사상을 갖게 된 이유, 실제로 주장한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은 대학교에서부터다. 철학 사상이 등장한 전체 과정을 다루지 않고, 그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들만 정리한 교과서가 그 철학자의 사상을 온전히 설명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해3. 철학은 개인이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내가 생각하는 철학과는 과학이 답할 수 없는 영역을 탐구 대상으로 하여 그 영역에 대한 보편적 해석을 제시하고, 현실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답을 제시하는 능력을 키우는 곳이다. 그를 위해 과거 학자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답을 찾아갔는지 배우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논리적 오류들은 없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지금 배우는 것들이 벅차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 이해가 안 되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철학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과학이 제시하지 못하는 것을 제시할 수 있는 학문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인생 철학’, ‘기업 철학’ 등 어떤 개인 또는 단체의 신념이나 삶을 사는 방식을 가리킬 때 뒤에 ‘철학’을 붙여 말한다. 이를 보면 철학은 삶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교양과목이며,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철학의 목적이라는 생각이 제법 대중화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나 또한 철학자들의 사상, 그들의 말들에 위로를 받은 적도 있었기에, 철학은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학문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철학이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조언을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철학은 개인의 번민을 해결하기 위해 있는 학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배워온 철학자들의 사유에서 느끼기에, 철학은 우선 인간과 세계에 대해 가장 합리적인 설명을 내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세계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과학의 주 영역이기도 하다. 이는 과학과 철학이 고대부터 방법은 다르지만, 공통의 목적을 갖고 함께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그 일차적인 목적에 대해 자신만의 답을 바탕으로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삶이 옳은 것인가 등의 여러 질문에 답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과학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 합리적인 해석을 제공하며, 철학은 현실과 떨어진 것들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나는 철학이 현실과 떨어진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며, 과학이 답하지 못하는 문제들에 답을 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은 안락사와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답을 제시하거나, 정의, 평등의 기준에 대해 논의하는 등 현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탐구한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