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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요 Dec 27. 2016

봄 또는 여름, 그리고 크리스마스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네 번째



상점마다 여름 맞이 할인을 내걸고 착한 가격으로 지갑을 유혹하는 뉴질랜드, 나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기대했지만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찬기운이 남아있다. 봄과 여름의 중간쯤 크리스마스가 끼어 있는 이번 일주일은 아홉 살 리온의 집에서 묵기로 했다. 몇 개월 전 일본인 엄마 치아키, 영국인 아빠 로엔과 함께 뉴질랜드에 온 리온네 가족이 갈 곳 없는 우리를 위해 따뜻한 방을 내어주었다. 아직 미완성인 잔의 캠핑카는 동네 어귀에 세워두었지만, 리온은 한국에서 굳이 뉴질랜드까지 들고 온 나의 레고 캠핑카를 자신의 레고 마을에 안착하도록 허락했다. 그리고 리온과 나는 레고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레고는 여러모로 유익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크리스마스이브, 치아키가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주었다. 우리는 거실에 깔아놓은 파란색 피크닉 매트 위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그녀가 준비한 일본 가정식 초밥을 먹었다. 바삭바삭한 생김에 더 이상 밥알이 훌훌 날리지 않는 찰진 쌀밥과 고추냉이를 곁들인 간장만 해도 황홀한 식탁에 연어, 치킨, 참치, 치즈, 소시지 등 각종 재료가 더해졌다. 생김에 소시지만 잔뜩 올린 조합을 가장 좋아하는 리온은 크리스마스이브 기념으로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다며 자랑을 한다. 코카콜라와 크리스마스 역시 괜찮은 조합이다.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진 귀여운 저녁 식사는 우리 배를 잔뜩 불리었다.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놓인 선물은 영화나 팝송에서나 등장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리온의 집 트리 아래에는 크리스마스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선물들이 잔뜩 놓여있다. 크리스마스 아침, 곱게 입힌 포장을 뜯으며 환호성을 지르는 리온을 보고 싶었지만, 우리는 역시나 늦잠을 자고 말았다. 골든베이로 캠핑을 떠난 리온 가족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대신 뜻밖의 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두근두근 겉옷을 벗기자 어제저녁을 한층 귀엽게 만들어준 것과 동일한 피크닉 매트가 파란 속살을 드러냈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 잔에게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냐고 물어보던 리온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우리는 그 마음을 깔고 앉게 될 것이지만, 마음껏 올라타도 미안하지 않을 착한 선물이었다.  





안젤라와 마크의 초대를 받은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를 위해 나는 찜닭을 준비했다. 한국에서도 시도하지 않던 한국 음식들을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곳에서 시도하고 있다. 나는 그들이 뜻대로 완성되지 않은 불완전한 맛에도 칭찬을 건넬 때마다 한국 음식 이미지에 누를 끼쳤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낀다. (찜닭, 닭볶음탕, 비빔밥에게 사과드립니다.) 반면에 그들이 대접하는 다양한 국적의 음식들은 한결같이 맛이 좋다. 타국의 음식에는 보다 후한 점수를 주게 되는 것인가 따위의 생각을 할 새도 없이 즐거웠던, 영국과 독일, 한국 출신의 음식과 사람들이 모인 크리스마스 저녁은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그네를 타기 좋은 날씨였다. 우리는 덩그러니 그네가 놓여 있는 공원까지 산책을 했다. 강물을 따라 놓인 길을 걸으며 여기가 청계천이 아닌가 하고 던졌던 농담은 깊은 물속으로 뛰어드는 잘 빚은 오빠의 벗은 몸을 보고 무색해졌다. 목 좋은 곳에 놓인 벤치 앉아 아무렇지 않게 오빠들을 구경하며 뉴질랜드의 좋은 점 리스트에 항목 하나를 추가한다. 봄 또는 여름의 크리스마스 또한 훌륭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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