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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onde Mar 07. 2021

나는 길을 찾겠다. 찾다가 없으면 길을 만들겠다.

로마의 목에 칼을 갖다 댄 남자, 한니발 바르카

한니발 바르카


  난 지금 처음 배운 전공과 다른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주전공에 흥미가 없어 군대를 제대하고 전공을 바꿨다. 지금이야 참 다행스럽게도 바꾼 전공으로 직장에 들어갔지만, 처음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남들보다 출발이 늦었기에 두배 이상 노력했어야 하고, 기존에 공부를 해온 사람과 다른 나만의 무기를 가져야 했다. 그래서 대학교를 다니면서 다양한 활동을 참 많이 했다. 내 꿈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항상 장애물이 생기며 이를 넘어서야 한다. 지금 소개할 인물도 로마 정복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역경을 넘었다.


  기원전 3세기, 지중해의 패권은 카르타고가 차지했다. 이들은 로마 공화정이 지배하고 있던 시칠리아 섬에 눈독 들이게 된다.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는 시칠리아를 공격했지만, 로마를 너무 얕잡아 본 나머지 패배하게 된다. 이것이 1차 포에니 전쟁이다. 패배 후 카르타고는 시칠리아의 지배권을 로마에 내주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게 된다. 이를 지켜본 바르카의 9살 아들은 카르타고의 신 타니트 앞에 반드시 로마를 무찌르고 돌아오겠다는 맹세를 하게 된다. 이 아이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략가로 평가받는 한니발 바르카이다.  


  성인이 된 한니발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카르타고 원로원들에 의해 총사령관으로 뽑힌다. 어릴 적 로마를 무너뜨리기로 결심한 그는 곧장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첫 목표는 스페인 사군툼이었다. 스페인은 로마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북이탈리아 반란을 진압하느라 정신없던 로마는 병력을 줄 수 없었다. 사군툼은 한니발에게 강화를 요청했고, 그 요청에 이렇게 답했다.



  너희의 요청은 들어주겠다. 대신 조건으로 집에 전 재산을 두고 각자 입을 두벌의 옷만 가지고 나와라. 그대들이 살 곳은 내가 따로 마련하리라.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온 사군툼 시민들은 굴욕적인 강화 조건에 반대해 결사 항전했고, 결국 처참하게 패배하고 한니발 뜻대로 강제 이주를 당한다


  스페인을 정복한 한니발은 로마로 향했다. 로마 원로원은 그가 배를 타고 바다를 따라 이탈리아 반도로 올 것이라 생각해 군대를 항구 도시 마르세유에서 대기했다. 소식을 들은 한니발은 두 선택지 앞에 놓였다. 첫 번째 배를 통해 론 강을 건너 해로를 통해 가는 방법이었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만, 마르세유에 있는 로마군과의 정면충돌을 해야 한다. 두 번째 방법은 로마군의 주둔지를 우회하는 방법이었다. 이 경우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넘어야 한다. 심지어 가는 길에 카르타고에 적대적 갈리아 인들을 상대해야 한다. 로마군과의 전투보다는 수월 하겠지만, 초겨울에 알프스 산맥을 넘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한니발의 선택은 알프스를 넘는 것이었다. 동상으로 죽는 사람들도 발생했고, 갈리아 인들과도 싸웠다. 카르타고군이 알프스를 다 넘었을 때 병사의 절반이 사라졌다. 하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마르세유에 반드시 한니발에 올 것이라 생각한 로마군은 갑작스러운 카르타고의 이탈리아 본토 상륙에 기겁했다. 급하게 카르타고 군을 막으러 갔지만, 한니발에게 유린당할 뿐이었다. 로마 원로원은 다급해졌다. 그 사이 트라시메노 호수에 도착한 한니발은 이 장소가 매복에 최적화된 장소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는 호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모닥불을 피우며 로마군이 오길 기다렸다. 모닥불을 본 로마 집정관 플라미니우스는 한니발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곧장 군대를 이끌고 돌진한다. 호수를 지나는 순간 한니발이 숨겨놓은 복병이 로마군을 공격했다. 크게 놀란 로마군은 혼신을 다해 카르타고군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플라미니우스는 카르타고군 병사의 창에 찔려 죽는 수모를 당한다. 한니발은 대승을 거두고 로마를 정복하기 위해 계속 남하했다. 그의 전략적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전투였다.


  로마 부근까지 남하하는 데 성공한 한니발은 또다시 선택에 놓였다. 바로 로마를 공격할 아니면 주변 도시들을 정복해 장기전으로 돌입할지 였다. 이 선택에 대해 현대까지도 어떤 방법이 맞는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고 있다. 한니발의 선택은 장기전이었다. 그가 장기전을 선택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우선, 스페인에서부터 먼 길을 행군해 오느라 공성 무기와 물자가 부족했다. 주변 도시 정복을 통해 물자를 공급받기 원했다. 로마의 독재관 파비우스는 이 사실을 알아채고 카르타고의 물자를 소비시키는 소모전 돌입했다. 하지만 로마 원로원은 한니발과의 빠른 결판을 원했기에 그의 임기를 연장하지 않고, 새로운 집정관에 바로와 파울루스를 임명한다. 둘은 카르타고의 기병이 활약하기 어려운 숲과 강을 낀 칸나에에 주둔하여 한니발이 오기를 기다렸다.

  로마군은 중앙에 강력한 보병 무리를 촘촘히 배치했고, 측면에 기병을 배치했다. 좌익 기병은 바로가 우익 기병은 파울루스가 지휘했다. 반면 카르타고 군은 중앙의 보병을 넓고 얇은 활의 모양처럼 배치했고, 양 측면에 갈리아-아프리카 정예 중장보병을 위치하고 로마와 동일하게 좌우측 측면엔 기병을 배치시켰다. 로마 보병이 먼저 카르타고군을 공격했다. 로마 보병의 숫자가 훨씬 많았기에 거침없이 카르타고 군을 공략했다. 한니발은 피해를 줄이면서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그사이 카르타고의 무기인 좌우측 기병이 로마 기병을 공격했다. 카르타고의 하스드루발이 이끄는 우익 기병은 로마 군을 압도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카르타고 좌익 기병도 로마군을 밀어내고 있었다. 보병은 로마가 강력했지만, 기병의 파괴력은 카르타고가 압도적이었다. 반면 신나게 카르타고 보병을 공략하던 중앙군은 갈리아-아프리카 정예보병이 투입되면서 그 기세가 잦아들었다. 시간이 흐르자 로마군은 중앙만 돌파된 V자 형태의 진영이 됐다. 그러자 좌우측 카르타고 기병이 뒤를 잡고 로마군은 완전히 포위된다. 그리고 카르타고군의 학살이 시작되었다. 집정관 파울루스는 이미 전사했고, 바로는 달아났다. 6만 명의 로마군은 퇴각할 틈도 찾지 못하고 카르타고군에게 모두 죽음을 당한다. 야영지에 대기하던 나머지 1만 명의 병사는 포로로 잡혔다. 한니발의 완벽한 전술이 카르타고에게 승리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칸나에 전투는 서양 전쟁사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한니발 최대의 업적이었다.


  대패 이후 이제 로마 원로원 누구도 한니발과의 결전을 외치지 않았다. 로마 농성을 준비하면서 카르타고의 보급을 방해하는 게릴라 작전으로 변경했다. 게다가 로마는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어 한니발 원정군 본국에서의 보급에 애를 먹고 있었다. 한니발 군을 제외한 카르타고군은 패전을 거듭했고, 서서히 로마에게도 전쟁의 희망이 생긴다. 전쟁이 시작된 지 9년이 흐른 기원전 210년 로마 원로원은 카르타고의 보급선을 끊어버리기 위해 스페인을 공략하기로 한다. 총사령관은 스키피오였다. 그는 뛰어난 군사력을 발휘해 스페인의 지휘관이자 한니발의 동생인 하스드루발 바르카를 몰아냈다.   

  하스드루발은 한니발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이동하지만 두 번의 성공은 없었다. 한니발에게 배운 로마군은 하스드루발 군을 발견하고 그는 메타 우르스에서 전사하고 만다. 스키피오는 스페인을 정복하고 로마 원로원에게 카르타고 본국이 있는 아프리카를 침공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총사령관을 맡기에 아직 어린 30살 나이였지만, 원로원은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그에게 아프리카 침공을 허가한다. 한니발이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 그랬듯이, 스키피오는 아프리카 내에서 카르타고에 적대적인 세력을 규합해 군대를 키웠다. 그는 뛰어난 전략을 발휘해 카르타고 앞까지 손쉽게 도착했다. 스키피오는 카르타고에 강화 협상을 제안했고,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과격파 카르타고 원로원들에 의해 협상이 파기되고 결전의 순간이 다가온다. 다급해진 카르타고는 급히 한니발과 더불어 이탈리아에 있는 전 병력을 귀환시켰다. 이제 카르타고 근방 자마에서 세기의 라이벌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결전만이 남아있었다.


  로마는 먼 길을 떠나 오면서 보병은 부족했지만, 북아프리카를 점령하면서 복속시킨 기병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카르타고는 만 오천의 한니발 보병과 시민군이 있어 많은 보병을 확보했다. 한니발은 군대의 선두에 코끼리 80마리와 함께 갈리아 보병이 섰고, 2열에는 리비아와 카르타고의 시민병을 3열에는 자신이 직접 이끄는 베테랑 보병을 위치시켰다. 스키피오 역시 보병을 3열로 배치했다. 로마군은 전통에 따라 1열에는 젊은 경보 병인 하스타티를 배치하고, 2열에는 주력 보병인 프린키페스, 3열에는 고참병인 트리아리를 배치했다. 그리고 좌익에는 로마군 기병이 위치했고, 우익에는 누미디아 기병이 위치했다.

  한니발은 코끼리를 앞세워 돌격했다. 하지만 스키피오는 영리했다. 그는 3열로 배치된 로마군을 재빨리 움직여 코끼리에게 보병이 짓밟히지 않도록 길을 열어줬다. 그사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로마 기병이 카르타고 기병을 공략했다. 한니발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카르타고 기병에게 최대한 멀리 도망가게 하여 로마 기병을 전장에서 이탈시켰다. 이제 보병끼리 전투가 시작되었다. 카르타고 1,2열의 보병은 스키피오의 하스타티와 맞붙었다. 카르타고는 급하게 병력을 구성하느라 전투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하스타티들은 카르타고 시민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많은 병력을 상대하느라 지쳐있었다. 카르타고의 후방 병력은 이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하스타티는 무너지고 프린키페스와 트리아리가 나섰다. 전투는 치열하게 진행되어 어느 한쪽이 이길지 전혀 예측되지 않았다. 그 사이 카르타고 기병을 몰아낸 로마 기병이 카르타고 군 후방을 잡게 되었고, 카르타고군은 완전히 포위되었다. 한니발의 전략도 분명 뛰어났지만, 스키피오의 전략이 성공을 거뒀다. 카르타고는 4만 병력 중 2만여 명이 죽었고, 나머지 병력은 모두 부상을 입거나 포로로 잡혔다.

  자마 전투를 끝으로 제2차 포에니 전쟁도 끝나게 된다. 카르타고는 로마에 굴욕적인 조건으로 강화를 맺게 된다. 이들은 이베리아 반도, 시칠리아 섬, 북아프리카 등 대부분의 영토를 모두 로마에 내줬다. 카르타고 역시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된다. 한니발은 전후 카르타고의 통치자가 되어 전후 혼란을 수습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미 기울어버린 국력을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로마의 간섭이 매우 심했는데, 이들은 제2의 한니발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했다.


  한니발은 역사상 최고의 전략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그는 이후 인류의 전술과 병법을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칸나에 전투에서 보여준 기병을 통한 포위 작전은 이후 고대 전쟁사에서 꾸준히 보이는 전술이다. 심지어 현대전에서도 응용되어 사용될 정도다. 적이었던 스키피오 역시 한니발을 존경하고 예우했다. 로마에 큰 위협이 되었던 것만큼 로마인들은 그에게 증오와 동시에 경의를 표했다. 로마 속담에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한니발이 문 앞에 있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한니발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어떻게든 해냈다. 그 앞에 놓였던 알프스 산맥은 그에게 큰 어려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길이 없어도 어떻게든 길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동맹국의 시민들에게는 늘 환대했지만 로마군 포로에게는 혹독하게 대우했다. 그는 자신의 편에 서는 사람에게는 너그러웠지만 적 앞에서는 자비가 없었다. 로마 정벌이라는 확실한 목표 아래 원칙을 지키며 나아갔다. 그가 역사상 위대한 전략가로 평가받는 이유 역시 목표 의식 아래 병사들을 하나로 모으는 카리스마, 그에 걸맞은 군사적 재능이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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