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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Sep 21. 2017

보노보노처럼 살아도 괜찮아!

※ 제목은 김신회 작가의 에세이에서 인용했습니다

2017년 여름이 시작할 즈음에 독특한 제목의 책을 보게 되었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였다.

그 표지에는 보노보노의 얼굴이 꽉 차게 그려져 있다. 그가 꼭 쥐고 다니는 조개와 함께.


보노보노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열렬한 팬으로서 매일 밤 인형을 쥐고 자는 이도 있겠지만, 나에게  보노보노는 익숙한 캐릭터가 아니다. 어릴 때 접한 파란 해달은 아이들을 위한, 한없이 밝고 맑은 캐릭터가 아니었던 것 같다. 뚜렷한 선악도 없고, 부모님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 때문에 큰 소동이 벌어 지지도 않으며 배경 또한 평범하다. 기억에 남는건 그 파란색뿐이다. 


그런데 십 몇년이 흐른 지금 다시 찾아보게 된 보노보노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독여주기에 딱 좋은 캐릭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신회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나서 보노보노 만화책을 다시 사들이고 있다. 다시 읽게 될 그 파란아이의 하루가 궁금해졌다. 살짝 들뜬 마음이 ‘언제부터 내 하루에 위로가 필요해졌나’ 하는 생각에 가라앉기를 수십 번째 반복 중이다. 






“아! 오늘도 아무 일도 없었구나!”

아무 일도 없다는 건 좋은 거구나.


생각해보면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해야 한다'는 압박과 '하지 않았음을 생각'하는 후회의 반복이었다. 주변에서 뭔가를 한다고 하면 ‘나는 왜 저 생각을 못했지?’ ‘나도 해야하는데?’ 라고 생각하며 비슷한 활동을 찾아서 꾸역꾸역 해 나가곤 했다. 그래서 내가 항상 입에 달고 살던 말은 “아 오늘 뭐 특별한일 없나? 지루해 죽겠네” “뭐 할거 없을까? 다들 뭐하고 있데?” 


이쯤에서 나와 같이 수험생활을 보낸, 아니 보내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나는 내 하루가 평범하게 흘러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었고, 그 평범함이 나를 뒤처지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뭔가 특별해 보이고 싶었던 걸까? 성숙하지 못했던 자아의 표출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막상 뭔가를 시작하면 자랑보다는 숨기기 급급했던 것을 보아 튀고 싶은 욕망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숨겼던 이유는 내가 잘 해내지 못했을 때를 대비하는 마음 반, 내가 하는 일들이, 활동들이 희소했으면 하는 마음 반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치졸하고 옹색하다. 



그때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모두가 대학을 가고 싶어했으니까.
'뭔가 다른 경험들이 필요하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래서 대학을 가려면 아무 일도 없는 날은 곧 쓸모 없는 날이라는 거다. 내가 이뤄낸 일이 없다면 외부의 어떤 일이라도 일어나야 하는 거였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가 나를 점점 표준과 평균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 일도 없는 날이 가장 감사하다는 것을 안다. 나의 내부에서부터, 외부로부터 아무 자극을 받지 않는 순간들이 참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을 안다. 평범하게 사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지금은 알고 있다.  ‘네 삶이 항상 가득 차지 않아도 괜찮다.’ ‘너는 이미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라는 말들이 수험생활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저렇게 말해줬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오히려 아니꼽기만 했다. ‘이미 원하는 걸 이뤄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 혹은 ‘자기 일 아니니까 저런 말 하는 거지, 지금 나태해지면 큰일나는데‘. 내가 얼마나 초조한 생활을 보냈는지의 반증이었다. 수험생으로써 아무일 없는 하루를 제대로 보냈다면 그건 그대로 괜찮은 거였는데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내가 아무일 없는 날을 누구보다 바랬던 날이 있었다. 11월 두번째 주 목요일. 나는 매년 추웠고, 이번에도 역시 추운 그날에 간절히 기도했다. “오늘 아무 일도 없게 해주세요”



수험생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___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 질 거라는 걸 안다. 오히려 결전의 그날 아침, 수험장 가는 길이 가장 차분할 거다. 그 전 수십일을 초조하게 보냈다 하더라도 그날 아침만큼은 현실이 아닌 듯 뭔가 고요 할거다. 막상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후배들 응원을 들으면 떨려올 다리를 알지만, 또 자리에 앉으면 미친듯이 뛰어올 심장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새벽녘에 나선 그 길에서는 괜찮을 거다.

그때 한번만 스스로 되뇌여라.
“오늘도 어제와 같이, 지금까지와 같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아무 일도 없는 내일이 올 거야. 난 그렇게 아무 일도 없이 잘 살아 갈거야.“



출처: 출판사 놀(다산북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되고 싶다는 게 있다는 건 안 좋은 거야?


당연하지, 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지금의 자신이 싫다는 거잖아.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질문을 받으며 산다. “꿈이 뭐야? 뭐가 되고 싶어?” 꿈이 없다고 하면 누구나 잔뜩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주 잘못 살고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항상 되고 싶은 게 있었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저 위 두 줄을 눈으로 훑자 마자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항상 뭔가 되고 싶어했다. 감투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매일을 후회하는 삶을 살다 보면 스스로를 벗어나고 싶어 진다. 우스갯소리로 흔히들 하는 “이번 생은 망했어” 라는 말이 가슴을 깊게 후벼 파는 날에는 더 그렇다. 나는 지금의 나를 싫어하고 있는 거였다. 나를 포기하고 세상에 맞추다 보니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김신회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멋진 사람은 꿈을 이룬 사람이 아니라,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꿈 같은 거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가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아니니까.

다행이다.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을 찾아서 참 다행이다. 


김신회 작가는 꿈을 이루는데에는 재능과 열정과 끈기 모두 필요하다고 한다. 그게 모두 제 자리를 온전히 차지하고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꿈을 이룰수 있는거라고. 그런데 누구나 그 밸런스를 맞출 수 있는 건 아니다. 앞서 작가는 “재능을 꽃피우는 힘도 재능”이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마치 에디슨이 99%의 노력이 있어도 1%의 영감(재능)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꿈을 포기할 용기를 가지라고 한다. 꿈이 꿈에 머무르게 되면 사람은 점점 그 꿈에 매달려 잠식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수업을 듣지만 사실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말, 내가 고3때 담임선생님이 계속 던지시던 일종의 경고였다. 아마도 더 열심히 살라는 거였겠지. 나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나는 같은 걸 꿈꾸지 않아도 된다.라고 받아들였다. 거기에 김작가님의 메세지를 더하면 ‘같은 걸 꿈꾸지 않아도 된다. 꿈이 없어도 괜찮다. 깨끗이 포기하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다.’가 되겠다. 참 마음에 쏙 드는 한마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많은 이들이 많은 걸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고 있다. 누구는 벌써 취업을 했고, 대학을 두 세 번 옮기면서 전공을 바꾸고, 또 어떤이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평생의 짝을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한다. 외국으로 나간 친구도 있고, 부모님의 일을 돕는 친구도 있다. 여전히 꿈을 찾고 있는 이도 있고, 얼마전 포기하고 재정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군대로 훌쩍 떠나버린 이 등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벌써 정하지 않아도 좋다. 생각해보면 우리 아직 참 어리다. 교복을 입은 그 때에 꿈을 가져도 좋고 가지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건 언제든 스스로를 제대로 깨닫게 되면 가차 없이 끝내고 시작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노보노 원작자인 이가라시와 ‘보노보노 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의 저자 김신회 작가가

꼽은 보노보노 속 단 한줄과 함께 끝맺음 하려고 한다.


즐거운 일은 끝나지만, 괴로운 일도 반드시 끝난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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