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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요 Nov 14. 2015

거리에는 영화들이 넘쳐 났다.

유럽 배낭 여행




로마에서는 어디를 가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극장에는 볼만한 영화가 하나도 없었다. 볼만한 영화들은 모두 이탈리아어로 더빙이 되었고, 그 순간 볼만하지 않은 영화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거리에는 영화들이 넘쳐 났다.               

-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제프 다이어 여행 산문집



공항으로 향하는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 혼잡한 홍대입구역이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이다.



비행기는  열두 시간을 날아 우리를 프랑스로 옮겨 주었다. 나는 책 두 권과 무료한 시간을 달래 줄 남자 친구를 잘 챙겨서 비행기에 올랐고, 친절한 에어프랑스는 다양한 영화를 준비하여 오랜 비행이 지루하지 않도록 도와 주었다. 다만 보고 싶었던 영화를 한국어 더빙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은 꽤 신선한 고통이었다. 줄리안 무어에게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겨 준 <스틸 앨리스>를 보고 나니 마침내 한국 영화, 그래! 오랜만에 한국 영화를 봐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배우의 진짜 목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볼만한 영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다행히 세 명의 젊은 청년이 열연한 <스물>은 귀여운 영화였다.


비행기에서 내릴 무렵, 프랑스 기장님의 안내 방송이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비행기가 무사히 땅을 밟으면 탑승객들이 박수를 치는 것은 러시아 항공에서만 으레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던가. 의아해 하고 있을 때 한국어 안내 방송이 이어졌다. 우리 앞 좌석을 점령했던 체육복 무리의 아이들 중 하나가 한국에서 열린 태권도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한다. 어쩐지 아이들의 박수 소리가 유난히 우렁찼다. 이런 자상한 비행기 같으니라고. 이런 귀여움이 넘치는 나라에 도착했다는 기쁨에 나도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못 알아들으면 어떠한가. 불어는 프랑스 곳곳이 영화들로 넘쳐나도록 분위기를 더욱 돋우어 주었다. 샤를 드 골 공항을 스쳐 지나고 니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사이좋게 담배를 나눠 피우고 터미널 입구에 있는 커다란 모래 무덤에 담배 꽁초를 묻었다.




photo by @uncle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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