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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Mar 03. 2024

인생선언문을 작성한다.

나로 살기의 선언


나는 언제부터 나를 나라고 인식했을까?  내 삶이 중요하다고 언제부터 생각했으며, 더 나아가기 위해서 고민을 했을까?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에는 그저 살았다. 먹고 놀고를 반복하며 엄마가 집에 들어오라고 소리칠 때까지 놀았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나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나는 예쁘지도 않았고 특별히 공부를 잘하거나 뛰어나게 잘하는 점은 없었다. 성실하고 착하기는 한데 똑똑하지는 않은, 그저 시키는 것을 잘하는 매우 조용한 있는 듯 없는듯한 아이였다.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내 친구들이 공부를 잘하는 재능 있는 친구들이었다는 것에 나름 만족했다. 나도 그 무리에 낄 수 있었고 공부를 조금 하는 티를 낼 수 있었으니까. 

 대학생 때는, 그래 나는 그렇게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내가 가진 것만큼의 지식으로 수능을 치렀고, 그래도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는 4년제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졸업을 했고, 직장인의 삶을 살다가 가정을 꾸리고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30대의 시절을 아이를 키우다가 이제 좀 나 혼자서 무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살면서 나에 대해서 그렇게 깊이 고민하지 않았지만 큰 문제없이 평범하게 무탈하게 살았다. 하지만, 지금 40이 넘어있는 나는 어떤가? 


마음이 끓는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관심을 크게 쓰는 나이도 아닌데, 나에게 없는 것과 있는 것으로 크게 가슴 아파할 나이도 아닌데, 왜 마음이 끓는 거지? 


"열심히는 살았지만 그 안에 내가 없었다."


엄마로, 딸로, 아내로, 교사로 살아왔었고 그 모든 것의 합이 나였다고 안도하면서 살아왔다. 그렇다면 그만큼 커진 나의 책임감과 무게감만큼 내 안에 나로 가득 차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나로 살지는 못한 듯 느껴졌다.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살았다는 차원이 아니라, 어린 내가 성장할 수 있게 보살펴 주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칭찬해 주고, 보듬어주고, 더 큰 내가 되어 세상을 누리게 하지 못했으므로 인한 허무감이 들었다. 


 최근에 나에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사건들이 있었다. 그 경험들은 나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고, 나를 살펴보는 눈을 깨끗하게 닦아주는 기회가 되었다.

물론 아직도 모호하고, 어리숙하고, 게다가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으며 나아가야 할 방향 또한 아직은 빛이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그래도 내가 나로 살 기회는 아직 있다." 


오늘부터 나는 나의 삶을 산다. 밖으로부터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보려 한다.  그것이 비단 오늘뿐일지라도. 


그렇게 인생선언문을 작성해 보았으며, 삶이 불투명해질 때마다 꼭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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