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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Jul 25. 2017

시각 디자인을 하는 여러분에게

전공자가 들려주는 진솔한 이야기

고등학생 때 생활기록부에 희망하는 직업을 적는 항목이 있었다. '시각디자이너'라고 적었는데 그때마다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거야?" 이 질문은 지금까지도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당황스러운 질문이다. 나는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걸까? 처음부터 왜 디자인을 하고 싶었을까?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고등학교 3학년,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하며 깨달은 고민을 어떻게 풀어 갔는지 여러분에게 말해 주고 싶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시각 디자인이 무엇이고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려주기보다 우선 미래 디자이너인 여러분이 느끼고 간직했으면 하는 마음가짐을 말하고자 한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한 지 1학기도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미래에 점차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이다. 미래에는 디자인도 로봇이 하게 될 것이고 로봇이 사람보다 훨씬 정확하고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외로 주변에는 이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내 주변 친구들도 그랬고 심지어 우리를 가르치시는 교수님들조차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디자인 계열에 종사하시는 분들인데도 말이다!


이 이야기에 슬퍼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좌절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아무리 로봇이 정확하고 정교하다고 해도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감정은 이길 수 없다. 로봇의 정확성이나 정교함은 그저 디자인함에 있어 더 효율적인 수단일 뿐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디자인을 할 것인가는 오직 인간만이 결정할 수 있다. 원시인들도 사냥을 좀 더 잘하기 위해 간석기를 디자인하지 않았는가?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느냐'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목적이 달라지고 디자인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디자인의 목적을 생각하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듣는 말이 있다. "나 이거 그려 줄 수 있어?" 디자인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은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디자이너=잘 그리는 사람'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은 맞지만 잘 그리는 사람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디자이너가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라면 그것은 디자이너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로봇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란 사람들의 중심에서 서로를 이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디자이너가 어떻게 서로를 이어 주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동시에 그럼 디자인은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전공이나 직업이 있다면 반드시 그 의미와 목적을 찾아보길 바란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왜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Design)의 사전적 의미는 ‘도안’, ‘설계’, ‘계획’이고 라틴어 ‘데시그라네(Designare-계획하다, 목적으로 하다, 지시하다)’에서 유래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요즘은 시각 디자인, 산업 디자인 등의 대표 이름으로 창조를 의미한다.


디자인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위한 환경을 개선하고 창조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환경을 개선하고 창조하는 디자인은 무엇일까? 환경이라고 하면 친환경 자전거나 유니버설 디자인(노인이나 장애인처럼 생활할 때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디자인)을 떠올리기 쉽다. 대부분 상품을 떠올리는데, 그러나 인간의 행복은 물질적인 것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 '웃기다, 슬프다, 화난다'처럼 비물질적인 것들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시각 디자인의 의미를 알 수 있는데 바로 만져지지 않는 것들을 전달하는 것이다.





지식의 중심에 서자.


디자이너는 다수의 사람을 이어 줄 수 있어야 하므로 사회에 존재하는 지식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지식의 중심에 서야 하는가?


첫 번째로, 이 사회에는 정말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각자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다. 직업도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 디자인이라는 다리를 놓기 위해서는 나를 기준으로 세우면 나보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은 떨어질 것이고 나보다 눈이 좋지 못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결국, 사람들의 공통적인 부분을 디자이너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알아야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는가? 선거, 대통령, 국회의원, 운동, 반장(학교 안에서의 반장 선거나 투표도 작은 의미로서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등의 정치, 사람의 움직임, 감각, 전기 등의 과학, 미세 먼지, 태양, 동식물 등의 자연처럼 다양한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 더 좋은 디자인, 더 튼튼한 다리를 창조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식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이제 기술보다는 콘텐츠가 더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대학교 전공 수업 때, 교수님의 말씀 중 하나가 생각난다. "엄청난 기술의 발전으로 용량도 빵빵하고 화질도 엄청 좋은 신형기기가 발명되었다고 치자. 그런데 이 기기에 담을 이미지나 영상이 없다면 과연 이 기기가 우리가 돈을 주고 살 만한 상품일까?"


더 쉬운 이해를 위해 게임 캐릭터를 예시로 들자면, 게임 캐릭터는 우리가 좀 더 게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재미를 더해 주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캐릭터가 인간과 흡사한 모습이나 행동을 하고 있어 더욱 게임 상황에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게임 캐릭터가 게임과 유저(게임을 하는 사람) 사이 전달자가 되는 것이다. 우선 게임 캐릭터와 디자이너가 지식을 쌓는 것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자. 지금은 컴퓨터나 핸드폰, VR 게임기로 게임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부모님의 어릴 적만 해도 생소했다. 과학이 발달하고 IT 시대가 오면서부터 기기를 활용한 게임이 점차 발전하게 되었고 화면에 보일 디자인이 필요했다. 디자인의 역사보다 짧은 과학의 역사에 맞춰 디자인이 변화했다는 증거이다. 만약 여기서 디자이너들이 과학이라는 지식을 무시하고 알지 않으려 했다면 게임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디자인은 복합적인 분야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사물들 그 어떤 것에도 디자인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인간의 발전은 그러한 기술과 디자인이 합쳐진 사물들이 활용되며 이어져 왔다. 디자이너는 발전의 역사를 같이 걸어가는 중요한 자리이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더 좋은 발전을 위해 지식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감을 가져라.


고등학교 2학년 때, 엄청 마음 아픈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수업 시간에 자신의 희망 직업에 대해 간단히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전공이 디자인인데 왜 일반 고등학교에 들어왔냐는 말을 들었다.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 더 많은 것을 배웠고 더 잘하는 것을 대학교수가 다 알 텐데 일반 고등학교 학생을 굳이 뽑을 이유가 있냐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었다. 나도 나름으로 열심히 준비했고, 디자인을 좋아해서 시각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건데 무시 받는 것 같아 억울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일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을 주었고 그렇게 나에 대한 실망이 커지자 불안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3학년인데, 조금 있으면 입시고 전공을 골라야 할 텐데 과연 내가 이 길로 갈 수 있을까? 나한테 안 맞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 어떤 것을 해도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소개서를 쓰자니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활동들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글쓰기 대회, 또래 상담, 사생 대회 등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결국,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때 나는 지금껏 전공과 관련된 활동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자기소개서에 쓸 것도 없고 자신감도 없어 불안하다고 말씀드렸다. 이어진 담임 선생님의 말씀은 나의 불안감을 한 번에 떨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니야, 그림을 그렸다, 안 그렸다가 중요한 건 아니지.
중요한 건 고등학교 때 네가 얼마나 너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성찰했냐가 중요한 거야.
세상에 이어지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니?”


이어서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글쓰기는 왜 했나? 또래 상담은 왜 했나? 그리고 무엇을 얻을 수 있었나? 상담 후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말주변이 없는 나에게 글쓰기는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또래 상담은 다른 친구들의 말을 들어 주거나 같이 해결해 나가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활동들로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공부할 수 있었고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사실은 시각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들을 고등학교 시절 활동으로 스스로 깨닫고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쓸모없었다고 생각한 그 활동에서 말이다.


여러분은 지금 칼럼에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분야에 많은 관심이 있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가고 싶은 길과 관련된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나처럼 디자이너가 꿈인데 글쓰기 활동을 하는 친구들 또한 훌륭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활동이 얼마나 나를 성장 시켰는지'이다. 만약 나처럼 좌절하고 불안해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내가 들었던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


디자이너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로서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에 자신감을 가지고 앞을 개척해 나가는 직업이다. 그런 디자이너들에게 자신감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새로운 디자인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좋은 마음이다. 기죽을 필요 없다. 만약 누군가가 형편없다고 하거나 나 스스로 그런 마음이 든다면 씨익 회심의 미소를 날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자신감 있게 당당히 보여 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훌륭한 디자이너의 마음가짐이다.



디자인에 대해, 디자이너에 대해, 많은 것을 다 알지 않아도 된다.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대학교라는 공간은 더 심화된 자기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여러분에게 길은 열려 있다. 다만 내가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건네고자 하는 것은 그 길을 행복한 마음으로 보는가, 희망의 마음으로 보는가, 고통의 마음으로 보는가는 여러분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길을 항상 응원한다.
디자인을 사랑하는 멘토로서, 친구로서,
한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 길이 반짝반짝 빛나길 응원한다.



시각 디자인을 하는 멘토가.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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