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의 시선에 눈치 보는 또 다른 '나'에게
고등학교 2학년 때 진로 고민 탓에 상담을 받으러 학년 교무실에 간 적이 있다. 가고 싶은 학과,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담임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의 부재로 다른 반 선생님과 이야기를 잠시 나눴는데, 다른 일을 생각해볼 순 없냐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고선, 한동안 ‘내 꿈이 뭐가 어때서?’라는 생각으로 고민했었다. 나중에 선생님께선 가려는 대학교의 명성도 좋은 편이 아닌 데다, 전공을 살려 취업하더라도 일이 힘들고 대우도 좋지 않기에 걱정하는 의미로 말씀하신 거라며 웃으셨지만, 내겐 그 날의 말씀은 씁쓸한 기억으로 남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도 그랬다. 담임선생님과의 수시상담 시간이었다. 수능을 좀 망치더라도 원하는 학과엔 충분히 갈 수 있으니 수시 원서를 넣지 않겠다는 나의 말을 듣고선, 담임선생님께선 내가 원하는 곳보다는 명성이 더 높은 대학에 원서를 쓰는 것을 권하셨다. 정시만 믿기에는 위험부담이 크고, 더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는데 기회를 마다하냐며 설득하시는 선생님을 보고, 2학년 때가 생각나면서 기시감을 느꼈다.
비단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이러한 나를 보고 친구들도 너무 무모하다고 이야기했다. 수시 원서 0개 접수, 후에 정시 원서도 3번의 접수 기회 중 2곳에만 넣었으며, 그마저도 성적에 비교해선 하향지원으로 쓰는 나는 어느새 학교에서 신기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주관이 확고한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도 않는 단 하나의 대학과 전공만을 노리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나는 그저 원하는 곳이 있음에도 다른 전형, 다른 학교에 시간과 돈을 쓰는 건 아깝다고 생각해서 그런 결정들을 내렸지만, 타인들의 반응은 달랐다.
여태껏 청소년들에게 ‘꿈을 가져라’라고 외쳐왔으면서, 정작 꿈을 가지면 타인들은 그에 대해 자신의 기준을 대며 평가한다. 특히 좀 더 강도가 높거나, 힘들거나, 혹은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직업들을 자원한다는 대답을 듣는 경우,
"요즘 시대에 그런 일은 돈도 못 벌고 힘들어."
"대학 이름 무시 못한다니까? 우선 좋은 대학에 가서 꿈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거 다 너 걱정해서/너 잘되라고 하는 이야기야"
라고 조언이라는 허물을 덮어 씌움으로써, 힘든 일보단 쉽고 안정적인, 길고 얇은 직업을 가지라며 설득을 시도한다.
왜 꿈을 꾸라면서 정작 가진 꿈을 멋대로 판단하는가?
평생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선 결과가 확실하지 않은 꿈은 너무나도 위험한 도박이다. 남들이 이미 걸어간, 잘 포장되고 안전한 길에 비교해 꿈은 상상 속에서나 빛날 뿐, 현실에서는 미개척 상태의 오지를 개발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3년이란 짧은 시간에 평생을 위한 꿈을 꾼다는 것 또한 더 못 미덥게 보일 것이다. 그렇기에 걱정하는 의미로 하는 말이란 점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과연 그 이야기를 진심이 담긴 걱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과거를 비추어 보건대, 절대 아니다.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도 수만 번의 바람엔 모래로 깎여나가고, 부서진다. 과연 사람이라고 오죽할까.
위에서 말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처럼, ‘여긴 많이 힘들고 얻는 것도 없다는데, 차라리 다른 사람들처럼 취업 잘 되는, 혹은 안정적인 길을 걸을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라고 고민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이 한 가지 알아줬으면 하는 것은, 모두에게 불명확한 꿈을 꾸는 것이 위험하고, 남들과 같은 삶을 사는 게 쉽고 안전한 길인 건 전혀 아니란 것이다. 모두가 다 같은 관점을 가지진 않는 것처럼, 아무리 잘 닦인 길이란 것도 그들만의 시선에서 바라본 것일 뿐, 내게는 자갈이 가득한 비포장도로가 될 수 있다. 또한, 꿈을 꾼다는 것은 완성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들에겐 미완성이라 할지라도 내게는 작품이고, 걸작이며 시도 자체가 완성일 수도 있다.
왜 아직 그리기도 전에 내 그림의 한계치를 예상만 하고, 미리 좌절하며, 포기하는가? 왜 남들의 시선을 곧이곧대로 가져와서 내 꿈을 재단하는가?
단지 흐리고 어둡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기엔 10대는 너무나도 어리고, 아쉬운 시기이다. 오히려 여태까지 주변과 자신의 시야는 주어진 교육과정에 맞추어져 왔기에, 더 자유로워지고 자신에게 책임을 지는 대학생이 된 이후엔 흐리게만 보였던 자신의 꿈이 더 선명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사방의 조언(혹은 만류)에 주저하지 말고 도약했으면 좋겠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이미 준비는 끝났다. 숨을 깊게 쉬고 꿈을 향해 뛰어가자.
아직 사회생활을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필자의 이야기는 그냥 허세 부리는 풋내기로도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꿈은 현실에서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다양한 일들로 좌절하고 힘들어하던 현실의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 이러한 원동력을 마주하는 걸 남들에게 맞추느라 주저하거나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