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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Apr 02. 2018

때론 무시도 답이다.

인간관계에서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 요령.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요?

 

대학교 입학 전, 귀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많이 들었던 말이 한 가지 있다. 


‘대학교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아.’


 대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란 무슨 뜻인지, 고3의 필자로선 일말의 추측도 예측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3학년이 된 지금, 이제 그 뜻을 알 것 같기도 하다. 


 대학에 있음 직한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 한 가지 예를 들고자 한다. 나는 대표적 소수학과(학과 인원이 비교적 적은 학과. 대략 한 학년이 20명~30명 내 외면 소수학과로 볼 수 있다.)인 A 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생애 첫 대학 행사인 입학식에서 나는 그녀와 만나게 됐다. 그녀는 나와 동기지만 2살이 더 많았고 1학년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소수학과였기에 함께 수업을 들으며 자연스레 친해지게 됐다. 그녀와 나, 그리고 동기들은 다 같이 어울려 다니며 새내기 대학 생활을 맘껏 즐겼다. 그녀에겐 눈여겨볼 특징이 있다. 모든 이야기를 남자로 시작해 남자로 끝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나와 달리 술을 무척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 술자리를 가지면 몇 시간이고 한 번도 보지 못한 남자에 대한 하소연을 하염없이 들어줘야 했다. 그녀는 다른 화젯거리를 용납하지 않으며 본인 중심으로 모든 술자리가 돌아가길 바랐다. 결국 그녀를 대하기 어려워진 나는 내심 선을 긋기 시작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전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몇몇 친구들은 그녀의 일화를 더 듣고자 그녀를 재촉하기도 한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나’에게 그녀는 전혀 맞지 않는 성격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엔 ‘나’도 당연히 진심으로 그녀의 말에 공감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일방적인 수다에 지쳐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 그녀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못한 이유는 여럿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선 ‘나’를 제외하고 다른 친구들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더군다나 학과 인원이 적기 때문에 괜히 분란을 일으켜 어색한 사이가 되기 싫었을 수도 있다. 혹은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이 진심을 표현하기에 곤욕스럽게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의 상황은 참으로 난감해 보인다. 그녀와 잘 어울리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연을 끊어 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어쩔 수 없이 그녀와 함께 지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 ‘나’는 어떤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독자가 ‘나’와 상황과 비슷한 상황에 닥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때론 무시도 답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속담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속담이 바로 이렇다 할 방법을 찾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필자가 내놓은 방법이다. 쉽게 말해, 피할 수 없다면 무시할 수 있는 생활 밀착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사람들은 저마다의 개성 있는 특징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수다쟁이처럼 말이 많은 사람들도 있으며 고요함을 즐기는 조용한 사람들도 있고 아이러니하게 그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존재하기도 한다. 


 모두가 알듯 고등학교 역시 고유한 성격을 가진 많은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대부분 주변 지역에 사는, 소위 동네 친구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같은 문화를 공유해왔으며 동일한 말투를 쓰며 비슷한 범주의 정보를 상호 교환해 왔기에 어느 정도 공동성을 띄고 있다. 하지만 대학에선 모든 측면에서 그 범위가 격상된다. 우선 대학은 여러 개의 학과로 나눠져 있으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타 지역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 온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 학생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대학이라는 환경에서는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찾기란 더 어렵다. 



 결국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성향의 사람들을 대학에서 만나 팀플(개인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닌 두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하고 수업을 듣는 등의 일상적인 교류를 해야만 한다. 물론 어떠한 그릇에 담아도 모양이 변하는 물처럼 아무 문제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는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고 인간관계에서 큰 고민 없이 생활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인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수많은 인간관계를 이루며 지낸 다는 것은 십중팔구 타인과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그 속에서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에 의한 스트레스를 덜 받을 나만의 방법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필자가 말한 인간관계에서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나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타인’의 ‘영양가 없는 말’에 심적 동요를 최대한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타인’이란 ‘나와 전혀 성격이 맞지 않는’ 혹은 ‘감정적 트러블이 생길 수밖에 없는’ 사람이며 해당 방법을 실전에서 쓰기 위해서는 우선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인지하고 본인과 맞지 않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필자의 친구 중 한 명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무조건 본인에게서 찾으려 한다.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를 극치로 몰고 갈 위험이 있다. 왜 그러한 문제가 발생했느냐에 대한 사고 없이 단편적으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려 드는 것은 더 큰 화를 부르기 십상이다. 이는 내 탓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며 남 탓을 하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나와 그 사람 간의 차이와 다름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보다 편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를 인정한 후에 고려해야 할 점은 굳이 나(타인)를 타인(나)에게 맞출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앞서 말한 필자의 친구처럼 문제의 원인이 본인에게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면 막연히 자신을 타인에게 맞추려 시도한다. 물론 잘못을 저지르고 뻔뻔하게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매우 이기적이고 파렴치한 행동인 것이 분명하다. 다만 타인을 나에게 맞춰 바꾸려 하고 타인을 위해 내가 변화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본인과 타인의 성격, 성향을 인정하고 나에게 감정적 피해를 줄 말들을 무시하면 된다. 


 그러나 타인의 말을 흘려듣는다는 것에는 큰 어려움과 위험이 따르기도 한다. 그럴 리 없겠지만 타인이 나와 맞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말들을 모조리 흘려듣거나 겉으로 이를 보이는 것은 꽤 곤란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스트레스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함이며 ‘영양가 없는 말’만을 걸러야 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본인의 감정 낭비를 막기 위해 또 다른 피해를 야기할 순 없기 때문이다. 또한 타인이 누구이던지 인격적 무시는 마땅치 않으며 필히 상황과 분위기에 따른 유연성이 있어야 함을 유념해야 한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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