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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Apr 03. 2018

아는 건 많은데 시험은 못 보는 나, 정말 멍청한 걸까

우리나라 학생 평가 방식과 산업구조에 대한 단상

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어떤 과목에 대해 잘 알아서 다른 친구들의 질문을 막힘없이 잘 받아주지만, 정작 자신은 그 과목 시험은 잘 못 보는 친구들. 개념적인 측면에서는 교과서에 없는 상위 개념까지 섭렵한 그들이지만 정작 시험 성적은 그들의 실력을 반영하지 못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 평가 방식을 꼽고 싶다.




창의력 말려 죽이는 암기와 계산 위주 평가방식


그들이 좋은 성적을 못 받는 이유는 시험이 단시간에 많은 암기 및 계산 문제를 빠르게 풀어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시험문제가 사색과 추론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많은 내용을 달달 외워내는 능력과 빠른 계산 능력만 요구한다. 과학탐구 과목의 경우에는 수학 과목이 아닌데도 수학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상위권 학생들도 하나같이 수학 등수가 높은 학생들이다. 과학'탐구' 과목인데 '탐구'가 결여되어 있다. 과학은 철학에서 파생되어 나온 탐구를 하고 추론을 하는 학문인데, 우리나라 교육에서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어떤 철학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방대한 지식을 갖고도 시험을 못 보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평가 방식은 결국 학생들의 창의력을 말려 죽이는 우리나라 교육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수능 얘기가 나오니 다음 기사를 보고 계속 얘기해보자.


일부만 발췌했지만 기사 전문이 좋은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 링크를 남긴다. http://news.donga.com/Main/3/all/20170612/84815096/1



공식을 잘 이해했고 잘 적용하는지를 평가하는 과학 과목


외국의 유수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들에게 수능 문제를 풀게 했는데, 단 한 명도 1등급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유튜브에도 미국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명문대 학생들도 우리나라 수능 문제를 어려워하는 내용의 영상들이 많다. 외국 명문대 학생들이 우리나라 명문대 학생들보다 수학(修學) 능력이 부족한 것일까? ‘국뽕’, ‘학교뽕’에 취한 ‘훌리건’이 아니라면 아무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연구 실적들과 영향력 등의 요소들도 아니라고 말해준다. 기사에서 학생들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와 외국의 학생평가방식은 포인트가 다르다. 우리나라 과학탐구 과목들은 암기와 계산이 문제 출제의 기본이다. 쉬운 문제는 단순 개념 문제이고, 어려운 응용문제는 대부분 발상의 전환을 통해 달달 외운 공식들을 응용해서 풀어내는 계산 문제다. 고득점의 관건이 학문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아니라 공식을 빨리 적용해서 계산을 해내는 것인 셈이다. 그래서 시험을 잘 봐도 정작 남들에게 설명은 잘 못 하는 학생들이 많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연구 실적은 그다지 우수하지 못한 것의 원인을 이런 평가 방식과 이것에 맞춰진 교육 방식에서 찾는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공과대학에 비해 자연과학대학(이과대학; 수학,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같은 순수학문을 다루는 학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에도 일조할 것이다. 계산 위주의 시험이 출제하고 채점하기 편하다는 장점 아닌 장점 외의 장점이 무엇이 있는가 싶다. 옛날과 달리 웬만한 계산 문제들은 ‘Wolfram Alpha’같은 사이트에 입력만 하면 다 풀어주는 세상인데, 아직도 시험에 계산기를 불허하는 등 교육은 제자리다.



수학과 과학만의 얘기가 아니다


영어 과목도 실용성 없는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튜브에 ‘외국인 수능 영어’라 검색하면 많은 영상이 나오는데,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난감을 표하며 독해조차 힘들어한다. 심지어 개중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언어학 전공자도 있다. ‘비정상회담’과 ‘문제적 남자’로 유명해진 타일러 씨는 수능 영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상에서 타일러 씨는 수능 영어에 상황에 맞지 않아 어감이 너무 다른 유의어들이 부자연스럽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교육부에서 학생들이 어렵게 느끼게 하도록 사용한 방법이 학생들에게 부자연스러운 언어 사용을 가르치고 있는 꼴이다. 위 영상에 달린 한 댓글이 많은 여운을 남긴다.


국어 과목도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최승호 시인의 <아마존 수족관> 작품 관련하여 출제된 수능 국어 문제 두 문제를 원작자는 모두 오답을 골랐다고 한다. 문학작품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가장 많이 발휘하게 하는 것 중 하나인데, 우리나라 교육은 오히려 그 상상력을 테두리 안에 가두고 있는 꼴이다.



교육뿐만 아니라 채용도 똑같다


이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평가방식은 학교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기업들의 적성 검사와 모든 국가고시 급 시험의 1차 시험은 모두 그냥 대놓고 IQ 테스트성 문항들을 출제한다. 예컨대 행정 업무를 보는데 도형을 어떻게 돌려서 어떤 모양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물어보는 공간지각능력 평가 문항이 왜 필요하다는 말인가? 채용 인원보다 지원 인원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거름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에는 공감하기 힘들다.




산업 지향 모델인 ‘패스트 팔로어’와의 연관성


이런 교육 방식은 우리나라 산업 구조와도 닮아있다. 우리가 흔히 응용문제라고 푸는 것은 창의력 발휘가 아니라 양산형 문제들을 빠르게 풀어내는 정형화된 능력을 기르게 해준다. 이것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방향이 아닌, 이미 있는 것들의 성능을 더 향상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진 대한민국 산업 구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좀 있어 보이는 말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퍼스트 무버’가 아닌 ‘패스트 팔로어’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창의력이 부족하니 남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까지 손가락만 빨면서 기다리다가 거기에 숟가락만 얹는 것이다. 모 대기업의 연구원들은 우스갯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한다.


“잡스 형님이 오래 사셔서 혁신을 더 많이 보여주고 갔어야 했는데”


교육도, 교육기관의 평가도 거부한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 한 명의 죽음이 IT산업 전체에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해진 문제를 제한시간 안에 촉박하게 풀어내야 했던 우리나라 학생들은 제한 시간 안에 촉박하게 목표치를 달성해내야 하는 우리나라식 연구에 최적화된 인재라는 생각조차 든다. ‘패스트 팔로우’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며 우리나라 산업계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해냈지만, ‘팔로우’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뒤따라갈 때만 유효한 말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미 많은 분야에서 정점에 서 있기 때문에, 이제는 ‘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량 능력보다는 창의력이 필요할 것이며,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당장 교육부터가 변화해야 할 것이다.



단지 맞지 않는 옷일 뿐이다


물론 암기 능력, 계산 능력 등이 개인의 업무 수행 능력과 연관이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만 넘는다면 너무 자책하고 자학할 필요 없다. 스스로 많은 것을 알아보며 공부를 즐겁게 하는 것은 아무도 안 알아주는 능력이다. 하지만 공부를 억지로 하면서 잘하는 경우보다는 공부가 재밌고 유익하다. 대학에 진학하면 느끼겠지만, 어차피 학문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호흡이 제일 중요한 일이라 흥미가 제일 중요하다. 대학 학업 능력에서는 머리보다는 노력꾸준함이 더 중요하다. 직장에서도 개인의 능력이 제일 중요하지, 다른 것들은 부수적인 요인이다. 세간에서 지겹도록 떠들어대는 제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는 ‘혁신’과 ‘창의’이다. 이것들은 아는 만큼 넓게 보이며, 그 이상의 많은 사고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그대들의 세상이다! 에디슨은 초등학교 시절 퇴학을 당했고, 아인슈타인은 고등학교를 자퇴했으며,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자퇴했다. 교육기관의 평가가 전부가 아니니, 부디 본인의 색깔을 잃어버리지 말고 이 사회를 이끌어나갈 창의 인재가 되어주시길.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남의 인생을 사느라 삶을 상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낸 결과에 얽매어 사는 도그마에 갇혀 있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의견이 여러분 내부의 목소리를 잠식하도록 놔두지 마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슴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가슴과 직관은 여러분이 진실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모든 것은 부차적입니다.”

- 스티브 잡스,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 축하 연설 中 -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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