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반복되는 인생
오늘 예매가 시작된 신구, 박근형 배우 분의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이 아마 이번이 마지막 개막인 듯
극 타이틀에 'THE FINAL' 이라는 문구가 붙었다.
나는 작년 7월쯤 상연되었던 '고도를 기다리며'를 봤었는데,
사실 그때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문학적 의미고 어떤 역사적 흐름이고 떠나서
신구 선생님의 연기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봐야겠다' 하는 결심 자체로만 보게 되었던 터라,
보고난 직후까지도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 자체의 의미나 히스토리를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극을 본 후 많은 이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에스트라공)와 디디(블라디미르)를 보며 느끼는 바와 같이
일종의 실망감과 같은 의문을 잔뜩 품고 극장을 나왔더랬다.
극이 끝나고 난 뒤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 읽어봤지만,
그 당시에는 심도있는 극의 의미를 분석한 이를 찾지 못한 채
극의 발생지, 원작 정보 정도만 얻고
'노장 배우들의 차력쇼'
'어떠한 의미가 있는 오래된 희극'
언저리의 생각에 머물며 '더 깊은 감상이 있을까, 내가 모르는 어떠한 뒷이야기가 있을까 ?' 싶어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도 찾아서 보게되었다.
(이것도 극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고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러고도 내 작은 머리로는 극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한 결론에 미치지 못했었다.
(사실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고도를 기다리며'와 크게 직결되는 내용이 아닌,
새로운 내용의 창작극임을 보고 난 후에 찾아보고 알았다.)
이번 신구, 박근형 배우 분의 마지막 고도를 기다리며 개막 소식을 듣고
잊고 있던, 아직 깨우치지 못한 '고도의 의미가 뭘까' 하는 의문이 다시 떠올라
여러 방면으로 집중해 찾아보고 또 고민해보니
고도는 사실 인생의 어디인 지 모를 어딘가를 예술로 풀어낸것이 아닐까.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극 중 등장인물은 실물이 등장하지 않는 고도를 제외하면
5명(고고, 디디, 포조, 럭키, 양치기 소년)인데
이들은, 특히 고고와 디디는 1막과 2막에서 반복적인 행동과 대사를 한다.
"이제 가자."
"안돼."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맞다. 그렇지."
식의 대사들과 기다림에 무료함을 보여주는 듯한 반복되는 의미 없는 행동들이
극을 보는 내내 의미에 대한 집중과 고심을 하게 한다.
오히려 극을 보는 동안에는 '그래서 고도가 누구일까?' 하는 생각에 초점을 두느라
의외로 극 자체의 분위기와 흐름만을 봤을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반복적 상황들이 가려져 보였다.
"고도 씨가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해달래요."
이시목 배우가 연기하는 양치기 소년의 대사도 그에 한 몫했다.
원초적으로 극을 표현하자면,
'고도를 기다리며 일어나는 어떠한 일들' 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극 속에서는 결국 고도가 오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은 같은 상황을 반복했고 만일 고도가 왔다면 반복되는 상황이 달라졌을 지,
또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지 극을 본 그 누구도, 하물며 원작을 집필한 사무엘 베케트도 모를 것이다.
인생이 그렇다.
양치기 소년이 말한 언젠가 꼭 오겠다던 고도는 언젠가 올 지 모르는 어떤 일,
인생 속 벌어지는 무수히 많은 기회, 성취, 좌절, 상실, 청춘, 사랑, 이별, 인과관계 라고 할 수 있다.
고고는 인간의 단순하고 감정적인 면이며, 디디는 인간의 지성을 나타낸다.
포조(김학철 배우)와 럭키(조달환 배우)의 1,2막 중 행동이 반복되지만
그들의 설정이 달라지는 것은 흘러가는 인생 속 주변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나타내며
극 중 럭키의 긴 독백은 시간의 흘러감에 따라 변모되던 일상 속, 그렇지만 매일이 달라지는 어떤 하루의 특별한 사건들을 표현한다.
극 중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앙상한 나무에 목을 매려다 실패하고 그럼에도
고도가 정말 오는 지가 중요한 고고와 디디는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그렇지만 동시에 덤덤해 보이는 멀리서 본 하나의 인간상이기도 하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인생을 3시간 남짓의 작은 무대로 풀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구성이 달라지지 않는 공간과 정체 모를 대사들도 단지 의문이나 웃음거리가 될 수 없게 만드는 배우들, 오래동안 상연되어 온 내공인 지 빈 틈 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극의 진행이
쓸쓸하고 어딘가 외로워보이는 극을 관통하는 의미들을 온전히 생각할 수 있게 했다.
극의 의미를 받아들이며
나도 고도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앙상한 나무 아래 바위에 앉아 작은 신발 때문에 아픈 발을 두드리며 고도를 기다리다 보면
내 인생에는 어떤 고도가 올 지,
벙어리인 럭키가 올 지,
앙상한 나무에 잎이 무성하고 열매를 맺는 일이 생길 지,
이것의 집필을 맡은 나조차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