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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Apr 02. 2018

Wee, 정말 우리를 도와줄 수 있나요?

며칠 전, 기숙사에만 있다가 집에 돌아온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썼던 일기장을 읽었다. 나는 타인들에게 내 속마음을 밝히는 것이 무서워서 혼자서만 고민을 해결하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해소하지 못한 채 꽉 차 버린 내 갑갑한 마음은 내게 커다란 장애물이자 짐이 되어버렸다. 그런 내게 일기장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나오는 대나무숲처럼, 내 고민을 털어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다양한 고민을 한다. 크고 작은 고민이 수없이 살갗을 스치고, 불안과 걱정이라는 흉터를 남긴다. 나처럼 혼자서 흉터를 지워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혼자 하기엔 너무 벅차고 힘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단순하게는 진로, 더 나아가 인생의 방향과 길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고민을 하게 된다. 복잡한 이러한 상황에 부닥친 청소년들이, ‘고민 상담’하면 대다수가 생각해내는 장소가 있다. 바로 ‘Wee 클래스’란 이름의 교내 상담실이다. Wee 클래스란 2008년에 위기 학생 예방 및 종합적 지원 체계를 갖춘 학교 안전망 구축사업인 Wee 프로젝트 시스템의 일환으로, Wee란 We, Education, Emotion 이 3가지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2016년 기준 고등학교 Wee 클래스 구축률이 79.6%를 달성하면서 점점 영역을 넓혀가고 있으며, 학교-교육청-지역사회의 연계를 통해 건강한 학교생활 지원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겪은 Wee 클래스는 학생들의 고민을 털기엔 미흡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고등학교 3년간 또래상담 동아리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본 Wee클래스는, 여러모로 내게 ‘교내 청소년 상담’이라는 주제에 의문을 품게 했다.


내가 그러한 의문을 가지는 시작점은 첫 또래 상담자 교육시간이었다. “학생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같은 환경을 함께 겪어나가는 학생이다”, “친구와의 상담 뒤에 이걸 작성하여 제출하면 봉사시간도 추가로 받을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바란다”, 라며 선생님께선 ‘또래상담 보고서’라는 양식이 적힌 종이를 나눠 주셨다. 이 종이를 챙기면서, 꼭 친구들의 고민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그러한 모습을 담아낼 수 있는 보고서를 제출할 정도의 어엿한 또래상담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며 교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내가 들고 온 보고서를 본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야, 이렇게 내 고민을 글로 남겨놓으면 어느 누가 고민을 털어놓겠냐? 보통 친구 간 고민상담은 해결보다는 서로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면서 털어내는 것이 목적이지 않아? 친구한테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은 내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고,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말하는 건데, 그 내용을 보고서로 적어 선생님께 제출하면 직접 이야기를 듣지 않은 선생님도 그 내용을 본다는 거잖아. 내가 네게 상담을 요청했을 때, 네가 그 종이를 쓰겠다고 하면 난 고민을 안 털어놓을 것 같아.”


내담자(상담을 받는 사람)의 실명과 고민 내용을 요구하는 보고서 때문에 또래상담을 요청하지 않을 거라는 친구의 말은 내게 충격을 안겼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난 결국 졸업할 때까지 그 보고서는 한 장도 작성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상담 선생님이 계약직인 탓에 1년마다 바뀌었다. 그렇게 1년마다 다른 선생님들로 교체되면서 또래상담 동아리의 활동 방향도 시시때때로 바뀌었고, 선생님들의 상담 방식도 차이가 극명하여 학기를 넘나드는 장기적인 상담을 받기 힘든 구조였다. 그리고 상담일지의 경우 종이를 분실하거나 책상 위에 무방비하게 놔두시는 등 관리에 소홀한 모습을 보였기도 할 뿐만 아니라,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때의 상담 선생님은 자신이 상담을 맡았던 내용을 내게 말하기도 했다. 또한 나의 친구는 상담 선생님께만 말씀드렸는데도, 자신도 모르는 새 담임선생님과 부모님도 다 알고 있는 상황을 보고 교내 상담실을 더는 믿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인터넷에서도 상담 선생님이 비밀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Wee 클래스 상담보다는 차라리 학교 밖 전문기관을 추천하는 경우도 보이는 등 내 주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되게 씁쓸했다. 분명 부모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어서 상담 선생님께 갔을 것이다. 자신의 비밀을 들은 선생님이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있는, Wee 클래스에서 강조하던 ‘비밀보장의 상담’이 눈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 어느 상황에서든 해당하는 말이다. 물론 위에서 저렇게 우리 학교 상담실의 어두운 면들만 이야기했지만, 다른 친구들의 고민 해결의 현장들도 여럿 봐왔다. 하지만 ‘고등학생의 상담 실태와 상담요구분석에 관한 연구(민들레, 2009)’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81%가 상담을 하고 싶다고 느낀 경우가 있었다고 답했으나, 고민 해결 방법으로 전문 상담교사와의 상담을 택한 비율은 0.7%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고민이 있을 때 상담을 받아보지 않은 이유로 ‘상담을 해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라고 30.4%가 응답하였다. 이런데도 내가 겪은 일들이 과연 나만의 일일까?




문제를 해결하거나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서로 의논함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말하는 ‘상담’이다.


혼자선 해결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을 앓지만, 다양한 이유로 혼자서 애쓰는 청소년들을 위해 정부와 사회는 ‘상담’이라는 방법으로 접근하여 Wee 프로젝트를 조직해 많은 변화를 끌어냈다. 하지만 학교마다 그리고 근무하는 교사의 방식에 따라 운영 방식에 큰 차이가 있고, 일부 선생님의 잘못된 판단으로 내담자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친구들이랑 상담으로 시작한 이야기들은 해결책을 내놓기보단 친구의 편에서 지지해주고, 다른 화제들을 이야기하다 금방 잊는 경우가 십중팔구였다. 해결방법을 찾지는 못해도, 속에 뭉친 응어리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해결 방식이 되는, 우리만의 상담 방식이다.


수험생활의 끝없는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도착지를 가르쳐주는 표지판이 아닌, 같이 걸어가 줄 수 있는 친구이다. 조건 없는 해결과 잘잘못이 아닌, 이야기를 들어주는 ‘내 편이 되어주는 것’에 우리는 더 갈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학생들에게 필요한 상담은 ‘상담’이 아니라, ‘경청’이 아닐까.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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