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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onde Aug 10. 2021

영화 '킹덤 오브 헤븐' 배경 설명

최고의 협상가 VS 전장 위 의 대인배, 발리앙과 살라딘의 예루살렘 공방



  2021년 8월 기준 네이버 영화 평점 9.24를 기록한 명작. 2005년 당시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레골라스 역할을 맡아 스타덤에 오른 올랜도 블룸의 차기작. 이 밖에도 에드워드 노튼, 리암 니슨 등 헐리웃 최고의 배우들이 참여한 작품. 영화 '글레디에이터'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 '킹덤 오브 헤븐'에 대한 역사 배경 설명에 대해 알아보자.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엔 큰 흥행을 기록하진 못했다. 그러나 감독판이 공개된 후 평가는 완전히 바뀌었다. 극장판이 공개되기 전 리들리 스콧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킹덤 오브 헤븐'은 곧바로 그의 수작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극장판과 감독판의 평가가 이렇게 엇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역사의 개연성이다.

  이 작품은 제3차 십자군이 결성되기 직전 이슬람 세력과 벌였던 하틴 전투와 곧바로 이어진 예루살렘 공방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예루살렘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지방은 아주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배경을 모른채 영화를 봤고, 역사에 대한 설명이 없는 극장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개연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감독판에서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과 인물 묘사에 상세함을 추가하면서 역사적 개연성을 포함시켜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십자군


  이 영화는 빌리앙 디블랭(올랜드 블롬 역)과 살라딘(가산 마수드 역)의 대결이 주 배경이다. 가톨릭을 대표하는 빌리앙은 예루살렘 성을 지키려고 하고, 이슬람을 대표하는 살라흐 앗 딘은 예루살렘을 빼앗으려고 한다. 즉, 양측 세력은 종교의 극단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요소는 빌리앙과 살라흐 앗 딘 둘 다 악역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어느쪽이 선이고 악인지 구별이 안된다. 오히려 둘은 예루살렘들의 시민들과 병사를 구하려고 하는 선역에 가깝다. 오히려 악역에 가까운 캐릭터는 이슬람과의 전쟁에 미쳐있는 르노 드 샤티용과 기 드 뤼지냥이다. 물론 영화에서의 모습과 실제 역사에서 모습은 조금 다르다. 영화에서의 묘사는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워 흔히 알고 있는 이슬람과 가톨릭의 반목과는 사뭇 다르다. 이 이유에 대해 알기 위해 우린 십자군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다.


  십자군이란 유럽 가톨릭 교황의 명령에 따라 성지를 회복하기 위해 편성된 군대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지'가 바로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했다가 다시 부활한 곳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승천한 곳이기도 하다. 심지어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이기까지 한 이 도시는 유대교, 가톨릭, 이슬람 세 종교의 성지다. 이것만 봐도 이 도시가 2021년까지도 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느정도 감이온다.

  600년대 무함마드의 승천 이후 이슬람 세력은 지속적으로 팽창했다. 이후 11세기 경까지 예루살렘은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이슬람 세력권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자주 순례를 떠났다. 이슬람 입장에서도 공격성이 없는 순례자들을 굳이 탄압할 이유도 없었고, 괜히 공격했다가 유럽 세력의 반발만 살 것이 뻔해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았다.

  11세기 경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있던 파티마 왕조는 아나톨리아 (현 터키 지방)를 두고 동로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양국은 의외로 사이가 좋았다. 서로 건드려봤자 좋은 꼴 못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양국은 서로의 순례자들 건드리지 않는 조건으로 전쟁을 피하고 있었다. 동로마 제국은 이 외교를 통해 로마 정교회로부터 이단과 협력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들은 실리를 추구했다.  


  그러던 와중 셀주크 제국이 새로운 이슬람의 주인으로 나타나면서 상황이 바뀐다. 이들은 동로마, 파티마 모두에게 호전적이었다. 튀르크 족이 주 지도층이었던 셀주크는 가톨릭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셀주크는 만지케르트 전투를 통해 동로마 제국을 몰아내고 아나톨리아의 패권을 장악했다. 이들은 동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코앞까지 진출했다. 다급해진 동로마 제국은 지난 반목을 뒤로하고 로마 교황에게 SOS를 요청한다. 이를 로마 정교회의 동방 확장 기회로 삼은 교황이 승낙을 하면서 이슬람 정복 및 예루살렘 회복을 위한 1차 십자군이 만들어 진다. 이 해가 1096년이다.



십자군 국가의 형성 (1135)


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탈환


  돌이켜 생각해보면 1차 십자군 원정은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동로마를 제외한 서방 세력들은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 기준으로 군대의 힘이 훨씬 강한 건 유럽보다 이슬람 세력이었다. 당시 이슬람 세력은 남부 지중해를 넘어 이베리아 반도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런데 정말 신께서 십자군을 도운 것일까? 이슬람 제국은 서서히 분열하고 있었고, 셀주크가 등장에 이슬람 세력의 새로운 지배자로 떠오르자 이슬람 세력 내의 갈등이 커진다. 여기에 셀주크 역시 후계자 문제로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다. 이 혼란기를 1차 십자군이 정확히 파고들었고, 세계 최고라 불리는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정복하는데 성공한다. 십자군 입장에선 정말 기적에 가까웠다.


  오랜 시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지방은 이제 가톨릭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원래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나면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동로마 제국에 반환하기로 약속했지만 로마 교황은 이를 지킬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십자군을 지휘한 유럽 영주들에게 땅을 분배했다. 이로서 생겨난 것이 바로 십자군 국가다. 아르메니아 왕국, 에데사 백국, 안티오크 공국, 트리폴리 백국, 예루살렘 왕국이 팔레스타인 지방에 새로 탄생했다. 이 중 우리는 예루살렘에 자리잡은 예루살렘 왕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루살렘 왕국의 초대 국왕은 1차 십자군의 영웅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 맡게 되었다. 프랑크 왕국 볼로뉴 출신의 백작이었던 그는 예루살렘 공방전에서 성을 무너뜨린 일등 공신이었다. 그 공을 인정받아 그는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이 되었다. 전쟁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이 나라는 예상외로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주변 이슬람 세력간의 계속되는 반목이 예루살렘 왕국을 지켜주고 있었다.



복잡해지는 레반트의 세력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십자군과 이슬람 세력간에도 변화가 생긴다. 성지회복이라는 종교적 목적 아래 동맹을 맺은 영주들은 성지를 회복했으니 손잡을 이유가 없어졌다. 애초에 중세 봉건 시스템의 영주들은 자신의 영토와 가문에 복종한다. 당연히 새로 탄생한 십자군 왕국의 명령은 후순위였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레반트 지역에 있는 여러 십자군 영주들은 서로의 가문의 명예와 세력 확장을 위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이 사정은 이슬람 역시 마찬가지 였다. 이슬람 제국 분열 이후 각 이슬람 지도자들은 반목하기 시작했다. 무함마드의 사후 이슬람은 크게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뉜다. 그리고 시아파/수니파 내에서도 각자 서로 지도자임을 주장했다. 이슬람에서의 이러한 지도자를 술탄이라고 부른다. 이슬람의 술탄들은 서로 세력을 넓히기 위해 반목하기 시작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두 세력은 종교가 아닌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뭉치고 찢어지기를 반복했다. 가톨릭 영주와 이슬람 지도자가 서로 손잡고 다른 세력과 전쟁하는 일은 레반트 지역에서는 일상에 불과했다.

 


살라딘 조각상


살라딘의 등장


  이런 혼란기가 지속되던 와중 이슬람 세력을 통합할만한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등장한다. 그가 바로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살라딘'이라는 이름으로 지겹도록 들은 사람인 살라흐 앗 딘이다. 살라딘은 이슬람 수니파의 중심지였던 이라크 북부 지방에서 태어났다. 쿠르드족이었던 그는 아버지 나짐 앗 딘 아이유브와 함께 알레포 술탄이었던 이마드 앗 딘 장기 가문을 섬겼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많은 전투에 참여했다.

  아버지가 죽고 살라딘은 삼촌 시르쿠와 함께 이마드 앗 딘의 명렁에 따라 이집트를 정복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시르쿠가 죽자 살라딘은 갑작스럽게 이집트의 지도자가 된다. 이를 본 이마드 앗 딘의 아들 누르 앗 딘은 살라딘에게 이집트 지배권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살라딘은 이를 무시한다. 그는 오히려 누르 앗 딘이 죽자 시리아와 이라크를 정복해, 당시 이슬람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이집트-시리아-이라크 3개 지방을 모두 차지한다. 그 어려운 이슬람 세력을 통합을 성공한 것이다.


  이슬람을 통합한 살라딘은 새로 아이유브 왕조를 세웠다. 레반트를 둘러싸고 있는 이집트-아라비아-이라크 지방을 모두 점령한 아이유브 왕조는 예루살렘 왕국을 완전히 포위했다. 예루살렘 왕국이 위험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예루살렘의 국왕이었던 보두앵 4세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아이유브 왕조와의 전쟁이 무모한 짓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보두앵 4세는 어릴적 부터 나병을 앓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가면을 쓴 채로 나온다. 보두앵 4세는 1177년 몽기사르 전투에서 살라딘을 상대로 승리한 것을 바탕으로 그와 평화 협정을 맺는데 성공한다. 보두앵 4세는 명분을 얻어냈고, 살라딘은 명분을 잃은 셈이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넘어온 르노 드 샤티용이 사고를 친다. 그는 살라딘과의 휴전 조약을 어기고 이슬람 상인들을 공격한다. 영화에서 역시 르노 드 샤티용의 호전적 성격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는 역사와 동일하다. 살라딘은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그 사이 병세가 더욱 심해진 보두앵 4세가 직접 아픈 몸을 이끌고 나와 살라딘을 만나 대화로 풀어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양 국가간의 긴장감은 더욱 커져갔다.


이슬람에 대한 인식 변화


  이런 사태가 일어난 데에는 유럽 출신의 십자군과 레반트 지방 태생의 십자군간의 이슬람에 대한 인식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으로 묘사하고 있다. 십자군 세력이 오랜 시간 레반테에 정착하면서 2, 3세 십자군들이 태어난다. 이들은 이슬람 지방에서 자라 아랍어에 능통했고, 유럽보다 발달한 이슬람 세력의 기술 문명을 습득했다. 또한 이슬람 세력에 대해 종교적 차이만 있을 뿐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인식이 생기면서 이교도에 대해 적개심도 사라진다.

  반면에, 유럽에서 넘어온 십자군들은 생각이 달랐다. 이교도들과 친하게 지내는 토착 십자군들이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이슬람과의 전쟁을 빨리 끝내고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면서 십자군 세력 끼리 서로 발이 맞지 않기 시작했다. 이슬람과의 전쟁을 빨리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유럽 출신 십자군과 최대한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토착 십자군의 인식 차이가 발생하면서 점점 살라흐 앗 딘 쪽으로 승리의 축이 기운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에서의 보두앵 4세


하틴 전투


  그러던 와중 예루살렘 왕국을 잘 지키던 보두앵 4세가 죽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보두앵 4세는 후사를 낳지 못해 조카 보두앵 5세가 왕위를 물려 받았는데 그 마저 1년만에 죽었다. 섭정을 밭은 보두앵 5세의 어머니 시빌라의 남편 기 드 뤼지냥이 왕위를 물려 받는다. 하지만 기는 보두앵 4세에 비해 능력이 한참 떨어졌다. 이를 기회로 삼은 살라딘은 1187년 7월 군대를 이끌고 아이유브 왕조를 공격한다.

  7월의 예루살렘은 덥고 건조했다. 사막이 대부분으로 이뤄진 레반트 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의 확보다. 살라딘은 이 사실을 알았고, 기는 몰랐다. 살라딘은 군대릴 이끌고 예루살렘 왕국의 물 보급을 차단시키기 위해 빠르게 티베리아스 호수를 포위했다. 반면 예루살렘 왕국의 원정군은 티베리아스에서 물을 확보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물을 최소한으로 들고간다. 십자군이 물을 안들고 온다는 첩보를 들은 살라딘은 별동대를 활용해 원정군의 속도를 줄인다. 살라딘의 군대는 게릴라전을 통해 지속적으로 십자군을 괴롭혔다. 결국 기습 공격에 지친 십자군은 티베리아스까지 가지 못하고 하틴이라는 지방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여기서 살라딘의 군대를 공격하고 물을 확보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 하틴에서 잠을 청하기로 결정한다.

  아침이 되자 십자군은 다시 티베리아스를 향해 출발했다. 몇일 쨰 물을 마시지 못한 십자군은 지쳐있었다. 살라딘은 물이 절실한 십자군 앞에 대군을 이끌고 나타났다. 양 군은 곧바로 전쟁에 돌입했다. 물을 못마신 십자군은 무기조차 제대로 휘두를 힘이 없었다. 말이 전쟁이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결국 살라딘의 대승으로 하틴 전투는 끝났고, 예루살렘 국왕 기 드 뤼지냥은 포로로 잡혔다.



예루살렘 방어전


  하지만 아직 예루살렘 왕국에는 한명의 영웅이 남아 있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빌리앙 디블랭이었다. 영화에서는 빌리앙 디블랭이 유럽에서 넘어온 십자군으로 묘사되는 데 실제는 아니었다. 그는 예루살렘 왕국 태생의 이블린 가문 출신으로 보두앵 4세의 총애를 받은 가문의 유력자였다. 하지만, 보두앵 4세가 나병으로 일찍 죽자 기 드 뤼지냥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난 상태였다. 그 역시 군대의 후미를 보호하는 역할로 하틴 전투에 참전했다. 빌리앙은 군대가 살라딘에게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마자 포위망을 뚫고 티레로 퇴각한다.

  티레에 도착한 빌리앙은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는 살라딘을 찾아간다. 기가 포로로 잡힌 상황에서 예루살렘 왕국의 실질적인 지도자는 빌리앙이었다. 빌리앙은 살라딘을 찾아가 예루살렘에 있는 아내와 가족들이 트리폴리 까지 안전하게 이동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전쟁을 하지 않고 조용히 퇴각하겠다고 말했다. 살라딘은 빌리앙의 요구를 수락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빌리앙이 도착하자 시민들이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부탁하지 시작했다.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던 빌리앙은 살라딘과의 약속을 어기고 예루살렘 성안에서 병사들과 무장했다. 발리앙은 살라딘에게 상황이 바뀌어서 전쟁을 해야겠다고 살라딘에게 전했고, 살라딘 역시 쿨하게 알겠다고 말했다. 살라딘은 비록 빌리앙의 자신과의 협정을 깻지만 약속을 지켰다. 심지어 그의 가족을 트리폴리까지 군대를 붙여 안전하게 인도해줬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살라딘은 상당한 대인배였음은 분명했다.


  발리앙과 살라흐 앗 딘의 예루살렘 공방전이 시작된다. 하지만 애초에 예루살렘 왕국의 군대는 아이유브 왕조의 대군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빌라앙은 능력을 발휘해 10일동안이나 기적적으로 버티는 데 상공한다. 발리앙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예루살렘 성벽이 서서히 무너지지 시작하자 살라딘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사실 이미 성벽이 무너지고 이슬람 병사들이 예루살렘 시내에 진입에 성공한 상황이라 좀 만 있으면 살라딘의 낙승으로 끝났을 것이다.

  발리앙은 이런 상황에서도 당당했다. 지금 우리가 당장 공격을 멈출테니 백성들이 유럽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와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 예루살렘 안에 있는 모든 무슬림을 죽이고 모스크 파괴할거라 말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역으로 협박했다. 그리고 살라딘은 놀랍게도 발리앙의 뻔뻔한 제안을 또 다시 들어준다.


  발리앙의 말도 안되는 협상을 두번이나 살라딘이 들어준 것은 후대 사람들에게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사람들은 발리앙을 위대한 협상가라고 평가한다. 사실 그는 살라딘이 협상 테이블에 나올만한 시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살라딘은 예루살렘 정복에 있어 두가지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 첫번째는 그가 고용한 용병의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두번째는 무슬림과 모스크 없는 예루살렘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살라딘의 목표는 이슬람 세력의 통합이었다. 제국 분열 이후 반목을 거듭하는 이슬람을 하나로 뭉치기 위해선 성지 회복과 동시에 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유물에 대한 보존이 절실했다. 예루살렘 정복과정에서 무슬림이 많이 죽거나 성지가 파괴되면 정통성이 사라진다. 그저 폐허인 도시 하나 얻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런 점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협상에 나선 발리앙. 그리고 괜한 자존심 안부리고 전쟁보다는 실리를 택한 살라딘. 이 유능한 두 지휘관 덕분에 휘하에 있는 병사들과 많은 시민들은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이런 점 덕분에 살라딘은 무슬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대 유럽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된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의 살라딘


21세기에도 싸우고 있는 예루살렘



발리앙 : 예루살렘은 무엇인가요? (What is Jerusalem worth?)

살라딘 : 아무것도 아니야. (Nothing)

살라딘 : 그리고 모든 것이지. (Everything!)



  예루살렘은 21세기 현재까지도 전세계에 주요 분쟁 지역 중 하나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단일 도시에서 전쟁으로 죽은 사람을 집계한다면 아마 압도적인 1위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대교, 가톨릭, 이슬람의 3 종교가 반목하던 이 도시는 최근에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대립구도가 형성되었다. 지금은 동예루살렘에 팔레스타인이 서예루살렘에는 이스라엘이 지배하고 있다. 동예루살렘 지역은 사실상 예루살렘 동부의 농촌 지방만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 도시에 대한 실효권은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고 최근에는 자신들의 수도를 텔 아비브에서 예루살렘 옮겼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대한 실효권을 회복하는 데에는 제3차 중동전쟁의 승리가 주효 했다. 이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요르단을 누르고 예루살렘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큰 전쟁 없었지만 여전히 무장 무슬림들의 폭탄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도시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대 가나안 신앙에 등장하는 평화의 신 샬림을 모시는 사원이 있는 도시였다. 하지만 이름과 다르게 기원전 6세기경 유대인들이 바빌론에게 정복 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2021년 아직까지도 이 도시의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무려 2500년간 전쟁이 끊이지 않은 도시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반목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선과 악이 모호한 이 도시에서 종교와 우리 삶은 도대체 어떻게 연결 시켜야 할지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 인생에는 관성이라는게 존재한다. 처음에 어떤 의미있는 행동을 하다가 그것에 관성이 붙어 그냥 생각 없이 그 행동을 계속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관성은 사람을 발전시키도 하고 피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 매일 한시간씩 운동을 하는 이유가 이 관성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되고 힘들겠지만 이게 어느덧 습관이 되면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메일 헬스장에 가는 것이다. 이게 우리 인생에 있어 관성이 붙은 것이다. 반대로 쓰지 않아도 될 소비에 지속적으로 돈을 쓰거나, 전 애인을 잊지 못하고 계속 그리워 하는 것도 결국 이 인간의 관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관성 이론은 역사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전 세대에 시작된 반목이 후대에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의미없는 대립을 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전세대의 갈등이 후세대로 전이가 되는 것인데, 그 예시를 적절하게 보여주는 도시가 바로 예루살렘이다. 이 관성은 무려 2500년이나 지속되어 후대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갓난 아기는 구약성서의 메시아라는 부름을 받지도, 무함마드의 계승을 받아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태어난 아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전 세대의 갈등에 희생양이 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우리에게 이 무서운 역사의 관성을 끊을 날이 올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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