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국어국문학과 3학년 재학생이다. 3년전, 그러니까 대학합격소식을 받았을 때 축하문자 보다도 내가 더 많이 받았던 말은
“마춤뻡 않지키면 외 않되?”
라는, 일부러 알고있는 맞춤법을 파괴하고 고의로 적은, 국문학도 위염도지게 하는 문장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본디 오지랖이 넓은 성격이다. 틀린 맞춤법을 보면 마치 만원지하철의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책가방이 열려있는 모습이 눈에 밟혀서 나도 모르게 잠그고 싶은 기분이랄까, 버스기다리는 줄에서 앞사람 어깨에 붙은 실밥을 떼주고 싶은 기분이랄까. 물론 나도 완벽한 위인이 아닌지라 헷갈리거나 국립국어원의 표준어규정에서는 틀린 어휘를 구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예전에, 사실은 한참 전에 야민정음이라고 새로운 조합법이 나왔다. DC인사이드 야구갤러리에서 시작된 드립으로(사실 정확한 기원이 어디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야구갤러리에서 주로 이러한 표기를 즐겨쓰기에 야구갤러리+훈민정음이 합쳐진 단어로, 야민정음이라 칭한다), 모양이 비슷한 글자들끼리 서로 바꿔서 쓰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대 ↔ 머 멍멍이↔댕댕이, 대머리↔머대리
귀 ↔ 커 귀엽다↔커엽다
유 ↔ 윾 유재석↔윾재석
광 ↔ 팡 광명↔팡명
명 ↔ 띵 명곡↔띵곡, 명작↔띵작
헐.
제일 처음 내가 야민정음을 알았을 때의 반응은 정말 "헐." 이었다. 이토록 신랄하게 단어를 쓸 수 있다니. 처음으로 댕댕이와 띵곡을 만났을 때, 강아지가 주인한테 달려오는 모습이 댕댕거리는 것 같아서 댕댕이라고 애칭하는 줄 알았고, 머리가 띵~ 할 정도로 마음을 울리는 노래라서 띵곡이고, 머리을 띵~ 할 정도로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라 띵곡이라 줄여쓰는 줄 알았다. 사실은 단어내에서의 글자의 획 하나를 자음으로 보겠다 모음으로 보겠다에 따라 기표가 달라지는 것 뿐이었다.
태초의 훈민정음의 자음과 모음은 표음문자(말소리를 그대로 기호로 나타낸 문자)였다. 한글맞춤법 총칙 1항도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로 소리대로 적는 것을 근본원칙으로 어법에 맞도록 적는 것을 조건으로 붙인다. 그렇다고 소리대로 적으라는 근본원칙을 어겼냐고 묻는다면. 아니. “댕댕이“를 [댕댕이]로 읽지 누가 [멍멍이]라 읽겠는가. [댕]이라 읽는 그대로 ‘댕‘이라 쓴다. 다만 ‘댕댕이’라는 기표를 보고 ‘멍멍이‘라는 기의를 떠올릴 뿐이다. 강아지의 개념을 ‘멍멍이’라고 쓸 수도 있고 ‘댕댕이’라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단지 획 하나를 모음의 획으로 쓸 것이냐 자음의 획으로 붙일 것이냐가 표기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워드나, 한글 문서 등 전자기기로 문서작업을 할 때 특정 글씨체에서, 혹은 글씨크기가 작은 경우 획 하나가 헷갈려 잘못읽기도 한다.
국민이 존경하는 위인을 뽑을 때 빠지지 않는다는 그 분, 가장 위대한 왕이었다고 감히 부르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의도를 보자.
훈민정음 어제 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아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나라의 글을 만들테니 글자로 뜻을 펴고, 글자를 익혀 날마다 쓰면서 편안하게 하는 것이 세종대왕의 창제의도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 분이 과학적으로 소리를 글자에 담은 자음과 모음을 쓰지 않고 표준어규정에 맞지 않는 철자를 쓰고, 보기에 비슷한 글자끼리 바꾸어썼다고 분노하실까? 오히려 한글을 갖고 획 하나로 글자를 갖고노는 백성들의 유흥이자 놀이로 보지 않으실까. 편히 쓰다 못해 이젠 유흥의 문화로 소비까지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아래의 사진은 훈민정음 어제 서문이다.
의무교육 시절 한 번쯤은 만나봤을 그 친구다. 우리가 중세국어의 사용이 어땠는지 확인할 수 있는 문헌으로 훈민정음 언해, 용비어천가, 월인석보 등이 있는데 그 중 훈민정음 어제 서문만 보더라도 현대국어에서 쓰지않는 자음과 모음들을 볼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안쓰는 발음이 생겼고 그로인해 소실된 자음도 존재하고, 그 모습이 다른 표기가 되기도 했다. 언어란 사용자들의 사용법을 따르게 되었다. 사용자가 사용하지 않으면 언어는 사라지고, 사용자가 필요로 한다면 새로운 언어가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현재 ‘ㅔ‘와 ‘ㅐ’를 구분하여 발음하지 못하고 단모음 ‘ㅚ‘를 이중모음 ‘ㅚ’로 발음하는 사람이 더 많다. 곧 ‘ㅔ‘와 ‘ㅐ’가 하나의 모음으로 합쳐지고 단모음의 ‘ㅚ‘발음은 앞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수적이던 국립국어원도 국어사용자들의 사용실태를 파악하여 꾸준하게 새로운 맞춤법을 등재하고, 인정하고 있다.
야민정음 또한 같다고 생각한다. 표기원칙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고 공유하고 이 표기법이 현재의 맞춤법표기원칙보다 사용자가 늘고 힘이 커진다면, 지금의 표기원칙을 끌어내고 당당하게 새로운 표기원칙으로 자리 잡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 못하고 지지를 잃어 사용자가 없어진다면 단지 한순간 스쳐지나간 유행어로 끝날 것이다. 한글파괴의 시선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잠깐 우리끼리 즐기다가 작별할 추억이 될 수도 있는 언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맞춤법 안 지킨다고 그동안 쌓아올린 언어체계가 우수수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범죄자로 몰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언어의 기능이 의사소통임을 감안해 상호정보교환을 해치지 않을 선에서 언어를 비틀고 뒤집고 엎을 때 재밌는 언어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