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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May 22. 2018

한 정시생 이야기

수능 후에는 놀 줄 알았다.

 “수능만 끝나면 진짜 고삐 풀린 말 마냥 미친 듯이 놀 거야.”


고3 때의 내가 수도 없이 외친 말 중 하나였다. 쉴 틈 없이 기출문제와 수능 예상 문제집들을 풀며 반복적인 일상에 지쳐갈 때마다 습관처럼 내뱉던 한 마디. SNS에서 곧장 뜨던 ‘수험생 대상 할인행사 및 이벤트 목록’을 훑어보며 놀이공원 자유 이용권, 레스토랑 샐러드바 등을 수험표로 꼭 할인받으리라는 다짐을 했고, ‘수능이 끝나고 할 일 리스트’를 짜면서 고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완벽하게 보내리라 계획했다.


그렇게 수능을 치고 고사장을 나왔을 땐, 친구와 함께 집에 돌아가면서,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고생하면서 공부한 게 이렇게 끝나다니, 너무 어이없어. 근데 진짜 후련하다. 이왕 끝난 거 점수 상관없이 신나게 놀기나 하자.



그때까지의 나는, 수능이 끝났으니 매일의 여유를 만끽하며 정말 잘 놀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수능 뒤 시간은 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수능이 끝난 다음 날, 학교에서는 가채점표(수능 수험표 뒷면에 부착하여 답안을 적을 수 있게 칸이 짜인 표)에 따른 예상 점수와 여러 입시정보 사이트의 표본들로 만들어진 등급 커트라인에 따른 예상 등급을 보고 정시상담 순서를 곧바로 정하기 시작했다. 아직 수능이 끝난 뒤의 쾌감을 제대로 만끽하지도 못한 채 바로 정시상담이라니. 너무 이른 것 아닌가 하는 내 생각은 곧 달력을 보고 사그라들었다.


수시보다 정시는 자기소개서, 면접 등의 성적 외에 준비할 것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문제는 준비기간이었다. 준비기간이 짧다는 것은, 자신의 적성, 흥미와 성적대에 따른 합의점을 찾는 것이 더 난해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가채점표를 기준으로 정시상담을 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하더라도, 최종 성적은 2주 후에 나오는 데다 가채점표를 잘못 적어서 실제 점수와는 차이가 나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필자가 쳤던 2018년도 수능에서 일어난 사상 초유의 수능 연기는 성적 발표, 원서접수 등 모든 일정에 제동을 걸었다.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더더욱 하루하루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또한, 수능 전 열심히 찾아보고 기대하던 수험생 할인은 생각보다 많이 누리지 못했다. 할인 기간은 겨울방학 이전 혹은 방학 초반에 모두 끝나고, 수능이 끝났더라도 놀기 위해 학교에 가지 않으면 무단결석처리가 되는 건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길고 다양한 할인 목록에 비해 얼마 누리지 못했다. 그냥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건, 수업도, 자습도 없는 학교 교실에서 무료하게 휴대폰만 바라보거나 가끔 선생님이 들고 온 영화를 보며 시간만을 때울 뿐이었다.


그렇게 흐지부지 학교생활을 보내고 맞이한 겨울방학도 마냥 신나지는 않았다. 담임선생님께선 그냥 걱정하지 말고 겨울방학 때 신나게 놀기나 하라고 다독일 정도로, 잔걱정이 많은 나는 찜찜한 기분을 없앨 수 없었다. 수능을 여태껏 친 시험 중 가장 못 친 데다가, 눈치싸움이라도 잘못했다간 곧바로 강제 재수를 하게 된다는 불안감이 나를 싸고돌았다. 입시 커뮤니티에선 원서 접수를 잘못해서 원하지 않은 대학에 입학할 것 같다, 부모님과의 불화로 합격해도 가지 못할 것 같다, 같은 정말 다양하고 상상을 벗어나는 이야기들이 올라왔고, 그러한 글들을 보며 나도 잘못하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불안함이 자라났다. 그리고 주변에서도 하나둘씩 컨설팅, 합격예측 서비스 결제 등을 통해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보고, 왠지 받아야만 이 불안함이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수없이 고민하다가 한 정시 합격예측 사이트의 합격예측 서비스를 결제했다. 괜찮다고 하는 예측 결과를 보고 나서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지만, 혹시나 원서라도 잘 못 접수해서 큰일이라도 날까 봐 원서접수 할 때까지 컴퓨터를 끼고 살았다.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넣고 불안에 떨며 보내온 시간과는 달리, 끝은 예상치 못하게 한순간에 끝났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받은 문자 한 통으로 내 인생의 대학 입시는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발표 예정일보다 약 일주일이나 이른 날짜, 정각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에 대학 합격자가 발표가 났으니 직접 확인하라는 문자메시지의 링크를 따라 길거리에서 휴대폰으로 결과를 확인했다. 휴대폰에 뜬 ‘합격’ 팝업을 보고 이상하게 기쁘기보다는, 정류장에 온 버스를 타는 게 더 중요했기에 합격 소식은 뒷전으로 미룬 채 버스를 쫓아 열심히 뛰어간 기억밖에 남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준비해온 기간이나 노력보다 정말 간단명료하고 심심한 끝마무리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진 모르겠지만, 나는 수능이 끝나면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재미있게 놀 줄 알았다. 수능만 끝나면 지금까지의 수험생이란 이유로 눈치 보거나 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맞이한 나날들은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수능이 끝났다고 대학 입시 준비가 끝난 것은 전혀 아니었으며, 열심히 세웠던 계획들은 돈, 일정 등의 문제로 별로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 필자는 빠른년생이었기에 더더욱 행동에 제약이 걸렸다. 정신 차려보니 그냥 전기장판에 껌딱지처럼 붙어 시간만 헛되이 쓰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매일 침대에 누워 휴대폰과 컴퓨터를 하면서, 정말 시간이 아깝다고 수없이 생각했다. 이런 생활을 생각하며 수능 전에 목표를 짜며 공부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이 글을 읽은 수험생들이 있다면, 수능이 끝나도 마냥 놀 수만 있진 않다는 것을 염두에 뒀으면 한다.


11월 중순부터 2월까지, 약 3달 동안, 과연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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