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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Mar 31. 2018

대입 논술의 성격


 학교에 다니지 않은 관계로 시간이 남아돌았다.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면 시간이 잘 간다. 영화관, 도서관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 관련 서적, 잡지를 뒤적거렸다. 인터넷에는 영화에 대한 글이 많다. 보고 있으니 나도 쓰고 싶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영화 평론가를 하려고 했다. 


 그전까지 글을 제대로 써본 일이 없다. 학교에서는 작문을 시키지 않는다. 어른들은 책 읽는 것도 권장하지 않는다. 내가 책 읽는다고 하면 모친은 신경질을 냈다. 중요한 건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이다. 작문의 기초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글에 대한 막연한 자신감은 있었다. 독서를 좋아하고 글쓰기로 입상한 적도 있으니까. 그게 착각이란 걸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막상 쓰려고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키보드에 손을 올려놨는데 누를 수 없었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심각한 얼굴로 앉아서 머리를 굴리는데 ‘재미있다, 재미없다’ 정도가 나왔다. 작문은 도구일 뿐이고 핵심은 표현, 즉 내용이라는 걸 몰랐다. 사유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고 영화 이론을 모르니 문장이 안 나올 수밖에 없다.



 그때는 뭔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취한 방법이 남의 글을 베끼는 것이었다. 질 낮은 모조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상은 다양했다. 세상에는 글 잘 쓰는 사람이 많다. 내 스타일이 없으니 남의 스타일을 흉내 내야 했다. 문체가 다채로워서 한 사람이 쓴 글이라곤 믿을 수 없었다. 당시 내가 쓴 글은, 글이라고 주장하기엔 염치가 없는 수준이었다. 내가 가진 유일한 강점은 뻔뻔함이었다. 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꿋꿋하게 썼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 영화를 소재로 글을 쓰다가 이듬해부터는 주제를 가리지 않고 썼다.


 2년이 지나 19살이 됐다. 고3이라고 부르는 나이다. 우연히 논술 전형이 있다는 걸 알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근처 논술학원에 등록했다. 이번에도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글을 계속 써왔으니까. 그게 착각이란 걸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 멋대로 쓰는 글과 논술 시험은 전혀 달랐다. 정해진 형식이 있고 요구하는 정답이 있다. 이미 훈련된 방식과 굳어진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적응에 애를 먹었다. 가장 큰 문제는 고집이었다. 선생님의 말을 안 들었다.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썼다.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답답해했다. 아무리 일러줘도 제멋대로 쓴 걸 가져온다. 지적하면 변명을 늘어놓는다. 웃기는 학생이 나타난 것이다.


 쌓은 집을 버리고 새로 집을 지어야 했다. 이중 수고를 했다. 평소 글을 써본 경험이 있다고 논술 시험에서 유리한 건 아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을 위한 논술 시험은 학생의 문장력, 독창성을 심사하는 시험이 아니다. 학교가 요구하는 것을 정확히 수행해야 하는 시험이다. 나는 상대에게 내 주관을 요란하게 과시하는 버릇이 있었고, 그해 모든 시험에서 떨어졌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붙은 곳이 없어서 강제 재수를 하게 됐다.


 일단 학원을 옮겼다. 잘난 척하다가 다 떨어졌다는 사실을 차마 알릴 수 없었다. 학원을 옮겼지만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불필요한 주장을 하고 윽박지르고 어려운 어휘, 개념을 남발한다고 혼났다. 돌이켜보면 아집에 가까웠다. 그때는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지문을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내 언어로 표현하는 게 논술의 본질 아닌가. 완고한 고집 때문에 자의식이 너무나 도드라졌다. 선생님과 치열하게 대치했다. 대략 어떤 상황이었냐 하면 “어려워서 못 썼어요”라고 하면 선생님은 “잘 썼구나”라며 반기는 것이었다. 


 두 번째에도 연달아 떨어졌다. 강제 삼수를 하는 줄 알았다. 마지막 시험이 남았지만 의욕이 없었다. 시험에 대한 불신이 쌓였다. 이럴 수는 없는 거다. 검정고시 출신에게 불이익을 주는 건 아닐까? 근거 없는 음모론(陰謀論)에 사로잡혔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그렇게 된다. 아무 자료도 없이 펜과 수험표만 들고 갔다. 준비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이어폰 꼽고 돌아다녔다. 답만 찾아서 적어내고 나왔다. 그 시험 하나 붙었다.


 논술은 기본적으로 요행, 운이 좌우하는 시험이다. 시험 지문이 지저분하게 나왔는데 대처를 못 하면 망하는 것이다. 1년 내내 준비를 잘했어도 한 문제 삐끗하면 끝이다. 채점과정에서도 변수가 작용한다. 채점자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이다. 각자 안목이 다르고 채점하다 보면 피로도 느낀다. 하필 눈이 침침할 때 내 답안이 걸릴 수도 있는 거다. 불완전한 사람에게 당락이 걸려있다.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논술을 준비한다고 하니 평소 알던 수학학원 선생님은 “논술로 간 애 한 명도 못 봤다”라며 혀를 찼다. 한 귀로 듣고 흘렸는데 경쟁률을 감안하면 정말 그럴 법하다(내 경우 36:1이었다). 논술 시험에 ‘올인’하는 건 그야말로 대책 없는 일이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인생 운을 전부 썼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논술 시험에 관해 조언할 것은 별로 없다. 입시 정보 잘 모른다. 논술 전형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19살 때 우연히 알았다. 입시는 내 분야가 아니다. 구체적인 지원 전략은 대학 입시에 익숙한 사람들이 조언할 일이다. 대신 경험으로 얻은 소득은 알려줄 수 있다. 


 운이 지배하는 시험에서 합격 확률을 다소나마 높이는 방법이 있다면, 추상적인 얘기지만 자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군더더기 없이 출제자가 요구하는 답안을 만들 수 있다. 마음과 머리를 비우고 음악 들으면서 캠퍼스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시험 당일에 종이뭉치 잔뜩 챙겨서 보는 건 큰 의미 없다. 그 문제, 그 지문 안 나온다. 그리고 나처럼 성격 이상한 사람은 합리성이 상대적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자기 합리성은 주관이지 법칙이 아니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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